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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 선언 1주년 특집 : 봄은 온다③] “그 시절, 우리는 봄”… 개성공단 비하인드스토리
2019. 04. 25 by 조나리 기자 spot@sisaweek.com

첫 발을 떼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그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손을 맞잡고 함박웃음을 보였다. 사이좋게 군사분계선을 한 발짝씩 넘나들기도 했다. 불식간 찾아온 한반도의 봄에 그간의 추위는 금세 잊을 만했다. 그리고 다시, 봄이다. 1년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완연한 봄이 오기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 꽃샘추위가 자연의 순리인 것처럼 남북의 봄도 아마 그쯤 머물고 있는 게 아닐까. <편집자주>

경기도 파주시 개성공단 진입로인 통일대교가 공단 폐쇄 조치 후 장애물로 막혀있다. /뉴시스
경기도 파주시 개성공단 진입로인 통일대교가 공단 폐쇄 조치 후 장애물로 막혀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우리 공장에 열여덟 살에 입사한 아이가 있다. 결혼 후 첫 아이가 유산돼 전 직원들이 함께 아픔을 나눴다. 이후 두 번째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는데, 그 아이가 만삭 때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체구가 참 작았는데 아기는 잘 낳았는지, 건강한지, 무척 궁금하다.” -옥성석 나인모드(주) 대표

3년하고 2개월.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이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버텨온 시간이다. 이쯤하고 포기하고 싶다가도 놓을 수 없던 것은 비단 북한에 두고 온 재산 때문만은 아닐 터다. 한반도 평화의 최후 보루였던 개성공단은 경제적 이익을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이 서로를 배우고 이해하는 공간이었다.

개성공단에서 의류기업을 운영했던 옥성석 나인모드 대표는 만삭의 북한 노동자를 “딸 같았던 아이”라고 말했다. 옥 대표의 이야기는 입주기업 대표들과의 대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다. 동시에 <봄은 온다>를 기획하면서도 가장 먼저 떠올랐던 소재이기도 했다. 이번에 만난 신한용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또한 마음속에 묻어뒀던 추억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신 위원장을 만났을 때는 그가 개성공단기업협의회 협회장을 지낼 때인 지난 3월이었다.

신한용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남북 바다에 어망 통일을 이루겠다”는 포부로 개성공단에 입성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신한용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남북 바다에 어망 통일을 이루겠다”는 포부로 개성공단에 입성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 신한용 공동위원장 “힘들어도 목소리 낼 것”

신한용 위원장은 1995년 11월 자신의 이름을 딴 신한물산을 설립했다. 어망과 통발, 닻, 스티로폼, PP(폴리프로필렌) 로프 등 어구 물품을 제조·판매하는 업체다. “남북 바다에 어망 통일을 이루겠다”는 포부로 개성공단에 입성한 그다.

신 위원장은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도발 등을 이유로 개성공단을 폐쇄하자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장 및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을 맡아 공단 재가동을 위해 전국을 뛰었다. “데모도 한번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겨울이고 여름이고 길거리에서 나앉아 구호를 외쳤다”던 신 위원장. 기업 대표들의 행렬 맨 앞줄에는 늘 그가 있었다.

지난달 말 정기섭 신임 협회장에게 자리를 내어준 후에도 그의 책임감은 여전히 막중하다. 공단 폐쇄 후 입주기업인들은 총 8차례 방북을 신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모두 ‘유보 결정’을 내렸다. 현재 9차 방북 신청을 준비 중인 기업인들은 이에 앞서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보냈다.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보느라 방북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힘들다”던 그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인터뷰에 나선 이유도 결국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위해서였다. 신 위원장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럴 때 일수록 더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겠냐”면서 “지금도 꿈에도 보이고 아침에 눈뜨면 개성공단이 눈앞에서 스쳐지나간다”며 추억들을 하나씩 소환했다.

◇ 개성공단으로 이뤄낸 ‘작은 통일’

개성공단의 초코파이 이야기는 유명하다. 뉴스에도 수차례 보도가 돼 “초코파이 하나가 수류탄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초코파이는 한 기업이 우연히 북한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면서 시작됐다. 반응이 좋자 모든 기업들이 초코파이를 배급했다. 신 위원장에게도 초코파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초코파이 얘기를 할 때 신 위원장은 눈시울이 불거졌다.

“아무래도 다퉜던 직원들이 좀 더 생각이 나는 것 같다. 노동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지급했던 초코파이가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세 개가 되면서 나중에는 부담이 됐다. 주던 것을 줄이자 불만이 나왔는데 그거 때문에 언성이 높아졌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코파이 하나 더 주고 덜 주고 하는 거 때문에 싸웠나 싶다.”

