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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의 낙인⑧] 시술 시기·사유·안정성이 임신중단 논점
2019. 05. 31 by 은진 기자 jin9eun@sisaweek.com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재판소 선고 내용에 관한 세부입장과 향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뉴시스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재판소 선고 내용에 관한 세부입장과 향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와 관련된 현행 형법 조항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 낙태(인공임신중절) 허용 여부는 젠더뿐만 아니라 진보와 보수, 종교적 문제까지 얽혀있는 복잡한 이슈다. 내년 4월 치러지는 21대 총선을 감안하면 제대로 된 논의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부족하다. 낙태죄 폐지를 외쳐왔던 여성·시민단체가 “다시 출발점에 섰다”라고 평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재 판결 이후 국회에서 발의된 첫 번째 법안은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낸 개정안이다. 현행 헌법에서 낙태한 여성과 여성의 승낙으로 낙태시술을 한 의료인을 처벌하는 규정을 전부 삭제했다. 태아의 생명권만을 중심에 둔 ‘낙태’라는 용어는 모두 ‘인공임신중절’로 바꿨다. 또 여성의 승낙 없이 낙태하게 해 상해를 입히거나 사망하게 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각각 징역 7년 이하, 징역 3년 이상으로 현행보다 강화했다.

향후 입법 과정에서 가장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낙태 허용 주수’다. 낙태 허용 기준을 임신 주수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허용 주수’를 일괄적으로 정할 경우 생길 수밖에 없는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 의원의 개정안도 그런 측면에서 비판을 받았다. 정의당 내 페미니스트 모임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은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낙태를 허용하는 특정한 사유를 명시하는 것 자체가 헌재 판결 의도와 배치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의원의 개정안은 기존 허용 사유 외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넣어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넓히자는 취지를 담았다. 하지만 사유 구성 방식에 따라 여성이 임신중단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의당 정책위원회와 여성위원회가 주최한 낙태죄 위헌 결정 관련 입법 토론회에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인공임신중절 허용은 불법의 영역을 좁히고 임신중단을 합법의 테두리로 포섭하는 역할을 한다”면서도 “이를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이러한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낙태죄를 유지하면서 어떤 ‘사유’를 예외로 두는 한 임신을 유지하도록 강제할 것인지 중단하도록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국가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사유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사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신체의 완전성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고 짚었다.

◇ 낙태시술 가능한 의료인에 대한 고민

2020년 12월 31일 이후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되더라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진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쟁점 및 입법과제’ 보고서와 관련 토론회를 통해 ‘의료인의 낙태에 대한 양심적 거부’에 대한 논쟁을 제시했다. 보건복지여성팀 김주경 입법조사관은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 등 ‘신념에 의한 거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넓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어 충돌될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현재 일반 의사 자격을 얻고 전공의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오래전부터 산부인과 의사 부족현상이 나타나 실제로 산부인과 의사도 많지 않다. 또 지금껏 낙태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의과 과정 중에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라며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임신중단 합법화 후) 늘어나는 서비스와 시술하는 의료진들의 밸런스가 맞지 않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 국가가 완급을 조절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동식 연구위원은 “임신중단의 안정성에 대해 의료인이 어떻게 인지·숙려하고 있으며 지침이 마련돼 있는지 내년 말까지 입법을 만들어가야 되는데 지금 1년 남았다”라며 “실제적으로 제가 만난 산부인과 의사들만 봐도 (임신중절 수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안전하지 않은 시술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실질적으로 임상교육을 받은 사람도 많지 않다. 지금이라도 (임신중절수술) 교육과정을 준비해야 된다. 지금부터 준비를 해서 법이 만들어지는 시점부터는 안전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을 주도해온 시민단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형법상 임신중지 처벌 조항 전면 폐지 ▲임신중지 정보 제공 및 상담 시스템 마련 ▲정부부처를 아우르는 정책 연계 시스템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장애·질병·연령·경제적 상황·지역적 조건·혼인 여부·교육 수준·가족상태·국적·이주상태·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사회구성원들이 아이를 낳을 만한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미래를 꿈꿀 수 없다”며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는 성평등 사회,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그 책무를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