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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 선언 1주년 특집 : 봄은 온다④] 영화로 다시 만난 남북의 ‘해피엔딩’
2019. 04. 25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첫 발을 떼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그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손을 맞잡고 함박웃음을 보였다. 사이좋게 군사분계선을 한 발짝씩 넘나들기도 했다. 불식간 찾아온 한반도의 봄에 그간의 추위는 금세 잊을 만했다. 그리고 다시, 봄이다. 1년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완연한 봄이 오기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 꽃샘추위가 자연의 순리인 것처럼 남북의 봄도 아마 그쯤 머물고 있는 게 아닐까. <편집자주>

남북의 해피엔딩을 향한 영화계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됐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함. / 영화 ‘공작’ 스틸컷에 대사 첨부
남북의 해피엔딩을 향한 영화계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됐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함. / 영화 ‘공작’ 스틸컷에 대사 첨부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열망이 영화계로도 이어지고 있다. 남과 북의 우정을 다룬 영화들을 향한 관객들의 관심과 지지가 쏟아졌고, 손익분기점을 거뜬히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남북 영화 교류를 향한 영화인들의 노력도 엿보인다. 지난해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북한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 상영된 데 이어 올여름에는 평화와 공존을 주제로 한 ‘평창남북평화영화제’가 열린다. 남북의 ‘해피엔딩’을 향한 영화계의 힘찬 발걸음이 시작됐다. 

◇ 북한, 스크린으로 엿보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남북 관계나 통일문제는 영화사의 중요한 소재가 돼왔다. 때로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남북의 이야기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창작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했고, 영화를 ‘보는’ 이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분단 70년, 수많은 남북 소재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고, 높은 흥행 타율을 기록했다.

1999년 개봉해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 ‘쉬리’(감독 강제규)부터 ‘공동경비구역 JSA’(2000, 박찬욱) ‘실미도’(2003, 강우석) ‘태극기 휘날리며’(2004, 강제규) ‘웰컴 투 동막골’(2005, 박광현) ‘의형제’(2010, 장훈) ‘고지전’(2011, 장훈) ‘베를린’(2013, 류승완)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장철수) ‘공조’(2017, 김성훈) ‘강철비’(2017, 양우석) ‘공작’(2018, 윤종빈)에 이르기까지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다양한 장르와 형태로 관객과 만났다.

‘공조’ ‘공작’ 등의 배급사인 CJ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남북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다수 제작되는 것에 대해 “각 나라마다 지니고 있는 특유의 정서나 역사적 사건 등이 영화적으로 풀어내기에 매력적인 소재”라면서 “한국도 역사적으로 6·25라는 큰 사건을 겪었고, 이것이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좋은 영감을 주는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좋은 영감’은 흥행으로 이어졌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는 각각 1,1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13위와 17위에 올랐고, ‘웰컴 투 동막골’ ‘의형제’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공조’ 등도 손익분기점을 거뜬히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강철비’는 인기에 힘입어 최근 ‘강철비2’ 제작을 확정했고, ‘공작’도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얻었다.

‘강철비’ 배급사 NEW 관계자는 “남북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면 블록버스터가 될 확률이 높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상업적인 색을 띠기 위해서는 영화적 상상력이라든가 장르적 효과가 많이 가미가 되고, 마케팅 부분에서도 조금 더 힘을 쓰게 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흥행 비결 하나 더. 남북 이야기는 대중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관계자는 “남북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고, 전 세계가 주시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쉬리’(감독 강제규)부터 지난해 개봉한 ‘공작’(감독 윤종빈)까지 남북 소재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이 관객과 만났고, 흥행면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이미지=네이버 영화 포스터
영화 ‘쉬리’(감독 강제규)부터 지난해 개봉한 ‘공작’(감독 윤종빈)까지 남북 소재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이 관객과 만났고, 흥행면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이미지=네이버 영화 포스터

◇ 북한과 ‘공존’을 말하다

한국 영화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도 눈여겨볼만하다. 과거 정치적·사회적 도구로 활용됐던 남북 소재 영화들은 이념을 넘어 인간적 연민을 다루는 이야기로 확장됐다. 그 시작은 ‘쉬리’다.

