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정지훈(비)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으로 돌아왔다. /레인컴퍼니 제공
가수 겸 배우 정지훈(비)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으로 돌아왔다. /레인컴퍼니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가수 겸 배우 정지훈(비)이 7년 만에 국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을 통해서다. 오랜만에 국내 관객 앞에 서는 그는 ‘노력의 아이콘’답게 남다른 열정과 책임감으로 작품에 임했다. 부족한 완성도, 역사 왜곡 논란 등 혹평이 쏟아지고 있는 ‘자전차왕 엄복동’이지만, 정지훈의 피나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정지훈은 1998년 6인조 그룹 팬클럽의 멤버로 데뷔했지만,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다. 이후 비(RAIN)라는 이름으로 2002년 ‘나쁜 남자’를 통해 솔로 가수로 데뷔, 본격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가수 활동과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화려한 댄스 실력과 남다른 운동 신경 등을 자랑하며 인기를 끌었다.

정지훈이 톱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배우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2003년 KBS 2TV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에서 주인공 상두로 분해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후 발표한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히트를 치고 드라마 ‘풀하우스’(2004)까지 인기를 끌면서 톱스타 자리에 올랐다.

가수와 배우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을 펼친 그는 2008년 ‘스피드 레이서’로 할리우드에 진출, 화제를 모았다. 2009년에는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에서 단독 주연을 맡아 ‘월드스타’ 타이틀까지 얻었다.

군 입대로 잠시 공백기를 가졌던 그는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14)·‘돌아와요 아저씨’(2016)·‘스케치’(2018) 등과 중국영화 ‘로수홍안’(2014), 중국드라마 ‘다이아몬드 러버’(2015) 등에 출연했다.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엄복동으로 분한 정지훈 스틸컷.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엄복동으로 분한 정지훈 스틸컷.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지훈은 ‘자전차왕 엄복동’을 통해 ‘알투비: 리턴투베이스’(2012) 이후 7년 만에 국내 스크린 무대로 돌아왔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희망을 잃은 시대에 쟁쟁한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전조선자전차대회 1위를 차지하며 동아시아 전역을 휩쓴 ‘동양 자전차왕’ 엄복동(정지훈 분)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김유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배우 이범수가 배우 겸 제작자로 참여했다.

개봉을 일주일 앞둔 지난 19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첫 공개된 ‘자전차왕 엄복동’은 후반부 CG작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는 등 완성도 부족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여기에 억지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무리수 설정’과 자전차 경주 사건이 1919년 3.1운동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포장한 점 등을 이유로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지훈의 노력만큼은 충분히 빛을 발했다. 극중 정지훈은 자전차(자전거) 한 대로 전 조선의 희망이 됐던 전설적인 인물 엄복동 역을 맡았다. 평범한 물장수에서 자전차 영웅으로 조선의 희망이 된 엄복동으로 분한 그는 친근함과 비장함을 넘나드는 열연으로 극을 이끈다. 특히 촬영 전부터 자전거 훈련에 매진한 정지훈은 영화 속 모든 자전차 경주 장면을 직접 소화하며 실제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해 눈길을 끈다. 그의 피나는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정지훈이 오랜만에 국내 스크린에 복귀한 소감을 전했다. /레인컴퍼니 제공
정지훈이 오랜만에 국내 스크린에 복귀한 소감을 전했다. /레인컴퍼니 제공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정지훈은 혹평이 쏟아지고 있는 ‘자전차왕 엄복동’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밝히면서도 남다른 책임감과 애정을 드러냈다. 또 오랜 연예계 생활 동안 짊어져야 했던 고민의 무게를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7년만의 국내 스크린 복귀인데, 소감이 어떤가.
“가수라는 직업도 하고 배우라는 직업도 하다 보니 가수를 준비하고 있을 때 영화가 들어오면 좋은 걸 많이 놓치게 된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쉬고 있을 때 이범수 제작자가 대본을 줬다. 시나리오를 읽고 왜 하필 주인공 이름을 엄복동이라고 지었냐고 물었더니 실존 인물이라고 하더라.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대본을 만들었다는 점이 좋아서 참여를 하게 됐다.”

-그동안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를 많이 소화했는데, 엄복동은 순수하고 순박한 청년이었다. 캐릭터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을 것 같은데.
“엄복동이라는 역할을 맡을 때 제일 중요했던 건 엄복동을 알리는 거였다. 지금도 한일전이 열리거나 국가 대 국가끼리 축구를 하면 먹고살기 힘든 건 둘째 치고라도 나가서 응원을 하지 않나. 지금도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절, 핍박받는 상황에서 순박한 청년이 일본 선수를 다 제치고 우승을 했다는 건 굉장히 큰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엄복동이라는 인물이 궁금했고 어떻게 연기해야 가장 좋을까 고민을 했다. 엄복동에 대해 도표를 그리기도 하고 연구를 많이 했다. 엄복동은 사실 위인은 아니다. 그냥 스포츠 영웅일 뿐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일등을 하면서 민족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준 건 사실이기 때문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복동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감정을 절제하는 인물보다 표현하는데 수월했을 것 같은데.
“맞다. 입체적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캐릭터는 입체적이면 끝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복동은 굉장히 단순하다. 애국심이 바탕이 됐다기보다 그냥 자전거가 좋아서 탔는데 그 와중에 애국단이 나타났고 사람들이 좋아해 준 거다. 아이들을 위해, 형신(극중 엄복동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캐릭터, 강소라 분)을 위해 자전거를 던진 것뿐이다. 처음부터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면 영화 후반부 엄복동의 분노와 슬펐던 억울한 감정이 표현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에 인물이 다채로웠으면 좋겠다는 것이 (김유성) 감독과 (이범수) 제작자의 의견이었다.”