신한용 위원장이 개성공장이 가동됐던 당시를 떠올리고 있다. /사진=김경희 기자
신한용 위원장이 개성공장이 가동됐던 당시를 떠올리고 있다. /사진=김경희 기자

신 위원장은 “처음 북한 노동자들은 중앙통제 하에 엄격한 관리를 받았다. 눈도 마주치기 어려웠다”면서 “그런데 2년 정도 지나니까 통제가 어딨나. 서로 툭툭 치면서 장난도 치고, 인사도 하고 그랬다”고 공단 초반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어 “콜라도 처음에는 ‘구정물’이라며 비난했지만 나중에는 엄청 좋아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직접 요구는 안하고 눈치를 준다. ‘시커먼 물’(콜라) 먹고 싶다고”라며 “조심한 부분도 있다. 성과금을 줄때도 생색을 내면 안됐다. 자존심을 건드릴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고 떠올렸다.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성과금은 많은 입주기업인들이 언급하는 애피소드 중 하나다.

최동진 디엠에프 대표도 “나중에는 북한 노동자들이 직접 보너스를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면서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사업이 잘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이 자본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의 자부심은 상당하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통일’을 만들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작은 변화들은 북한 노동자들만 찾아온 것은 아니다. 우리 측 노동자들과 입주기업 대표들도 기존에 갖고 있던 북한에 대한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신 위원장은 “처음에는 경계심도 있고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까 머리에 뿔도 없고 우리랑 똑같이 생겼더라”면서 “1년 정도는 불신이 있었는데 그것도 곧 사라졌다. 같은 목표로 작업을 하고 함께 생활하다보니까 나중에는 서로 간에 경계심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개성공단 주요 일지./그래픽=조나리 기자
개성공단 주요 일지./그래픽=조나리 기자

◇ 개성공단 재입주 희망 98%가 말하는 것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기업들 대부분이 여전히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입주기업 108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기업의 76.9%가 공단 가동 중단 이전보다 경영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사실상 폐업 상태라고 응답한 기업도 9.3%였다.

가장 어려운 점으로는 노무비 등 경영자금 부족이 61.1%로 1위를 차지했다. 거래처 감소 및 주문량 부족과 설비자금 부족은 뒤를 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와도 일치한다.

지난해 조사결과 대비 눈에 띈 차이점도 있었다. 개성공단 재가동 후 무조건 재입주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1년 전(26.7%)보다 2배 늘어난 56.5%로 집계된 것. 조건부 재입주 의사까지 합치면 개성공단 재입주 희망 비율은 98.2%에 달했다.

이는 입주기업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입주기업 대부분은 현재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상태다. 언어적·지리적·비용적 모든 측면에서 개성공단보다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0여년 간 숙련된 북한 노동자들에 비해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해외 공장 노동자들은 생산성 또한 높지 않다.

개성공단의 이 같은 이점은 우리 기업인들의 수익으로도 연결됐다. 개성공단 가동 당시 우리 입주한 우리 기업 수는 124개로, 고용된 북한 근로자는 5만4,000여명이다. 2014년 기준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북한에 지급한 인건비는 약 8,840만 달러(약 1,015억원)다. 이는 개성공단의 연간 생산액 4억6,997만 달러(약 5,400억원)의 18.8%를 차지한다.

반면 2014년 한국은행과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개성공단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은 부가가치 생산액 2조6,000억원~6조원, 생산유발액 3조2,000억원~9조4,000억원 규모로 추산했다. 개성공단으로 남측이 훨씬 더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던 것이다.

개성공단이 가동됐던 2005년부터 2016년 2월 폐쇄 전 2015년까지 집계한 연도별 입주현황과 생산액, 근로자 현황. 생산액은 2013년 6개월간 공단이 가동됐던 때를 제외하곤 매년 증가했다.(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개성공단이 가동됐던 2005년부터 폐쇄(2016년 2월) 전인 2015년까지 집계한 연도별 입주현황과 생산액, 근로자 현황. 생산액은 2013년 6개월간 공단이 가동됐던 때를 제외하곤 매년 증가했다. /자료 출처=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신 위원장은 “국민들이 개성공단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데,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경제적 이익에 대한 정부 차원의 홍보도 수반돼야 한다”면서 “개성공단을 통해 새정부의 한반도 신경제 지도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또 있다. 바로 개성공단이 폐쇄된 2016년 2월, 우리 정부가 1개 기업 당 관리자 한 명을 보내 주요 물품을 챙겨오도록 한 그날 이야기다. 고작 트럭 한 대에 인부 한사람이 가서 챙겨온다고 한들 얼마나 챙겨왔을까. 입주기업인들 대다수 재산이 개성공단에 남겨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절박한 심정을 북한 노동자들도 모르지 않았다. 이날 우리 측 관계자가 짐들을 트럭으로 옮길 때 도왔던 이들은 전날까지 함께 일했던 북한 노동자들이었다.

신 위원장은 “그때 트럭 운전해서 들어갔던 직원 얘기를 들어보니 그날 북한 측 인력도 대부분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면서 “그런데 일부 출근한 북한 직원들이 우리 관리자가 물건을 싣는데 하나라도 더 챙겨가라면서 도와줬다고 하더라. 그 말이 계속 맴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