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설경구가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씨제스 제공
배우 설경구가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씨제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설경구가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매 작품 다른 결의 연기를 펼쳐온 그는 ‘생일’에서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공존하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경을 감성적이면서도 섬세한 연기로 완벽히 표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오는 3일 개봉하는 ‘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들의 생일날, 남겨진 이들이 서로가 간직한 기억을 함께 나누며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우리 곁을 떠난 아이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그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아이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생일 모임을 모티브로 했다.

극중 설경구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아빠 정일 역을 맡았다. 전작인 ‘우상’(감독 이수진, 3월 20일 개봉)에서도 그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 역을 소화했지만 ‘생일’에서는 전혀 다른 결의 부성애 연기를 펼쳐 이목을 끈다. ‘우상’에서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유중식의 처절한 부성애를 표현했다면, ‘생일’에서는 절제된 감정 연기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생일’에서 정일로 분한 설경구 스틸컷.  / NEW 제공
‘생일’에서 정일로 분한 설경구 스틸컷. / NEW 제공

‘생일’ 속 정일은 해외에서 일을 하며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지낸 인물로 아들 수호가 떠난 날 가족 곁에 있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하기만 한 인물이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냉랭한 아내 순남(전도연 분)과 아직은 조금 낯선 딸 예솔(김보민 분)의 마음을 열기 위해 조금씩 다가간다.

그래서 정일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홀로 감내했어야 할 순남과 그의 곁에서 외로워했을 예솔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설경구는 감정을 꾹꾹 눌러야만 하는 정일을 연기하면서,  자꾸 삐져나오는 슬픔 때문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촬영 내내 참았던 감정들이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터져 나와 눈물을 쏟았다고도 고백했다.

하지만 설경구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일’을 통해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랐다. 그러면서 간절한 마음을 담아 관객들을 ‘생일’ 모임에 초대했다.

설경구가 ‘생일’을 택한 이유를 말했다. /씨제스 제공
설경구가 ‘생일’을 택한 이유를 말했다. /씨제스 제공

-‘생일’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명감이나 의무감이 있었나. 
“아니다. 사명감이나 의무감 같은 건 없었다. 남겨진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이유가 아예 없지는 않은데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나리오가 담백한데 다 담고 있더라. 그게 되게 좋았다. 놓치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툭툭 던지는 말들이 칼처럼 오는데 다 담더라. 강요도 하지 않고. 그리고 조금 더 확대하면, 우리 이웃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다.

정일이라는 캐릭터가 이전 아버지들과 달랐다. 당사자면서 관찰자 입장도 있었다. 당사자면 분노하고 슬퍼하고 그러는데 정일은 안 그런다. 처음에 (이종언) 감독한테 ‘왜 정일의 설정을 3년 후에 들어오게 했냐’고 했었는데, 그 답이 참 좋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세월호 참사가) 잊혀져가는 사람도 있고, 애써 잊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정일의 어깨를 통해서 중심에 같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말이 참 좋았다.”

-정일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어떤 점에 주안점을 뒀나.
“이 캐릭터는 관찰자이자 당사자다. 그리고 3년 후에 죄책감을 안고 돌아오는 인물이라서 감정을 쓰는 것조차 표현을 못하는 인물이었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라는 말이 있듯이 그것조차도 표현을 못하는 캐릭터라고 생각을 했고 꾹꾹 누르려고 했던 것 같다. (이종언) 감독과 전체 틀은 얘기를 했는데 매 장면을 상의한 것은 아니고 맡겼던 것 같다. (전)도연이랑도 별다른 상의 없이 서로 던지고 받아주고 했던 것 같다.”

-정일의 감정을 누르는 작업이 필요했을 텐데 유난히 절제하기 힘들었던 촬영을 꼽자면.
“다 써버리고 하면 끝도 없었을 거다. 정일은 그러면 안 되는 캐릭터였다. 출입국장 가서 도장 받는 장면(이 감정을 절제하기 힘들었다). 과하거나 그럴까 봐. 누른다고 눌렀는데 자꾸 삐져나오고 그랬다. 촬영 끝나고 나서 통곡을 했다. 삐져나오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그것까지 참지는 못하겠더라.”

-생일 모임에서 정일이 처음으로 크게 감정을 터트린다. 어떻게 포인트를 잡고 연기했나.
“생일 모임을 유튜브를 통해서 찾아봤다. (이종언) 감독도 거의 똑같이 재연을 하려고 했다.  나한테 주어지는 대사도 다 정해져있었다. 거기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 같다. 순남한테 생일 모임 가자고 하면서 ‘수호가 올 수도 있잖아’라고 하는데, (생일 모임에) 정말 수호가 왔다고 생각을 했다. 순남을 설득하려고 했던 말인데 진짜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설경구가 ‘생일’을 촬영하며 위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씨제스 제공
설경구가 ‘생일’을 촬영하며 위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씨제스 제공

-프리프로덕션(영화 촬영 전 준비를 하는 단계)부터 해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생일’과 함께 했던 과정 중 가장 잊지 못한 순간을 꼽자면.
“유가족 시사 갔을 때. 사실 무게감이 어마어마하지 않나. 사실 걱정도 됐었다. 어떻게 보실까. 고맙다고 하시는데 우리가 인사를 들을 자격이 있나 싶더라. 전도연 씨가 많이 울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머님 한 분이 나오셔서 자수 지갑을 주셨는데 그때부터 고개를 들지 못하더라.”

-관객들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만은 없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일’을 꼭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공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가족들이) 잊히는 게 제일 무섭다고 하시더라. 잊을 사람은 잊을 거다. 이 영화가 그분들을 잡는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작은 위로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는 영화다. 영화를 보면 상처받은 사람이 또 위로해주지 않나. 그냥 내 이웃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여다봐줬으면 좋겠다.

생일 모임에 같이 함께 해달라는 말 외에는 딱히 없다. 참여 자체가 손잡아 주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보면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거라고 믿는다. 많은 분들을 최대한 초대하고 싶다.”

-관객들이 ‘생일’을 보고 어떤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나.
“마냥 아프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아프다. 아픈데 아파만 하자고 하는 영화는 아니고 손 한 번 잡아주자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허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마냥 슬프기만 하다는 분도 있을 거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안 찍었다. 찍으면서 위안을 받았다. 그게 고스란히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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