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팩트체크
[이슈&팩트 (76)] 일왕 아닌 천황으로 부르는 게 외교적 관례일까
2019. 05. 02 by 정계성 기자 minjks@gmail.com
퇴위식을 마치고 궁을 떠나고 있는 아키히토 일왕. /AP-뉴시스
퇴위식을 마치고 궁을 떠나고 있는 아키히토 일왕.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에 대한 국내외 유력인사들의 사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총리가 공식서한을 통해 축전을 보냈다. 아키히토 일왕의 평화헌법 수호, 일본 과거사 사죄 노력을 높게 평가하는 내용이 주였다.

다만 아키히토 일왕을 ‘천황’으로 부르는 것에 대한 적절성을 놓고 한바탕 논란이 불거졌다.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문희상 의장, 이낙연 총리 모두 ‘천황’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일왕을 지극히 높이는 과도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과거사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가 컸다. 반면 일본이 사용하는 고유명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맞섰다.

이에 대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취재진과 만나 “(천황이라는) 표현은 외교 관례상 그렇게 써 왔고 다른 나라들도 역시 그렇게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고, 외교부는 “천황이 정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호칭”이라고 밝혔다. 공식석상에서의 발언이나 서한에는 ‘천황’으로 사용하는 게 국제외교적 관례라는 취지였다.

외교부에 따르면, ‘천황’이라는 호칭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과정에서 공식화됐다.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에 맞춰 청와대는 “앞으로 정부는 ‘천황’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이전까지는 천황과 일왕이라는 표현이 혼재돼 사용됐었다.

이후 한일관계의 부침에 따라 논란은 계속됐지만 수정은 없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독도 분쟁으로 대일감정이 격해지자 호칭을 ‘일왕’으로 공식 변경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실제 추진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한 차례 “일본왕”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천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상대국에서 사용하는 호칭 그대로 부르는 것이 국제외교 관례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영미권 국가들은 일왕에 대해 ‘the emperor’ ‘japan emperor’ ‘emperor of japan’으로 칭하고 있는데, 번역하면 ‘천황’과 비슷한 의미다. 일본은 천황을 영어로 ‘tenno’라고 쓰고 ‘emperor of japan’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의 표현을 서구권 국가들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아키히토 일왕에게 보낸 축전에 ‘Their Majesties the Emperor Akihito’라고 했었다.

중국 역시 ‘천황’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 인민보는 1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키히토 천황에게 축하전화를 했다’고 전했으며, 같은 날 중국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에서 “아키히토 천황은 1992년 중국을 방문하는 등 당 및 지도자들과 여러 차례 만나 중일관계 발전에 기여했다”고 논평했다.

주일중국대사관은 지난 2009년 ‘시진핑 부주석이 아키히토 천황을 접견했다’고 전했는데, 만남에서 시 주석은 아키히토 일왕을 “폐하”라고 불렀었다. 우리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공유하고 있으며, 같은 한자 문화권임에도 일왕 호칭에 대해서는 접근태도가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과 수교관계가 없는 북한은 ‘일왕’이라고 칭하거나, 상황에 따라 ‘왜왕’으로 격하하는 표현을 사용할 때도 있다. 국내 언론들도 주로 ‘일왕’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외교적으로 ‘천황’이라고 하는 것이 관례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