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석규가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으로 돌아왔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배우 한석규가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으로 돌아왔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명불허전 배우 한석규가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으로 돌아왔다. 영화 ‘프리즌’(2017) 이후 3년 만이다. 9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그는 이미 관객의 두터운 신뢰를 받는 배우지만, 안주하지 않는다. 그것이 한석규가 계속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결이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우상’은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 구명회(한석규 분)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분)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최련화(천우희 분),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한석규는 ‘우상’ 시나리오를 읽고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우상’이라는 영화는 시나리오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분위기에 압도된다는 느낌, 정곡을 찔린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뭐가 인상적이었냐, 이야기의 주제가 인상적이었다. 그것(주제)을 드라마로 풀어내기도 했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은유들(이 인상적이었다).”

‘우상’은 2014년 장편 데뷔작 ‘한공주’로 섬세한 연출력을 자랑하며 국내외 영화계를 휩쓸었던 이수진 감독의 신작이다. 제69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되는 등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우상’에서 한석규는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벼랑 끝에 선 도의원 구명회 역을 맡았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우상’에서 한석규는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벼랑 끝에 선 도의원 구명회 역을 맡았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한석규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이수진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충무로 대표 배우로 꼽히는 그지만, 자신도 선택을 당하는 입장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런 결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수진 감독이 보여줬던 게 아주 고마웠다. 연기자가 뭔가 선택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연기자도 선택당하는 입장이다. 시나리오를 읽는 도중에 든 생각은 정성스럽게 썼다, 의도가 좋다. 시나리오 덮고 나서 한숨이 확 나오기도 했다. 그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우상’을) 했던 것 같다. 한숨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음란서생’을 시나리오를 볼 때 웃으면서 즐겁게 읽었다면 ‘우상’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보고 다시 보고 했던 게 많았다.”

극중 한석규는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벼랑 끝에 선 도의원 구명회 역을 맡았다. 구명회는 소탈하고 성실한 정치인의 모습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내면에는 야망을 숨기고 있는 위선적 인물이다. 한석규는 구명회의 비겁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비겁한 인간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내 이미지와 한석규라는 연기자의 이미지 변신 때문에 하고 싶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비겁한 것을 하고 싶었냐’라고 한다면 그런 연기를 하는 모습을 통해서 관객들이 나의 모습을 생각해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겠다. ‘왜 그런 마음이 들게 하고 싶어’라고 한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용감하게 살고 있는 건가,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별생각이 다 든다.”

‘우상’은 우상을 좇는 사람과 본인이 좇는 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 그리고 우상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까지 미로처럼 얽힌 세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맹목적인 믿음을 좇고 있진 않은지, 그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내리고 있지 않은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구명회는 ‘우상’의 주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인물이다. 차기 도지사 후보에 거론될 정도로 존경과 신망이 두터운 도의원 명회는 명예와 권력이라는 우상을 좇으면서 스스로도 모두의 우상이 되고 싶어 한다. 한석규는 구명회에 대해 “병든 반응을 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구명회는 주제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우상’이라는 영화 제목과 스토리에 또렷하게 부각이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구명회라는 인물 자체를 놓고 보면 그냥 반응하는 인물일 뿐이다.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아들놈이 사고를 쳤다. 그랬을 때부터 반응하기 시작하는 거다. 지하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구명회의 리액션이 시작된다. 구명회는 아주 병든 반응을 하는 거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반응을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한다.”

한석규가 ‘반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한석규가 ‘반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이때부터 한석규의 ‘반응학개론’이 펼쳐졌다. 우리가 ‘액션’이라고 생각하고 취하는 모든 행동은 ‘리액션’의 결과라는 것이다.

“연기할 때 내가 액션에 정신이 팔렸다면 지금은 리액션에 집중을 해서 한다. 연기라는 일 자체도 생각해보니까 어떤 반응의 결과더라. 한때는 내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연기자가 될 거라고 결정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깨달았다. 반응 때문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것의 결과로 연기자가 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의 리액션이 액션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지금 현재도 그런 상태고 일도 그럴 것이고, 사는 것도 나는 계속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거구나, 반응이 참 중요하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하면서 살아가나. 같은 액션이라도 사람마다 반응하는 게 다 다르지 않나. 정치적인 성향도 다르고 사회적 메시지가 나왔을 때도 반응이 다 다르다. 다르다고 나쁜 게 아니다. 달라야 한다. 같은 게 이상한 사회고 같은 건 병든 사회다. 각양각생의 반응이 나오는 것이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석규는 어떤 기준에 의해 반응할까. 그는 “부끄러움”이라고 답했다. 구명회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반응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에서도 구명회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한석규의 ‘반응학개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반응의 기준은 부끄러움인 것 같다. 그것을 무시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마취가 되는 것 같다. 한 번 무시하고 두 번 무시하고 세 번 무시하면 그때는 하나도 안 창피하다. 하나도 안 부끄럽다. 그 신호를 누가 얘기해줄 수 없고, 자기가 알 것 같다. 본인이 안다. 내가 인생의 갈림길에 놓인 정도의 중요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부끄러움의 신호가 온다. 그것을  무시를 할 거냐 아니면, 말거냐. 무시하고 또 무시하면 생각도 안 나고 부끄러움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구명회가 그렇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이게 허구의 얘기냐. 그렇지 않다는 게 섬뜩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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