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드디어 국내 언론에 공개됐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이 드디어 국내 언론에 공개됐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기생충’은 ‘살인의 추억’ 이후 봉준호 감독의 놀라운 진화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봉준호의 진화는 곧 한국영화의 진화다.

배우 송강호가 지난 4월 진행된 영화 ‘기생충’ 제작보고회에서 남긴 말이다. 지난 28일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작이자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사상 첫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안긴 영화 ‘기생충’이 드디어 국내 언론에 공개됐다. 부자 가족과 가난한 가족을 통해 보편적 현상인 빈부격차, 계급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익숙한 소재를 활용했지만, 신선함 그 자체다. 대담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흥미로운 스토리와 새로운 캐릭터, 현실과 사회에 대한 풍자와 날 선 비판 등을 적절히 배합해 그동안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탄생시켰다. 송강호의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는 명문대생 친구의 주선으로 고액 과외 일자리를 얻는다. 동생 기정의 포토샵 실력으로 학력 위조에 성공한 기우는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 속에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 분) 집에 입성, 박사장 부부의 큰 딸 다혜(정지소 분)의 영어 교사가 된다.

젊고 아름다운 박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 분)의 신뢰를 단번에 얻게 된 기우는 백수 동생 기정(박소담 분)까지 그 집 미술교사로 끌어들인다.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은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게 된다.

‘기생충’ 속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 송강호(위 왼쪽)·장혜진과 이선균(아래 왼쪽)·조여정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 속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 송강호(위 왼쪽)·장혜진과 이선균(아래 왼쪽)·조여정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은 만날 일 없어 보이는 극과 극 두 가족이 어설픈 의도와 몇 번의 우연들이 겹치며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통해 공생이 어려워진 각박한 현대 사회의 자화상을 보여주며 ‘함께 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법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에 도달하기까지 두 가족의 충돌은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을 터트리며 웃음과 슬픔을 안긴다. 가족 구성원 모두 백수인 기택네 가족은 요금을 못내 휴대폰이 끊길 정도로 답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가족들의 일상과 대화는 팍팍한 현실과는 별개로 평화롭기 그지없어 웃음을 자아낸다. 또 가족의 고정 수입 확보를 위해 과외 선생 면접에 통과해야만 하는 기우와 기정의 치밀한 작전은 엉뚱하면서도 절박해,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영화의 주 배경인 기택네 가족의 반지하 집과 언덕 위 박사장 집은 두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대변한다. 기우가 면접을 보러 가는 동안 오르는 계단들과 다시 반지하에 이르기 위해 내려가야 하는 계단들은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넘어 현대사회의 수직적 질서에 대한 메타포다. 이를 통해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엮일 일 없어 보이는 두 가족의 삶의 배경을 사실감 있게 전달하며 설득력을 높인다.

‘기생충’에서 남매로 호흡을 맞춘 배우 박소담(왼쪽)과 최우식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에서 남매로 호흡을 맞춘 배우 박소담(왼쪽)과 최우식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은 표면적으로 ‘가족희비극’을 표방하지만,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의할 수 없는 영화다. 블랙코미디로 시작해 재난 영화·스릴러 등 수많은 장르를 아우르는데, 어느 것 하나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절히 배합돼 모든 장르적 재미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 장르가 변주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끝까지 흐름을 깨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

배우들의 열연도 눈부시다.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 송강호를 필두로 이선균·조여정·박소담·이정은·장혜진 등 모두 그동안 쌓아온 연기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스토리의  시작과 끝에 위치한 최우식은 극의 중심을 이끌며 유독 많은 분량을 소화하는데, 관객을  깊숙이 끌어당기며 제 몫 그 이상을 해낸다.

봉준호 감독은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까지 허를 찌르는 상상력과 새로운 이야기로 인간애와 유머, 서스펜스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재미를 선사해왔다.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베일을 벗은 ‘기생충’은 여전히 ‘봉준호’다운 영화이면서, 한층 진화한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마스터피스(masterpiece)다. 러닝타임 131분, 오는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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