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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천우희, 초심으로 돌아가다
2019. 03. 21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천우희가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으로 돌아왔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배우 천우희가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으로 돌아왔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부터 ‘손님’(감독 김광태), ‘곡성’(감독 나홍진)까지 강렬한 작품을 소화해 온 배우 천우희가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세다. 사건의 비밀을 간직한 미스터리한 인물 최련화로 분해 압도적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우상’은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 구명회(한석규 분)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분)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최련화(천우희 분),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한공주’(2014)로 국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쓸며 연출력을 인정받은 이수진 감독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은 ‘우상’은 지난달 제69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돼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여기에 충무로 대표 연기파 배우 한석규·설경구·천우희의 만남으로 관객의 기대를 높였다.

그중에서도 천우희의 열연이 돋보인다. ‘한공주’ 이후 이수진 감독과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한 그는 사고 이후 비밀을 거머쥔 채 사라진 여자 최련화로 분해 등장과 동시에 숨죽이게 만드는 내공을 발휘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에도 강렬한 존재감으로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센’ 캐릭터를 소화한 그지만, ‘우상’은 유독 쉽지 않았다. 눈썹을 밀거나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 연기를 완벽히 해내야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었지만 부족한 것 같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부질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과 신념으로 생각했던 연기가 ‘우상’은 아닌지, 왜 연기를 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천우희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천우희가 ‘우상’을 통해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천우희가 ‘우상’을 통해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천우희는 “‘우상’은 나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든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다.

-한 번 보고 이해되지 않는 영화였다. 시나리오 봤을 때 바로 이해가 됐나.
“한 번에 모든 맥락을 짚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영화로 나온 것과 시나리오랑은 느낌이 다른 게 영화는 시각적인 것들이 많다 보니까 책에서 느꼈을 때보다 긴장감이나 쫀쫀함, 스릴 넘치는 부분들이 잘 표현된 것 같더라. 베를린에서 첫 시사를 했는데 바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되게 좋았다. 책을 봤을 때 내용보다 캐릭터가 먼저 보였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던 것 같다.”

-쉽지 않은 작업임이 뻔히 보였을 텐데 그럼에도 ‘우상’을 택한 이유는.
“(이수진) 감독님이 제일 컸고, 그다음은 선배님들이었다. 처음에 진짜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후유증을 느낀 캐릭터였다. 초반부터 겁을 냈는데 감독님이 다른 사람이 하면 아깝지 않겠냐고 하셨다. 많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감독님과 선배 두 분(한석규·설경구)을 전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공주’에서 감독님과 호흡이 너무 좋았다. 작품적인 시선이라든지 가치관이 비슷했다. 또 한 번 맞춰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감독님의 차기작을 기대하기도 했다. 내가 함께 하게 돼서 너무 감사했다. 좋은 연출자와 배우로서 다시 호흡을 맛보고 싶다는 기대가 컸다.”

-그동안 센 캐릭터를 많이 소화해왔는데, 후유증을 처음 느꼈다는 게 의외다.
“센 캐릭터를 맡고 감정적으로 힘든 역할을 했지만, 개인적인 나에게 묻어나진 않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연기적으로 자기 감상적인 걸 별로 안 좋아한다. 휩쓸린다고 해서 꼭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치우친다고 해서 좋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연기를 할 때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되,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것처럼 몰입했다가 아닐 때는 확실하게 아닌 것으로 의식을 갖고 연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쉽지 않았다. 6~7개월이라는 촬영 기간도 그랬고, 시기적으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전반적인 모든 것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우상’이랑 똑같은 것 같다. 꿈과 신념으로 생각하고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연기가 사실 부질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면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고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련화 캐릭터를 연기하며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고 예뻐 보였다. 나는 뭐 하는 걸까 괴롭기도 했다. 스스로 조급하기도 했다. 더 표현하고 더 잘하고 싶은데 상황에 치우치고 몰려가니 잘 해내지 못한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있었다. 원래 외부적인 것에 흔들림이 없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그게 잘 안되다 보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선배들을 보며 또 한 번 대단하다고 느꼈다.”