‘쉬리’는 남북 이념의 대립을 안타까운 멜로로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북한군을 인간미 있게 그리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특히 ‘의형제’는 그동안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졌던 남북 관계 영화들과 달리 해피엔딩을 통해 새로운 결말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반도에 핵전쟁 위기가 닥치는 상황을 가정한 첩보 액션 ‘강철비’는 핵전쟁의 위험을 현실적으로 강조하면서도, 남한의 곽철우와 북한의 엄철우, 두 철우의 우정을 통해 평화에 대한 나름의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해 개봉한 ‘공작’은 남과 북 사이 벌어졌던 첩보전의 실체를 담아내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분단을 소재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것과 달리 실제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 남과 북 사이에 있었던 긴장감과 더불어 같은 민족이기에 오갈 수밖에 없었던 미묘한 교감들을 현실적이고 폭넓게 그려내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남북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북한을 향한 대중의 인식 변화와 ‘이질성’ 회복을 위한 창구 역할로 확대됐다.

영화 평론가이자 심리학자인 심영섭 교수는 “시대 상황에 따라서 (북한을 담아내는 시선도) 변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북한을 소재로 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고, 타자로서 북한이 등장했다. 이후 우리와 체제가 다른 나라로서의 수용이 있었고, 그러면서 우리와 긴장 관계에 있는 북한의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 교수는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화되면서 그곳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례가 ‘공작’에서 이성민이 연기한 리명운 캐릭터다. 심 교수는 “호감과 인간적인 교류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되는 존재로 변화했다”면서 “통일 여론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북한 사람들에 대한 친근감으로 확장된다”고 해석했다. 

심영섭 교수와 전영선 교수가 남북 영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이미지=심영섭 아트테라피, 뉴시스
심영섭 교수와 전영선 교수가 남북 영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이미지=심영섭 아트테라피(위), 뉴시스

◇ 10년 만의 재회… 새 역사 만든다

남북 영화 교류는 참여정부 시절 진행된 부산국제영화제의 북한 영화 상영과 민간에서 진행된 남북 합작 프로젝트 이후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그러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과 예술단 등이 참가한 것을 계기로 남북 간 대화와 문화 교류가 본격화되면서, 남북 간 영화 교류를 향한 움직임도 다시 시작됐다. 

먼저 지난해 7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이하 남북영화특위)를 발족하고, 오석근 영진위원장과 배우 문성근을 공동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배우 정우성과 이준익·김조광수 감독, 이준동 영진위 부위원장, ‘밀정’ 등을 기획 및 제작한 이진숙 프로듀서,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등 영화계 안팎의 전문가 11명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남북영화특위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영진위에서 6년간 운영됐던 남북영화교류추진특별위원회와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영진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남북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교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면서 남북 관계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는데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따라 계획들이 실현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보다 실질적인 방안과 실현 가능성이 높은 사업부터 추진될 예정이다. 관계자는 “올해는 북측과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보다는 남북문화 교류 방안 또는 북한 영화에 대한 연구 조사 등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평화의 염원을 영화를 통해 연결할 행사도 열린다. 오는 8월 16일부터 20일까지 강원도 평창과 강릉 일대에서 개최되는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가 바로 그것이다. 평창남북영화제는 강원영상위원회가 2019년 한국 영화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 등과 논의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영화제의 시작은 평창에서 열지만, 폐막식은 금강산문화회관에서 열 계획이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는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을 불고 온 ‘평창’에서 남북 영화 교류의 물꼬를 트고, 전 세계에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각오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자문위원인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전영선 교수는 “남북 영화 교류를 통해 북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남북 관계에 있어서 북한에 대해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영화 교류를 통해 북한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파급력이 강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다만 전영선 교수는 “북한의 문화적 특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우리가 중동 지역을 향해 ‘왜 이렇게 성차별적이냐’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반대로 ‘남북이 같다’는데 매몰되면 도리어 역효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전 교수는 “북한은 북한 체제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면서 “북한의 문화적 특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북한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가 궁극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