정지훈이 ‘자전차왕 엄복동’ 혹평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레인컴퍼니 제공
정지훈이 ‘자전차왕 엄복동’ 혹평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레인컴퍼니 제공

-과한 영화적 장치가 탓에 신파나 ‘국뽕’(국수주의 민족주의가 심하며 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나 사람을 일컫는다는 신조어) 논란도 불거졌다.
“처음 대본을 읽을 때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대놓고 바꾸자고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부분만 사실이더라. 다 허구다. 형신이도 허구, 엄복동이 평택에 있었던 것도 허구다. 일미상회는 자전거를 수입해서 파는 곳이었고 애국단과 연결된 것도 허구다. 여기서 진짜는 엄복동이 실제로 자전거를 보고 반했고, 갑자기 시골 청년이 우승을 했다는 것. 엄복동이 누구도 일어서서 탄다는 상상을 하지 않았는데 그 테크닉으로 1등을 했다는 것이다. 그게 실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사람이 계속 이기니까 그 주위로 자전차를 보려고 십만명이 모였다고 하더라. 너무 이기니까 (일본 측에서는) 방법이 없는 거다. 그래서 일본 심판이 판정패를 선언한다. 엄복동 선생님이 실제로 화가 나서 단상에 올라가서 일장기를 빼서 꺾어버린다. 일장기를 꺾는 순간 조준 사격인데 실제 조선 민중들이 나와서 ‘엄복동을 지킵시다’하면서 인간 방어벽을 쳤더라. 실제 자료가 있다.

영화를 잘 팔려고 소스를 첨가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가 애국심이고 어디까지가 ‘국뽕’인가를 논하기 전에 이것은 사실이라는 걸 알리고 싶다. 영화적 장치가 아닌 사실. 그 이후에 (엄복동이) 4년 동안 칩거를 한다. 왜 칩거를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후 중국 자전차 대회에 홀연히 나타나지만 또 몇 년간 기록이 없다. 중간에 절도를 하고 그러면서 실형을 산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자료가 없다. 그래서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막을 통해 엄복동 자전차 경주가 1919년 3.1운동의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포장되는데, 그러한 마무리가 본인이 생각한 엄복동 캐릭터와 괴리가 있다고 봐도 되겠나. (해당 자막은 최종 편집 작업에서 수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괴리감이 있다. 관객들의 결정이 남았다고 생각하는데, 얘(엄복동)를 꾸준히 보면 뭐 없다. 전투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열심히 달리는 것뿐이다. 형신이가 아이들을 위해 달리라고 했는데, 그 임무를 위해 달리는 거다. 사실 엔딩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진 못했으나 바뀔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발단이 돼서 3.1운동이 이뤄졌다는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운동들이 있을 텐데 엄복동 사건도 그것의 일환이 됐을 거라는 의미였을 거다. 그것에 대한 문구는 확실히 바꿀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복귀작인데 배우 개인의 역량에 대한 평가보다 영화에 대한 논란과 혹평이 많아 아쉬움도 클 것 같은데.
“내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관객들의 평가만 남은 것 같다. 엄복동 세 글자를 알리는 거면 만족한다. 관객이 많이 봐주고 흥행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것들은 신이 내려주는 거다. 내 몫은 엄복동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거다. ‘연기가 왜 그래?’라고 하면 잠이 안 올 텐데 그런 평가가 아니니 다행이다. 사실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배가 흔들린다고 해서 나도 흔들릴 수는 없었다. 다시 마음을 잡았고, 다시 자전거를 탔다. 책임은 져야 하니까. 아직 후반 작업이 남아있고 최종본은 다를 거다. 그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만족스럽다.”

정지훈이 오랜 시간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면서 느낀 고민을 털어놨다. /레인컴퍼니 제공
정지훈이 오랜 시간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면서 느낀 고민을 털어놨다. /레인컴퍼니 제공

-가수와 배우, 두 가지 분야에서 활동하며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정지훈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인간 정지훈에게 어떤 선물을 줄 것인가 고민한다. ‘더 유닛’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대중이 바라보는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움직였던 이유는 한번 실패했던 친구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것 때문이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니까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했었다.

나는 나를 한 번도 소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막 다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했다. 이제는 나를 아껴주고 싶다. 아침에 눈 떴을 때 압박감 같은 게 있었다. 먼 훗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 뭐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올 거다. 언젠가는 나 자신이 결단을 해야 할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워커홀릭을 언젠가는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숨이 막힐 때가 있었다. 밤새 혹시라도 이상한 일이 생겼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사랑하니까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더라.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다 같은 마음일 거다.”

-자신을 내려놓게 된 계기가 있었나.
“이 일을 하면서 다짐하게 된 순간이 있다. ‘나는 사람들의 장난감이다’라는 생각. 좋아서 선택했는데 나중에는 질릴 수 있지 않나. 그러다가 가끔 보고 싶기도 할 거다. 그렇게 된다는 각오를 하고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졌다. 하지만 이제는 장난감에서는 은퇴를 하고 싶은 거다. 나를 사랑해주고 싶다. 그렇다고 곧 있으면 은퇴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하. 먼 훗날의 이야기다. 언젠가는 내려놔야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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