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로 친숙한 김윤석이 감독으로 돌아왔다. 영화 ‘미성년’을 통해서다. /쇼박스 제공
배우로 친숙한 김윤석이 감독으로 돌아왔다. 영화 ‘미성년’을 통해서다. /쇼박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묵직하고 강렬한 연기로 충무로 대표 ‘믿고 보는 배우’로 꼽히는 김윤석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미성년’을 통해서다. 옴니버스 연극 중 한 편을 보고 연출을 결심한 그는 2014년부터 원작자인 이보람 작가와 심혈을 기울여 ‘미성년’을 영화로 탄생시켰다. 꼬박 5년을 쏟아 관객과 마주한 ‘미성년’은 흥미로운 이야기와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김윤석의 섬세한 연출력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연기 잘 하는 배우 김윤석은 연출력도 남달랐다.

영화 ‘미성년’은 부모의 불륜을 알게 된 두 여고생이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로 친숙한 김윤석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고, 데뷔 이래 최고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염정아(영주 역)와 인상 깊은 연기로 주목받고 있는 김소진(미희 역), 신예 배우 김혜준(주리 역)과 박세진(윤아 역)이 주인공을 맡았다.

김윤석의 첫 연출작 ‘미성년’ 포스터. /쇼박스 제공
김윤석의 첫 연출작 ‘미성년’ 포스터. /쇼박스 제공

연출자 김윤석은 배우 김윤석과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그는 ‘미성년’을 통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섬세함과 유머러스함을 마음껏 쏟아냈다.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담백하면서도 위트 있게 풀어내 러닝타임 내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곳곳에 배치된 유머 코드와 톡톡 튀는 대사로 극을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특히 영주와 미희, 주리와 윤아 그리고 대원(김윤석 분)까지 인물 각각의 내면을 섬세하면서도 담담하게 보여주며 각 캐릭터의 입장에서 사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극의 몰입도를 높일 뿐 아니라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첫 연출작부터 마음껏 기량을 펼친 감독 김윤석.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아쉬움도 있지만, 대체로 만족한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윤석이 감독으로 데뷔한 소감을 전했다. /쇼박스 제공
김윤석이 감독으로 데뷔한 소감을 전했다. /쇼박스 제공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정신없을 것 같다.
“실감이 안 난다 이런 상투적인 표현보다는 진짜 그냥 시간이 흐르고 있다.”

-다수의 작품에서 묵직하고 카리스마 있는 강한 역할을 맡았었는데, 연출작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렇게 재밌고 섬세한 사람인지 몰랐다는 평이 많은데, 그동안 왜 숨기고 살았나.
“지금 안 하고 전에 했으면 안 믿었을 것 같다. 나이도 들고, 기도 좀 빠지고 하니까 ‘때가 됐구나’라고 하실 것 같다. 하하. 그런데 사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다운 작품이 나왔다고 말을 한다. 영화 속 캐릭터들에 대한 잔상이 강하니까 대중들은 그렇게 느낄 수 있지만, 잘 아는 감독이나 동료들, 친구들은 뭐. 하하. 그 친구들한테 미리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도움을 받기도 했다.”

-첫 연출작에서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선택한 점이 궁금하다.
“일단 원작의 뼈대가 그 톤이다. 우리 영화의 이보람 작가가 여성작가다. (원작이) 정식 공연된 연극은 아니지만 창작극 발표 형식에서 50분짜리 짧은 공연이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연극은 첫 시작이 학교 옥상에서 윤아와 주리의 대화였다.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를 고등학생으로 옮겨놓으니까 너무 신선하더라. ‘너희 엄마가 우리 아빠 꼬셨어. 불륜 진행 중이야’ 이런 대화를 아이들이 하니까 기가 차고 웃기기도 하고 그렇더라. 어른들이 했으면 어둡고 침침했을 텐데 그렇지 않더라. 사실 불륜은 흔한 소재지 않나. 지금도 TV를 틀면 어느 채널에서든 이걸로 싸우는 이야기가 나올 거다. 그런데 이 흔한 소재가 아이들의 시각으로 들어가니 다 달라지더라. 이 이야기는 내가 첫 연출 작품으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감독이 직접 각본을 써아한다는 욕심은 없었나 보다. 가능성을 다 열어둔 건가.
“그렇다. 완전 창작도 있지만, 좋은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경우도 있다. 다 열어놨다. 이 작품을 발견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이보람)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로 발전시켰다. 2014년부터 시작해서 개봉까지 5년 걸린 거다. 그만큼 힘든 작업이기도 했고, 포기할까 생각도 했다. 이 이야기의 독특함을 글로는 눈치채기 어려운데, 작가와 힘들게 작업을 하면서 좋은 배우들도 함께 하게 됐고 행운이 따라줬던 것 같다.” 

