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도연의 ‘생일’(감독 이종언)로 관객과 만남을 앞두고 있다. / 매니지먼트 숲 제공
배우 전도연의 ‘생일’(감독 이종언)로 관객과 만남을 앞두고 있다. / 매니지먼트 숲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외면했다. 애써 모른 척했고, 등을 돌렸다. 하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죄스러웠고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나의 비겁함과 마주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진심을 담아냈다. 뭐라도 할 수 있다는 마음, 이 이야기에 참여한다는 그 마음 하나면 충분했다.

배우 전도연의 ‘생일’(감독 이종언)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는 4월 3일 개봉하는 ‘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들의 생일날, 남겨진 이들이 서로가 간직한 기억을 함께 나누며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우리 곁을 떠난 아이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그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아이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생일 모임을 모티브로 했다. 극중 전도연은 떠나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엄마 순남 역을 맡았다.

세월호 사건은 전 국민에 트라우마를 안긴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참사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아물기 힘든 상처로 남았다. 이러한 가운데 세월호 소재를 상업 영화로 풀어낸다는 것에 대해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나왔다. 수익을 내야 하는 상업영화에 세월호를 소재로 차용한다는 것만으로도 비난의 이유가 됐다.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왔다.

전도연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아니 시나리오를 받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맞아?’였을 정도로 그에게도 ‘생일’은 섣불리 나설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히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그 아픔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전도연은 자신처럼 관객들도 용기를 내주길 바랐다. 살아갈 힘을 주는 따뜻한 영화라고 자신했다. 전도연의 바람대로 ‘생일’이 관객들에게 공개가 되고 나면 이러한 우려가 어느 정도 불식될 듯하다.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는 마주하길 잘 했다고 그리고 전도연이라서 참 다행이라고 안도할 듯하다.

전도연이 ‘생일’을 택한 이유를 전했다. / 매니지먼트 숲 제공
전도연이 ‘생일’을 택한 이유를 전했다. / 매니지먼트 숲 제공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 어땠나. 망설였다고 들었다. 
“세월호 유가족 이야기라고 했을 때 조금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시나리오를 읽고 엄청 울었다. 시나리오는 너무 좋았는데, ‘밀양’ 신애가 생각이 나기도 했고, 모든 사람들이 다 우려했던 것처럼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게 맞아?’라는 생각도 했다. (전도연은 2007년 영화 ‘밀양’에서도 아들을 잃은 엄마 역을 소화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고 너무 많은 오해와 편견과 상처, 아픔들이 다 아물지도 않았는데 너무 험난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가 온전히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런 여러 가지 우려 때문에 거절을 했다. 그런데 마음은 달랐던 것 같다. 주변에 시나리오를 봐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하나같이 다 울면서 전화가 와서 하지 말라고 하더라. 너무 힘들다고. 감정적으로도 그렇지만 외부적으로도 힘들고 상처받을 일이 많은데 안 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딱 한명이 ‘네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건데 왜 안 하냐, 피해가지 말라’고 하더라. ‘한다면 네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밀양’ 신애 이후에 아이 잃은 엄마 역할은 안 하고 싶다고 말을 했었다. 그 이후에 그런(아이 잃은 엄마) 역할이 안 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다 거절을 했었다. 그래야 다른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묵묵히 기다렸다. ‘생일’도 피해 갈 수 있느냐 없느냐였는데, 결과적으로 놓지 못했던 것 같다. 보내면 안 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일’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살아남은 그리고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선택하지 못했을 것 같다.”

