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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노력하는 천재, 박정민
2019. 02. 21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박정민이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로 대세 행보를 이어간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박정민이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로 대세 행보를 이어간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박정민이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로 2019년 대세 행보의  첫 시동을 걸었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돌아온 그는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다크한 캐릭터를 맡아 전에 없던 새로운 얼굴로 관객과 만난다. 매 작품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박정민.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박정민은 영화 ‘파수꾼’(2011, 감독 윤성현)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데뷔한 뒤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6)에서 송몽규 역을 맡아 제37회 청룡영화상, 제52회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신인상을 휩쓸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에서 서번트증후군 진태로 분해 섬세한 캐릭터 소화력과 소름 끼치는 피아노 연기를 선보인 그는 ‘변산’(감독 이준익)에서는 무명 래퍼 학수로 분해 실제 가수 못지않은 랩 실력을 자랑, 주목을 받았다. 특히 직접 랩 가사를 작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 작품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차근차근 필모를 쌓고 있는 박정민은 올해도 ‘열일’ 행보를 이어가며 충무로 ‘대세 배우’로서 입지를 굳건히 할 예정이다. 그의 첫 행보는 영화 ‘사바하’다.

‘사바하’에서 정나한으로 분한 박정민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바하’에서 정나한으로 분한 박정민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바하’는 신흥 종교 집단을 쫓던 박목사(이정재 분)가 의문의 인물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2015년 영화 ‘검은 사제들’로 구마 사제라는 신선한 소재를 새로운 장르로 변주하며 544만 관객을 사로잡은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극중 박정민은 한적한 마을의 미스터리한 정비공 나한 역을 맡아 미스터리하고 다크한 연기를 선보인다. 나한은 영월에서 일어난 터널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실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 미스터리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한으로 분한 박정민은 무표정한 얼굴과 낮게 깔린 음성은 물론 탈색 헤어스타일로 외적 변신을 꾀하는 등 자신만의 색깔로 캐릭터를 완성,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박정민이 ‘사바하’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정민이 ‘사바하’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박정민은 “‘사바하’를 통해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을 얻었다”며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충무로 대세 배우로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는 자신을 향해 쏠리고 있는 기대와 평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사바하’ 언론배급시사회 후 개인적 욕심보다 영화를 향한 응원의 마음이 들었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되게 좋았다. 재밌었다. 처음 해보는 장르였기도 했고 나라는 배우 혹은 사람을 치유해준 영화다. 이런 영화(미스터리 스릴러)로 치유를 받았다고 하니 이상하긴 한데 내가 예전부터 열광했던 영화를 찍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동료와 선배들을 다 좋아하게 됐고, (장재현) 감독도 좋아하는 형이 됐다. 여러모로 이 영화의 팬이 된 거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그랬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유독 튀는 배우나 역할이 없었다. 모두 다 이야기 안에 있었고 밸런스가 맞아서 좋았다. 촬영할 때 욕심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얘기를 잘 표현하려고 했고, 영화가 재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야, 힘내라’ 이런 마음이다.”

-‘사바하’ 속 정나한은 그동안 소화했던 캐릭터들과 결이 달랐고 매우 어두운 인물이었다. 역할에서 빠져나오는데 힘들지는 않았나.
“빠져나오는데 힘들어하는 배우들이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몰입을 엄청 해서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렇진 않다. 하지만 이 생활을 하다 보니 작품을 끝내고 나면 마음이 이상하긴 하다. 그 역할의 이름을 떠나보내는 게 섭섭한 것 같다.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현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나한이라고 불러줬다. 나한으로 그 사람들을 만난 거다. 그런데 그 이름을 떠나보내야 하고 좋아했던 현장이고 사람들인데 그 이름을 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며칠 정도는 멍하다. 내일도 촬영을 가야 할 것 같은데 끝났다고 하니까. 그런 마음인 것 같다.”

-나한은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미스터리한 느낌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분위기를 잡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뭔가 안 하려고 했다. 다 감추려고 했다. 사실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신을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만들까, 뭐를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대부분 고민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까, 지저분해지더라. 그리고 긴장감이 안 생겼다. 그래서 (장재현) 감독님의 그림에 맞춰서 하려고 했다. 대본에 있는 것을 정확하게 해내는 것이 이 영화에 맞겠더라.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영화의 긴장감에 도움이 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많이 배웠다. 혼자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배우, 카메라, 그리고 미술, 세트 팀 등 다 같이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 많았다. 그런 작업에 적응을 잘 하는 게 관건이었다.”

박정민이 ‘사바하’에서 필모그래피 상 가장 다크한 연기를 선보였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정민이 ‘사바하’에서 필모그래피 상 가장 다크한 연기를 선보였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나한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나.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엉엉 울 정도로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슬픔을 자아내는 인물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니 그런(짠한) 마음이 들더라. 자기 뜻대로 뭘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인물이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속박되고 누군가의 뜻에 따라서 하고 시키는 걸 하는 인물. 그러다가 자기가 선택해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니 이미 너무 늦었고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다. 그런 면에서 너무 슬프고 짠한 캐릭터였다.”