-결과물은 만족하나.
“다행히 2018년 4월 4일에 크랭크업을 하고 1년 후에 개봉을 하게 됐는데, 후반작업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신인 감독한테는 굉장한 행운이다. 후반작업을 오래 할 수 있는 시간을 줬기 때문이다. ‘아직 더 만졌어야 하는데’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마음에 든다.”

김윤석이 ‘미성년’ 결말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쇼박스 제공
김윤석이 ‘미성년’ 결말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쇼박스 제공

-결말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시나리오에서 서른 번 이상 고쳤다. 이보람 작가와 정말 고민을 많이 해서 만든 장면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 장면에 대해 설명을 해도 본 사람이 느끼는 감상은 자유고, 그래도 싫다고 하면 그것도 다 인정한다. 반면 그 장면이 제일 좋았다고 하는 사람도 봤다. 가장 쉬운 해석은 ‘널 잊지 않겠다’라는 거다.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당신들이 한 짓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다. 아이들의 행동이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뭐라고 할 자격이 없는 거다.

내가 호불호가 갈릴 걸 몰랐겠나. 영화를 몇 번을 찍었는데. 하하. 성공한 거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물어보니까, 인상적이라는 얘기 아니겠나.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든 방점을 찍자고 생각했다. 음악도 넣어보고 다 해봤다. 그래도 정면승부하기로 결정했다. 그걸 지우니까 내가 진짜 미성년이 되더라. 그걸 숨기려고 하는 행동 자체가 정말 못난 어른의 모습 같았다. ‘용감하게 드러내자’라는 마음이 있었다.”

-결말에 대한 스태프들의 반응은 어땠나.
“‘만세’라고 외쳤다. 왜냐하면 찍는 과정부터 스태프들이 이 작품을 완전히 사랑하게 된 거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거 편집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깊숙하게 작품 안에 들어 온 거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을 것 같다.
“굉장히 힘이 됐다. 스태프들의 집중력이 어마어마했다. 롱테이크로 진행된 장면이 있었는데, 70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아무도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 기운이 배우한테 그대로 도움을 준단 말이다. 굉장히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그런 것들이 이번 작업을 하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연출뿐 아니라 극중 대원 역할까지 소화했다. 힘들지 않았나.
“체력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정우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게 빈말이 아니다. 하정우는 너무 큰 비중을 하면서 연출까지 하지 않았나. 정말 대단하다.”
(배우 하정우는 영화 ‘롤러코스터’를 연출한 데 이어 두 번째 연출작 ‘허삼관’에서 주인공까지 맡아 열연한 바 있다.)

김윤석이 연출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성이라고 이야기했다. /쇼박스 제공
김윤석이 연출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성이라고 이야기했다. /쇼박스 제공

-영화를 만들 때 예술성이나 상업성 혹은 작가 정신 등에서 균형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할 텐데,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균형감을 맞추고 있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든 영화가 개성이 있었으면 싶었다. 잘 만든 영화라든가 못 만든 영화보다 개성 있는 영화가 필요했다. 점점 개성이 없어지지 않나. 편집점이 자꾸 똑같아진다. 너무 많은 정보들과 작품들을 공유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꾸 맞춰지는 것들이 있다. 그런 느낌보다 개성 있는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주변 감독들한테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항상 ‘상업성은 절대 고려하지 말라’라고 하더라. 사실 상업성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실체가 없는 것에 헤매지 말고 진정성 있게 작품에 집중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다.”

-배우로 현장에 나가는 것과 감독으로 나가는 현장은 어떻게 달랐나.
“감독으로서는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내리자마자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진다. 배우로 (촬영 현장에) 가는 거보다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는 말은 스티븐 스필버그(미국 영화감독)가 한 말이다. 제일 괴로운 순간이 언제냐고 하니까 현장에서 차 문 열고 내리라고 할 때였다더라. 천하의 스필버그도 그렇다는데, 그만큼 감독이 준비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다는 거다.”

-진정한 어른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묻는 영화였다. 감독이 생각하는 진정한 어른은 무엇인가. 
“성년은 운전면허증이 아닌 것 같다. 성년은 죽는 날까지 존중과 배려 등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됐으면 나 좀 편하게 해도 되잖아?’라고 한다는 건 성년이 아니다. 계속 깨어있고, 무뎌지는 감각을 부지런하게 깨우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성년은 성숙한 사람이다. 영화 제목인 ‘미성년’은 ‘우리는 모두 미성년이다’의 준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평가를 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을 것 같나.
“‘울고 웃었다’라는 말이 제일 기분 좋은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이 영화가 그렇지 않나. ‘웃픈’ 영화니까. 그 말이 가장 기분 좋을 것 같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좋겠다. 충분히 어른들이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오늘 만난 김윤석은 감독이었나, 배우였나.
“감독이 된 배우 김윤석과 즐거운 자리를 했다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