-전도연이 아니면 누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평가가 많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전도연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연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연기를 내가 했었고, 해 왔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힘든 연기라면 전도연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책임감이나 의무감은 없었다. 그런 이유로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다. 이 사건이 전 국민의 트라우마가 됐는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힘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이 있었던 것 같다. 뭔가 할 수 없다면 놓아버리지 않나. 나는 그랬다. 외면하거나.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이종언) 감독한테 사람들이 ‘왜 지금이에요? 시기적으로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맞냐’고 물었을 때 나는 감독한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데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어디 있냐. 그냥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니까 지금 하는 거’라고 얘기하라고 했다. 타이밍은 내가 선택해서 만들어내는 거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고. 그러면서, 그 용기에 대해 나도 응원을 했고 참여하게 됐다. (이종언) 감독이 이야기를 만드는 시작부터 힘들었을 거다. 그리고 지금까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다. 하지만 감독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고 나는 배우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연기로 할 수 있는 거다. 아마 ‘생일’을 찍은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 현장에 있던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뭐라도 할 수 있다는 마음, 이 이야기에 참여한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관객보다 세월호 유가족의 평가에 마음이 쓰였을 것 같다. 유가족 시사는 어땠나.
“유가족 시사회를 하고 무대 인사 갔을 때 무엇보다 어려운 자리였지만, 오히려 그 앞에 서 있는 제가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한 어머니가 천으로 만든 지갑을 주셨다. 손수 수를 놓아서 만든 것을 제 손에 쥐여주고 고맙다고 말해주셨다. 들어갈 때부터 나갈 때까지 얼굴을 못 들었다. 그 지갑을 받고 너무 눈물이 나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되게 어렵고, 힘들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지만 막상 뵀을 때는 그런 마음이 죄스러웠고 응원을 받고 나온 것 같은 마음이었다.”

‘생일’에서 순남으로 분한 전도연 스틸컷. / NEW 제공
‘생일’에서 순남으로 분한 전도연 스틸컷. / NEW 제공

-극중 순남이 수호의 생일 모임에 참석한 뒤에 ‘이럴 거면 왜 안 하겠다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전도연에게도 ‘생일’이라는 작품이 비슷한 의미일 것 같은데. 
“맞다. ‘왜 안 한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대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의미로 다가가겠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순남은 나의 아픔, 슬픔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실을 외면하고,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현실과 담을 쌓은 채로 살고 있었다. 그 자리(생일 모임)에 가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면서 아들을 비로소 보내주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배우로서는 (생일 모임이) 죽을 것 같이 힘들고 어떻게 감당하지라고 생각했다. 전체 리딩 때도 생일 모임 장면을 넘어가자고 할 정도로 모두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틀 동안 그 신을 촬영하고, 다 풀어지고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하고 순남이 웃기도 한다. 정말 모두 같이 겪은 것 같았다. 이렇게 함께 해서 넘어갈 수 있는 건데 ‘왜 두려워했을까’라는 마음이 나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든 배우들의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다.”

-수호 방에서 오열하는 장면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촬영은 어땠나.
“시나리오 자체가 ‘아파트가 떠내려가라 운다’였기 때문에 너무 부담스러웠다. 도대체 어떻게 울어야 아파트가 떠내려갈 정도일까. 너무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그리고 혼자서 없는 수호와 대화를 하면서 쏟아내는 게 할 수 있을지 무서웠다. 카메라 앞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괜찮아, 들어가서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래도 돼, 괜찮아’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안에 들어가서는 그렇게 떠난 수호를 보내지 못하고 부여잡고 있는 순남이 느껴지니까 되게 힘들었다. 더 이상 뭔가를 쥐어짜거나 만들어내지 않으려고 했고, 그 순간 느끼는 것만큼 충실하려고 했다.”

전도연이 ‘생일’ 촬영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 매니지먼트 숲 제공
전도연이 ‘생일’ 촬영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 매니지먼트 숲 제공

-촬영이 끝난 후에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그 신은 정말 (한숨). 목도 쉬고 그랬다. 되게 힘들었다. 그런데 우찬 엄마(순남의 이웃)가 순남의 곡소리가 하루 이틀이 아니고, 자신의 딸이 대학에 두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운 상황인데도 아무 일 없이 와서 묵묵히 안아주지 않나. 에너지가 다 소진됐다고 생각했는데 안아주는 순간 갑자기 뭔가 또 터져 나오더라. 우찬 엄마의 따뜻함이 순남에게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느낌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들이 다 도와주고 돕고 그랬던 것 같다.”

