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으로 돌아왔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으로 돌아왔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으로 돌아온 배우 송강호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심사위원장이 봉준호 감독에게 직접 전한 말이다. 하지만 ‘기생충’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송강호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불발됐다. 칸 국제영화제 규정상 황금종려상과 주연상은 중복 수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강호는 전혀 아쉽지 않단다. 남우주연상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기생충’을 담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이란다. ‘기생충’ 주연 배우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인으로서, 그리고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누구보다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했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의 진심에 기자도 덩달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첫 황금종려상이 송강호의 영화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대배우’는 달랐다.

‘기생충’에서 기택 역을 맡은 송강호 캐릭터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에서 기택 역을 맡은 송강호 캐릭터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이 선보이는 네 번째 작품인 ‘기생충’이 지난 30일 드디어 국내 관객과 만났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다.

부자 가족과 가난한 가족을 통해 보편적 현상인 빈부격차, 계급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생충’은 익숙한 소재를 활용했지만, 전에 보지 못한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며 언론과 평단,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기생충’에서 송강호는 구성원 모두 백수인 가족의 가장 기택 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허술하고 사람 좋은 백수 가장 캐릭터를 입은 그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와 미묘한 뉘앙스 전환만으로도 서사를 납득시키는 연기 내공을 발휘한다. 여기에 냉온이 공존하는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관객은 또 한 번 송강호의 새로운 얼굴과 마주한다.  

개봉 당일인 지난 30일 <시사위크>와 만난 송강호는 전 세계 영화인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왔지만 “국내 관객과의 만남이 제일 중요하다”며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드디어 개봉했다. 기분이 어떤가.
“제일 중요한 관객들과의 만남이다. 앞서 행사가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다. 이제 시작이니까,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고 그렇다.”

-황금종려상이라는 타이틀 덕에 관객들의 기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부담감은 없나.
“칸은 전통적으로 최고의 영화제인데, 큰 상까지 받고나면 상당히 어려운 예술 영화라는 선입견이 생기지 않나. ‘기생충’은 충분히 즐기고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런 선입견을 가질까봐 우려가 되긴 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 관객들은 다양한 작품들을 충분히 다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을 것 같다.”

-칸에서 첫 공개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송강호는 ‘괴물’(2006년 감독 주간), ‘밀양’(2007년 경쟁 부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 비경쟁 부문), ‘박쥐’(2009년 경쟁 부문)에 이어 ‘기생충’으로 다섯 번째 칸 진출을 달성했다.]
“깜짝 놀랐다. (내가 그동안) 운좋게 경쟁 부문에 세 번 가봤지 않나. 그래서 그 분위기를 안다. 비경쟁부문은 상당히 자유로운 느낌이 있다면, 경쟁부문은 쉽게 말해 ‘어떻게 만들었나’ 하며 지켜보는 분위기다. 아무리 거장 감독의 작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야유도 하고 퇴장도 한다. 그런 모습이 경쟁 부문의 풍경인데, 정말 깜짝 놀랐다. 완전히 무슨 VIP 시사회 같았다. 2,300명이 동시 다발적으로 즐거워하고, 몇몇 장면에서는 박수를 치더라. ‘살다 살다 이런 반응도 있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 아주 좋았다.”

송강호가 프랑스 칸에서 ‘기생충’이 첫 공개됐을 당시를 회상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송강호가 프랑스 칸에서 ‘기생충’이 첫 공개됐을 당시를 회상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어땠나. 이렇게까지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나. 
“‘칸 경쟁에 들어갈 것이며 황금종려상을 받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하하. 다만 봉준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2000,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부터 20년 동안 추구하고 견지했던 치열한 봉준호식 리얼리즘이 ‘기생충’에서 정점을 찍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작가로, 예술가로, 늘 존경하는 감독이지만, ‘기생충’은 작가로서의 야심이 딱 느껴졌다.”