-대사톤 잡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맞다. 이상하다. 이상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상한 애들이지 않나. 영화니까 용인이 되는 거지, 30대 초중반 되는 사람들이 서로 존칭을 쓰면서 주문을 외우고 그러면 너무 무섭지 않나. 무섭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우습게 보이기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렵긴 했다. 쓰는 말 자체가 옛날 말은 아닌데 사극톤 같기도 했다. 외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맥락이 없으니 글자 하나하나를 외워야 하는데 답이 없더라. 구구단 외우듯이 외운 것 같다. (‘변산’에서 랩을 소화했던 게 도움이 됐나?) 전혀 안됐다. 하하. 랩은 그래도 맥락이라도 있지 않나. ‘사바하’ 대사는 맥락도 없었다.”

-휴식을 가지려던 차에 ‘사바하’를 하게 됐다고 들었다. 지친 상태였나.
“과부하가 걸려있던 같다. 특정 작품 때문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변산’을 만났는데 할 게 너무 많았다. 현장이 너무 재밌고 즐거웠는데, 숙소에 와도 거기가 현장인 거다. 랩 연습도 해야 하고 가사도 써야 했다. 지방에 계속 있었고, 여러 가지로 과부하가 걸려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바하’ 대본을 받게 됐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게 이럴 때 하는 말인 것 같다.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으니까 ‘쉬어봤자 뭐 하겠어, 놀기나 더 하나’라는 마음이 들면서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변에서 ‘고생했지?’라고 하는데 나는 그 영화로 정말 힐링이 됐다.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동력원이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았다.”

-매 작품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 분석, 배경 공부 등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해서 더 힘든 게 아닌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가 동물적인 감각이 없어서 그렇다. 재능이 없어서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감정 연기를 하더라도 뭐가 있어야 하는데 옛날에 있었던 슬픈 일을 생각하면서 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우는 것에도 다 다른 감정이 있는 건데, 쌓아놔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해야 되는 것 같다.”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는 박정민.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는 박정민.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피아노, ‘변산’에서는 랩을 선보였다. 작품마다 도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부담감도 클 것 같다.
“부담감보다 내 또래의 많은 배우들, 모든 배우들이 다 각자의 위치에서 정말 열심히 한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분들의 노력에 비해 내 노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내가 나오는 영화의 역할이 노력이 보이는 작품이다. 피아노라든지 랩이라든지, ‘동주’ 송몽규 선생님의 시대적 배경이라든지. 그렇다 보니 포장이 됐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바하’ 때는 뭘 열심히 했냐고 묻더라. 연기를 열심히 했다. 하하.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건 아닐 텐데 그렇게 보여서 쑥스럽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힘든 작품인 걸 알면서도 선택하고, 도전을 택하는 이유는.  
“꼭 그런 부분(도전)은 (작품을) 선택하고 나서 안다. 이 영화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감독님을 만나면 ‘피아노 할 수 있냐’고 물으시고, 또 감독님을 만나면 ‘랩 가사 쓸 수 있냐’고 하신다. ‘예, 해야죠’ 하게 된다. 약간 팔자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앞으로 그렇지 않을 영화들이 더 많을 거다. 그런 노력들과 임무들이 없을 영화들이 더 많을 거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나 자신을 포장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작품이 더 많을 텐데… 잘 이겨내야겠다.” 

박정민이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정민이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 상업영화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는 기회가 온다는 게 쉽지 않은 데, 늘 특별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배우로서 만족감도 있을 것 같다.
“그 역할들한테 감사하다. 걔네가 날 먹여 살렸구나 할 정도다. 그런 특별한 역할의 기회를 준 분들한테도 감사하고 내가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쟤는 저걸로 다 했네’라고 생각하기도 할 거다. ‘피아노가 살렸다’고 생각하는 분도 분명히 있을 거다. 이제 또 다른 도전을 해봐야 될 거다. 내가 해보지 않은 다른 연기들. 도전할 것들은 많지 않나. 굳이 뭔가를 배우지 않더라도 보여줄 모습들은 많을 테니까. 나한테 무언가를 기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보여드려야 한다.”

-‘피아노가 살렸다’는 말을 실제로 들은 적이 있나. 유독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칭찬을 해줘도 부정적인 댓글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있다. 댓글에서 봤다. (부정적 평가에 신경 쓰는 이유는) 내 생각과 비슷해서다. 뼈를 때린다고 하지 않나. 나만 알고 있는 거였는데. 하하. 내가 눈이 높아서 그런 걸 수 있고, 나 자신에게 너무 혹독해서 그런 것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주변에서 잘한다고 해주면 감사한 일인데 그 평가에 흥분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불안해한다. 다음에는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함이 생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좋다. 그게 나를 움직이게 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다. 연기를 계속한다면 나 자신한테 계속 혹독할 것 같다. 늘 그렇게 살아왔다.”

-차기작인 ‘타짜:원 아이드 잭’ 촬영은 어땠나.
“너무너무 재밌었다. ‘사바하’와는 다른 종류의 영화인데 정말 재밌었다. 캐릭터들이 살아있다. 다음 작품은 영화 ‘시동’이다. 촬영이 2주 정도 남았다. ‘사바하’ 찍을 때 캐스팅이 됐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시동’은 ‘시동’ 나름대로 재밌는 게 있을 것 같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