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조정하고 있다. 자꾸만 인분 냄새가 난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조현병 환자의 망상은 의심에서 비롯된다. 달리 설명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자연히 위축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증상이 심해지면 돌발 행위가 뒤따른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거나, 반대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을 택한다. 어느 쪽도 결과는 비극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편집자 주>

/ 그래픽=이선민 기자
조현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기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 그래픽=이선민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국내 조현병 환자는 5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1%라는 유병률이 그 근거다. 하지만 실제 조현병으로 진단을 받고 진료를 받은 국내 환자는 10만 7,662명(국민건강보험공단, 2017년 기준)으로 집계됐다. 추정되는 인원의 약 21%만 치료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음성화됐거나, 아직 발병 전일 가능성이 높다. 조현병은 보통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인은 한가지로 꼽기 어렵다. 유전적 성향, 환경적 영향, 현 상황에서의 스트레스를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다. 조성남 치료감호소 소장은 “유전적 소인이 있고 환경적 문제가 있어서 폭발 직전에 있더라도 현 상태가 안정적이면 발현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반대로 현 상태가 불안정하면 그것이 트리거(trigger)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불치병은 아니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조기 발견으로 치료를 일찍 시작할수록 호전이 더욱 빠르다. 하지만 현실에선 조기 발견 사례가 드물다. 사춘기 현상으로 착각하기가 쉽고, 음성 증상일 경우 심각성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감정과 행동이 둔해지고,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만으로 조현병을 의심하기 어려운 것이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조현병 사건’의 경우 망상과 환각을 동반하는 양성 증상에 따른 결과다.

◇ 강력사건에 대한 시각차

권오용 변호사는 “조현병 환자가 관련된 사건들은 대부분 그 가족들이 피해를 입는다. 다른 사람을 헤칠 정도로 잔인한 사람들이 아니다”면서 “법원도 사건의 정황을 보고 판단한다. 과거 조현병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범죄가 모두 면책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진주방화살인사건의 안인득과 조현병 환자가 동일 선상에서 거론되는데 우려를 표시했다. 사건의 초점을 “조현병 환자가 아니라 개인의 일탈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권오용 변호사는 과거 자신이 맡았던 사건을 일례로 제시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한 여성이 가정을 꾸리고 쌍둥이를 출산했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약물 치료를 중단한 뒤 쌍둥이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모두가 피해자였다. 사건 이후 쌍둥이의 엄마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가족들은 병으로 인한 사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힘들어했다. 권오용 변호사는 “약물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상황이 비극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반면 안인득의 경우 “의도적인 범행에다 행위의 결과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범죄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판단했다. 권오용 변호사가 “범죄의 원인을 조현병과 연결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는 과거 정신질환을 앓고 난 뒤 검사에서 변호사로 전향했다. 현재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사무총장으로, 정신질환자들의 인권 보호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그래픽=이선민 기자
진주방화살인사건의 피의자 안인득의 사례로 볼 때,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시스템 보완이 시급히 필요하다. / 그래픽=이선민 기자

조성남 치료감호소 소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정신질환이 범행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망상으로 인해 자신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믿게 된 조현병 환자의 경우 범행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자기방어 차원이다. 조성남 소장은 “환자 입장에선 자신을 죽이려는 대상과 싸우기 위해 대비를 하고 상상 속에서 복수도 한다”면서 “망상과 환청 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한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안인득의 경우도 약물 치료 중단이 사건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보호감찰을 받을 때만 해도 치료의 효과가 있었으나,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 약 3년 동안 치료를 중단하면서 상태가 많이 나빠졌다는 것. 안인득은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고 있다. 과거 편집증 조현병으로 진단을 받고 2011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68차례에 걸쳐 치료를 받은 사실이 있는 만큼 진단 결과가 달리 나올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 강제입원에 대한 시각차

현 국면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은 경찰이다. 조현병 환자들이 연루된 사건 사고가 경찰의 미흡한 대응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안인득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 폭행, 오물 투척, 스토킹 등으로 8건의 경찰 신고가 있었다. 그때마다 경찰은 경미한 소란으로 지나쳤다. 5명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정신 병력이 확인됐고, 안인득의 가족들이 강제입원에 실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커졌다.

강제입원이 가능한 제도는 응급·행정·보호입원 등 세 가지다. 이중 응급입원은 경찰이 관여할 수 있다. 신고가 수차례 계속된 만큼 경찰이 응급입원에 적극 나섰더라면 사건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논리가 뒤따른다. 하지만 현실에선 괴리감이 컸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입장에선 강제로 입원시키는 게 부담”이라고 말했다. 환자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민사적 책임과 징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결국 인권이 문제다. 이웅혁 교수는 ‘경찰의 판단’을 우선시 했고, 조성남 소장은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인권 보호가 강화되면서 경찰은 역할에 한계가 생겼고, 의료진은 입원 치료에 대한 회피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양측 모두 정신질환자 치료에 있어서 소극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병식이 없는 조현병 환자의 경우 치료 거부로 인한 방치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성남 소장은 “입원을 권유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보호자의 몫”이라면서 “책임·판단능력이 떨어진 환자가 치료를 거부한다고 해서 그대로 두는 것이 인권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의 책임능력이 인정되면 그 뜻을 존중하는 게 맞지만 “책임능력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강제로라도 치료를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인권과 책임능력을 혼동하면 안 된다는 것. 인권에 앞서 “병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게 조성남 소장의 생각이다.

/ 그래픽=이선민 기자
고 임세원 교수의 유족이 조현병 환자에 대한 낙인을 우려해 당부의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 그래픽=이선민 기자

권오용 변호사는 반문한다. 2017년 지출된 정신건강 관련 비용(5조 372억원) 중 96%(4조8359억원)가 병원과 의료기관에 사용됐다는 점에서, “많은 돈이 투입된 만큼 환자가 치료되고 회복되는 결과가 나왔는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신 의료는 입원 위주로, 병원에서 약 먹는 것 외에 치료라고 할 게 별로 없었다”고 꼬집었다. 그가 탈원화와 함께 의료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 관리 시스템 보완 시급

각 진영에서 강제치료를 바라보는 시각차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냈다. 정신질환자들의 회복을 위한 사회적·국가적 관리 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대 여론을 사고 있는 치료감호에 대해서도 공통되게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최근 조현병 환자의 상해치사 사건을 맡아 변론을 마친 임대진 변호사는 “사건을 맡기 전까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은 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대화가 안 된다. 어머니를 도사님으로 부르고, 자신이 구치소에 수감된 것을 수련 중이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심신미약 이상으로 사리 분별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환자 당사자와 우리 사회를 위해서라도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성남 소장도 “정신이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무죄가 되지 않는다”면서 “역사적으로도 과거 NGRI(Not guilty by reason of insanity)에서 GBMI(guilty but mental ill)로 바뀌었다. 정신질환에 대해 죄를 묻지 않았다면 지금은 죄를 묻되 그 원인이 정신질환일 경우 교도소 수감보다 치료를 먼저 받게 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고 임세원 의사의 유족이 남긴 당부의 메시지는 방향키가 될 수 있다. 임세원 의사는 자신의 조현병 환자로부터 살해당했다. 하지만 그의 유족은 “평생 환자를 위했던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의료진의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유족은 부조금 1억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