-칸 경쟁 부문에 갔을 때마다 정말 수상을 했다.
“‘수상 요정’이라고 하더라. 하하. 정말 영광스럽다. 매번 폐막식에 참석하고, 상도 다 타지 않았나. 내가 상을 받은 건 아니지만, 그 어려운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니까. 전도연(‘밀양’ 여우주연상)부터 시작해서 그때부터 너무 기뻤다. 전도연은 알 거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고 기뻐했는지… 뭐 모를 수도 있고. 하하.”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였다고 들었다. 아쉽진 않나. 
“조촐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자축을 하고 있는데, 봉준호 감독이 새벽 세시인가 와서 ‘심사위원들이 (송강호가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였는데 중복 수상이 안 돼서 아쉽다고 하더라’라고 말을 하더라. 그런데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남우주연상의 카테고리에 담기에는 이 작품이 너무 아깝다고 감독한테 얘기를 했다. 내 진심이다. 황금종려상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지 않나. 전혀 아쉽지 않다. 더 큰 영광을 주신 것 같다.”

-봉준호 감독과 벌써 네 번째 호흡이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2003)을 시작으로 ‘괴물’(2006), ‘설국열차’(2013), 그리고 ‘기생충’까지 함께 했다.)
“진짜 친구 같다. 웃기고 재밌는 사람이다. 현장에서도 그렇다. 후배 배우들은 처음 하다 보니 긴장을 하는데, 봉 감독의 스타일을 보고 너무 좋아한다. 최고 감독이니까 선입견이 있지 않나. 집요하고 숨 쉴 틈 없을 것 같이 조여 오는 환경일 거라고 예상을 하다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니까 좋아하더라. 나는 그런 후배들의 표정과 반응들을 보면서 자꾸 웃기고 재밌는 거다. 뒤에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기택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가장이다. 실제 송강호도 한 가정의 가장인데, 가장으로서 바라본 기택은 어땠나.
“환경은 조금 다르지만,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이 됐다. 누구나 다 어려운 시절이 있지 않나. 기택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식구들한테 구박도 당하지만, 그 구박이 가장에 대한 혐오나 무시가 아니지 않나. 애정 어린 구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기택도 이것저것 사업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회 구조나 환경이 녹록지 않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됐고,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기택 말투가 굉장히 독특하고 재밌었다. 봉 감독의 요청이 있었나. 어떻게 대사 톤을 잡아나갔나.  
“사실 나는 봉 감독에게 ‘이 대사를 왜 이렇게 해야 하나, 이 부분은 왜 그런가?’라는 식의 질문은 잘 안 하는 편이다. 오랜 세월을 같이 해오면서 느끼는 무언의 호흡과 일종의 신뢰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극 초반 기택의 대사가 연극적면서도 만화적인 느낌이 든다. 봉준호 감독이 관객들에게 관망을 해달라 하는 장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여러분 반지하방으로 들어오세요’가 아니라 ‘빨리 몰입하지 말고 이 가족이 어떻게 사는지 객관적으로 봐 달라’라는 나름의 장치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하.”

송강호가 후배들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송강호가 후배들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많은 후배 배우들과 함께 했는데, 어땠나.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배우들이 다 제 몫을 잘 해줬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 소외되는 배역이 없었고, 다 각자의 몫이 균등하게 배분돼있으면서 개성들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후배들이 정말 잘해줬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후배들에게 조언도 해주는 편인가. 
“참 애매한 지점이 있다. 얘기는 한다.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연기라는 행위가 지적을 하고, 가르침을 주거나 가르침을 받는 분야는 아닌 것 같다.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연기한지 딱 30년인데, 오랫동안 하다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기도 하다. 단지 선배로서 후배에게 할 몫이 있다면, 본인 스스로가 다르게 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쉽게 연기에 대해 지적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있다. 그래서 더 자기점검이 필요할 것 같은데, 연기적 고민이 있을 때 어떻게 하나.
“눈치를 본다. 하하. 정확하게 물어보기도 하고, 모니터링도 한다. 오히려 더 분주하게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후배든 선배든 감독이든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런 환경이 점점 없어지니까 더 분주하게 체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다.”

-배우 생활 30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 또 앞으로 배우 송강호는 어떤 모습일까.
“처음 연극을 할 때도 앞으로 영화배우로서 대성을 꿈꾸고, 어떤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모든 배우들이 그럴 거다. 계획이 없어야 한다. 하하. 그런 계획을 세우고 배우를 시작하지 않았고, 배우로서의 성공의 가치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걸 좇았다면 벌써 그만뒀을 거다. 사실 연기에 대해서 작품에 대해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태도가 아니면 견디기 힘든 과정이다. 그렇다보니 긴 세월 과분하게 사랑도 받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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