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조정하고 있다. 자꾸만 인분 냄새가 난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조현병 환자의 망상은 의심에서 비롯된다. 달리 설명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자연히 위축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증상이 심해지면 돌발 행위가 뒤따른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거나, 반대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을 택한다. 어느 쪽도 결과는 비극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편집자 주>

/ SBS 비디오머그 화면 캡처
조현병 환자 가족들은 강력사건으로 조현병이 알려지면서 오해와 편견이 생긴데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 SBS 비디오머그 화면 캡처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모소 대나무는 중국 극동지역에서 자라는 희귀종이다. 씨를 뿌린 지 4년이 지나도록 크기가 3cm에 불과해 죽은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5년째 되는 날 반전을 보여준다. 매일 30cm 이상 자라기 시작하는 것.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루는데 6주가 채 걸리지 않는다. 성장의 속도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그간 잊고 지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에게 모소 대나무의 이야기는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된다.

A씨도 모소 대나무가 자신의 아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들은 고교 2학년 때 조현병이 발병했다.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약물과 재활 치료에 힘썼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애간장이 녹는다’, ‘까마득하다’는 말을 사무치게 깨달았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아들은 2017년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됐다. 그는 “아직 증상이 남아있지만 절망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면서 “우리 아들도 모소 대나무처럼 인고 끝에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예비범죄자로 몰지 말아야”

실제 더디지만 재활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조현병환우회(심지회)를 이끌고 있는 B씨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B씨의 딸은 대학에 진학한 뒤 조현병이 발병했다. 한때 망상과 환시로 음식을 거부한 탓에 목숨이 위험할 만큼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기도 했다. 당시 의사는 그에게 “(딸이) 일주일 밖에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딸은 어느 덧 40대 중반의 여성이 돼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B씨는 “세상에 재활이 안 되는 병은 없다”며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문제는 가족들의 보살핌에서 벗어난 조현병 환자들이다. 이들이 최근 강력 범죄를 일으키면서 조현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만들었다. 여기엔 언론의 책임도 컸다. 조현병 환자를 예비범죄자로 연관 짓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문제 해결의 초점이 빗나갔다. 조현병 발병과 회복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치료 설계,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시스템 보완이 아닌 무조건적인 격리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는 당사자는 물론 그의 가족들에겐 상처다.

2017년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률은 0.136%다. 반면 같은 기간에 발생한 전체 인구의 범죄율(3.93%)은 이보다 약 30배 높았다. 강력 범죄율 역시 정신질환자(0.014%)가 전체 인구(0.065%) 비율보다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범죄를 저지르는 조현병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다만 강력 범죄율에 대해선 해석의 여지가 있다. 2018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정신질환자 범죄 예방 및 치료 지원을 위한 정책방안’에 따르면, 일반인(1.46%)에 비해 정신질환자(9.71%)의 강력 범죄 비중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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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은 회복과 재활이 가능하다. 실제 조현병을 극복하고 사회에 복귀한 이른바 ‘회복자’들은 사회의 올바른 지식을 강조하고 있다. / SBS 비디오머그 화면 캡처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직관상으로 볼 때 조현병 환자가 강력 범죄를 더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토대로 실태 조사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은 사건의 원인을 치료 중단·방치로 보고 가정에서 책임질 수 없는 조현병 환자의 경우 사회와 국가에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위한 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강력 범죄를 일으킨 조현병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망상과 환청 등의 급성기 증세를 보이고 있다. 병식이 없어 치료를 중단했고, 주변의 방치 속에서 병을 키워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평생 격리할 게 아니라면 치료는 물론 재발을 막는데 힘써야 한다. 재발이 거듭될수록 만성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재범의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른 조현병 환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다. 

◇ “환자 혼자만의 문제 아냐”

하지만 갈 길이 멀다. 현재 의료 체계는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문턱이 높다. 환자 당사자와 가족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절망적 메시지, 의료 행위에 대한 설명 부족, 턱없이 비싼 의료비 등으로 상처를 받은 사례가 많았다. 특히 C씨는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라는 말 이외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치료를 받았다면 병을 키우지 않았을 것이다”면서 “의료계에서도 조현병에 대한 의식과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씨의 20대 아들은 지난해 5월 조현병이 발병했다. 사춘기인 줄 알고 무심히 지나갔던 증상들이 한스럽다. 그는 아들이 입원한 뒤 면회가 된 날부터 매일 병실에서 아들의 곁을 지켰다. C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병원에서 전공의가 상태 체크하고 약을 주는 것 외에 해주는 게 없더라. 그래서 직접 논문까지 찾아보며 공부했다”면서 “논문을 읽어가며 의사와 상대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행히 C씨의 아들은 증상이 호전돼 집으로 돌아왔다.

이에 대해 조성남 치료감호소 소장은 “박리다매 진료로 내몰린 국내 의료 체계”를 꼬집었다. 그는 조현병을 포함한 정신질환자의 가족들이 의료 서비스에 불만족을 느끼고 있다는데 수긍하면서 “충분하게 환자를 살피고 가족들과 상담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 의료진 역시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조성남 소장은 “의료진의 판단을 믿지 못하는데 치료가 되겠는가. 결국 환자와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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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 가족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환자도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SBS 비디오머그 화면 캡처

근본적인 대책은 현 의료 체계의 개선 외에도 환자의 퇴원 이후 재활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조성남 소장은 “환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고,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권오용 변호사 역시 “지역 사회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 가족들의 의견도 같았다. 현재 조현병 환자들의 회복을 위한 재활센터는 물론 전문 인력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 “일자리가 재활 최고의 방법”

조현병을 앓고 있는 30대 딸을 둔 D씨는 “환자마다 현 상태와 관심사가 모두 다른데 센터와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일률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관리 수준에 머물고 있으니 환자들의 회복과 재활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문제는 이후다. C씨는 “증상이 얕은 환자나 회복이 빠른 환자의 경우 자신보다 뒤떨어지는 그룹에는 가기 싫어한다”면서 “집밖을 나가는 것을 포기한 환자는 사회활동이 없어지면서 증세가 악화되고, 병원에 다시 입원하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권오용 변호사는 “국가 재정을 효과적으로 써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현재 입원 위주에서 재활과 회복을 위한 서비스 확대에 재정이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조현병 환자 가족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일자리’다. 일자리는 재활의 또 다른 장소가 되는 것과 동시에 환자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가족들은 일자리를 통한 경제적 독립이 진정한 회복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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