-직접 느낀 것보다 상상하면서 연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전도연은 유독 힘든 작품과 캐릭터를 많이 소화해왔다. 경험해보지 못한 삶임에도 불구하고 인물 그 자체가 되는 비결은 무엇인가.
“나는 나랑 가장 가까운 걸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생일’ 순남을 하기로 했다면, 때때로 지금 순남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와 다른 사람이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계속적으로 순남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을 다 알 수는 없지 않나. 비로소 그 인물을 다 아는 것은 촬영을 끝내고 난 후인 것 같다. 순남을 통해서 어떤 상황을 경험하고 반복하면서 비로소 순남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가는 것 같다.

(인물에 대해) 다 알고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 인물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고, ‘이런 인물이야’하고 (연기를) 할 때도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고, 전도연인 거다. 그 인물이 아니다. 다 끝났을 때, 그리고 영화를 봤을 때 ‘아 순남은 저런 여자였구나’를 나도 아는 것 같다.”

-영화에 세월호 유가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냉담한, 어떻게 보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각들이 담겼다. 그런 시각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순남을 연기한 입장에서 이런 시각들이 어떻게 다가왔나.  
“다 끝난 이야기가 아니지 않나. 아직도 진행 중인 이야기고, 오해도 있을 거고 편견도 있을 거다.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사실 나 역시 그랬었다. 그런데 ‘생일’은 사회적인 시각이나 정치적인 시각으로 뭔가를 표현하거나 보여주기보다 그냥 우리들을 보여주려는 점이 좋았다. 슈퍼마켓에서 아무렇지 않게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게 우리 일 수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을 툭 던져놔서 좋았던 것 같다.

순남에게는 일상일 것 같았다. 늘 하루하루 부딪히고 대면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해 반응을 한다면 그건 어제 일이었겠지. 그 속은 가늠할 정도도 안 되겠지만, 그게 일상이면 무시하고 귀 닫고 지낼 것 같았다. 얼마나 수많은 상처를 받은 채 눈에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고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연이 관객들이 용기를 내주길 바랐다. / 매니지먼트 숲 제공
전도연이 관객들이 용기를 내주길 바랐다. / 매니지먼트 숲 제공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만은 없는 영화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한 용기처럼 관객들도 용기를 내주셨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애 셋 키우면서 일하는 것도 힘들다고 그랬던 친구가 영화를 보고 문자가 왔다. 사는 게 매일 지옥 같고 그랬는데, 너무 감사하다고. ‘집에 가면 내 자식들이 있고, 남편이 있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면서 ‘이 영화를 보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는데 (관객들도) 그런 마음이면 좋겠다.

내 딸한테도 엄마가 영화를 찍었고 전체 관람가니까 개봉하면 같이 보러 가자고 예고편을 보여줬더니 슬퍼서 싫다고 하더라. 그래서 ‘슬퍼도 봐야 하는 영화가 있고 네가 엄마 영화를 안 보면 어떤 사람들이 영화를 보겠냐. 슬프지만 슬프기만 한 영화는 아니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응원이 돼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어’라고 했다. 같이 보러 가기로 했다. 제 딸한테도 해줄 수 있는 얘기가 그 정도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영화가 하고 싶은 게 그 정도인 것 같다.”

-관객들이 ‘생일’을 보고 어떤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나.
“지금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 영화가 사건을 들추고, 뭔가 밝혀지지 않는 것에 대해 파헤치는 영화가 아니지 않나. 아직 과정 중에 하나인데 결과처럼 보이는 건 정말 경솔하고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일’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 애도를 위해 맹목적으로 만든 영화도 아니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영화일 것 같다. 그게 세월호 유가족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전도연에게 ‘생일’은 어떤 의미로 남았나. 
“글쎄. 그 의미가 너무 큰데. 세월호라는 사건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서 비롯된 상처나 아픔,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내가 뭐를 할 수 있었는데 못했으면, 더 그렇겠지만, 그냥 비겁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죄스러움이 계속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생일’을 선택하고 한 것에 대해 ‘자 이제 저는 제 할 일을 다 했습니다’는 아니다. 등을 돌리고 섰었다면 이제 조금은 바로 선 것 같다. 그런 마음의 작은 움직임이 나한테는 되게 용기였다. 배우로서도 전도연 개인으로서도 되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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