천우희가 ‘우상’에서 미스터리한 인물 최련화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천우희가 ‘우상’에서 미스터리한 인물 최련화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 CGV아트하우스 제공

-련화를 어떻게 해석했나.
“강렬하고 무시무시한 캐릭터지만 그 모습만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련화는 연민이 많이 느껴지고 불쌍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모든 캐릭터가 비호감이지 않기를 원한다. 어떤 사건이든 나쁜 짓을 했든 호감과 연민이 느껴지길 바란다. 련화는 세 인물(구명회·유중식·최련화) 중 가장 솔직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거짓은 없다.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순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기할 때 어떤 의도를 담지 않았던 것 같다.”

-초반에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점점 센 캐릭터로 변한다. 련화의 변화에도 초점을 맞췄을 것 같은데.
“변화가 보이기를 원했는데 의도하면서 연기하지는 않았다. 시나리오를 보고 분석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면 아무 생각이 안 든다. 그렇게 비워놔야 오히려 집중이 잘 된다. 내가 생각한 것과 현장의 분위기, 상대의 리액션 그리고 감독의 디렉션이 또 다를 수 있다. 많이 열어두는 편이다. 영화를 봤을 때는 련화의 이야기가 이어졌을 때 편차가 있기를 바랐다. (이수진) 감독님이 그런 것을 잘 담아주지 않았나 싶다.”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 준비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중국어랑 연변 사투리는 나름 재밌었다. (언어를 지도해준) 선생님이 ‘황해’나 일반적인 조선족 말투가 나오는 영화들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어려움 없이 가르쳐 주셨고, 나도 재밌게 배웠다. 단어 하나까지 (이수진) 감독님하고 만들어갔다.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한국식 단어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정말 리얼한 단어를 할 것이냐 이것저것 조율하면서 만들어 갔었다. 그런 과정들이 나름 재밌었다. 물론 현장에서는 인지하면서 하니까 감정적인 것 외에 다른 부분, 말에 신경을 써야 하니 어려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래도 재밌었다.”

천우희가 ‘우상’에서 연변 사투리 연기를 소화한 소감을 전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천우희가 ‘우상’에서 연변 사투리 연기를 소화한 소감을 전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사투리 때문에 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베를린에서 첫 시사를 했는데 영어로 자막이 나갔다. 나도 사실 촬영한 지가 좀 돼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자막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뉘앙스로 영화를 따라가더라. 그래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대부분 다 욕이었다. 굳이 무슨 의미인지, 하나하나 해석을 하려고 하기보다 흐름을 따라가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다. 혹시 이해를 못할까 대사를 정확하게 바꾸기도 했는데 말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라. 그래서 감독님이 최종적으로 결정하신 대사가 나간 것 같다.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어려울 수 있겠지만 분위기로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련화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칼로 주는 상처는 치료가 되지만 입은 아이 되오(아니 되오)’라는 대사가 공감이 많이 됐다. 입은 안 된다는 것은 말로 하는 상처들이지 않나. 련화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그 많은 거짓말과 말로 받은 상처들이 어마어마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신을 언짢게 하는 말을 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남들이 보면 과민반응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똑같은 일을 겪고, 똑같은 말들을 들어왔었다면 그것만큼 상처가 되는 건 없으니까. 그 대사가 련화의 모습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우상’은 천우희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초심으로 돌아간 작품이 아닌가. 내가 잘 못한 것 같아서 스스로 자책하고 그랬던 시간들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연기를 왜 하게 됐을까, 무엇을 위해 연기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군가에게 더 좋은 성과를 보이고 더 좋은 인정을 받기 위해 자체 검열을 하고 판단하면서 연기를 했었는데, 그것들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연기를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해준,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준 작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