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조정하고 있다. 자꾸만 인분 냄새가 난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조현병 환자의 망상은 의심에서 비롯된다. 달리 설명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자연히 위축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증상이 심해지면 돌발 행위가 뒤따른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거나, 반대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을 택한다. 어느 쪽도 결과는 비극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편집자 주>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강했다. 이유는 하나다. 조현병 환자를 예비범죄자로 오인할 수 있는 왜곡된 보도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조현병환우회(심지회)에서 만난 한 회원은 “같은 사고를 저질러도 일반인은 개의치 않게 넘어가는데, 왜 조현병 환자는 병명이 부각되느냐”면서 “범죄를 정신질환과 연결시키면 안 된다. 조현병 환자가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의 범죄율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2017년 대검찰청에서 발표한 범죄분석 보고서가 일례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가운데 범죄를 저지른 비율(0.136%)보다 전체 인구의 범죄율(3.93%)이 28.9배 높았다. 그럼에도 여론은 냉담했다. 조현병 환자를 격리 대상으로 분류, 강제로 수용해야 한다는데 의견이 쏠리고 있다. 환자의 가족들은 “언론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 그래픽=이선민 기자
최근 사회적 화두가 된 조현병에 대해 언론이 그동안 무책임한 보도를 남발한 게 아니냐는 따가운 질책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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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십으로 끝난 조현병 사건, ‘진짜’ 팩트는 빠졌다

실제 언론 관계 전문가들도 “언론이 제기능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언론인권센터 이사를 맡고 있는 김성순 변호사는 “조현병을 다루고 있는 사건 보도들을 보면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가십거리로 소모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조현병은 국가적·사회적 차원에서 보듬고 해결해야 할 부분이지만 정작 이에 대한 논의는 뒤로 빠져버렸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이진아 변호사는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과정에서 다른 언론사가 보도하지 않은 다른 면을 보도하려고 하다 보니 사건과 관계없는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정작 보도해야 할 조현병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전달은 이뤄지지 않고 자극적인 부분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쟁적 보도가 낳은 폐해는 소송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법정에서 기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항변이 바로 “다른 언론에서 쓴 것을 그대로 썼다”는 것이다. 

이진아 변호사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법원에선 수사기관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사용했을 때도 언론인이라면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는지 확인하고 써야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사법부의 판단이나 기존의 법률들이 이미 제정돼 있음에도 언론의 보도 행태가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진아 변호사는 언론인권센터 내 한국언론피해상담소장과 언론피해구조본부장을 맡고 있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이 조현병 사건을 자극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미디어 구조를 주목했다. 그는 “선정적인 사건일수록 정제해서 보도해야 하는데 도리어 디지털 유통 과정에서 클릭수를 받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팩트를 전달한다는 미명 하에 기사를 노출시키려는 고도의 나쁜 전략이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독자들은 갈수록 둔감해지고, 언론은 갈수록 선정적으로 보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홍식 교수는 독자들의 정신적 건강을 우려하기도 했다.

◇ 피해자가 ‘진짜’ 원하는 것은… 언론의 고민이 없다

특히 김성순 변호사는 피해자 측의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과한 보도’가 많다고 판단했다. 가해자의 신상과 병명을 공개하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게 “당장은 피해자 측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는 있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피해자 측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가해자가 잘못한 부분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달라는 것이지 병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달라는 게 아닐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성순 변호사의 주장처럼 고(故) 임세원 교수의 유족도 조현병 환자에 대한 혐오로 고인의 죽음이 헛되질 않길 바랐다. 비록 고인은 자신의 환자로부터 살해를 당했지만 “의료진의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당부 메시지를 남겼다. 유족은 부조금 1억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김하정 언론인권센터 사무차장은 “유럽의 지역사회에선 정신장애자와 일반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오고 있다”면서 “이와 같은 분위기를 우리나라에서도 조성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문제는 언론이다. 그는 “정신장애가 문제라고 말하기보다 정신장애를 유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데 관점을 맞춘 기사는 보기 힘들다”면서 “언론이 역행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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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관련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를 예비범죄자로 오인하게 한 언론 보도의 행태에 자성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 그래픽=이선민 기자

그런 점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언론보도준칙의 필요성이 제기될 만하다. 앞서 조근호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과장은 정신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언론보도준칙을 통해 정신질환과 폭력성을 연관 짓는 보도나 ‘조현병 환자’라는 표현을 하지 않는 해외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하정 사무차장은 “준칙 이전에 가이드라인이라도 만들어진다면 기자들에게도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성순 변호사도 “표현의 자유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유럽처럼 법제화하고 도입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는 우리나라 언론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을 우선시했다. 공감해야 할 대목은 “언론 시장의 경쟁력과 콘텐츠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성순 변호사는 “언론의 경쟁력이 확보돼야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만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자정 없는 언론, 독자의 신뢰 얻을 수 없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언론의 자성이다. 유홍식 교수는 “보도 준칙들은 언론인이 지킬 때 유용한 것”이라면서 “준칙을 아무리 만들어도 언론인이 지키지 않는다면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때문에 그는 “언론인이 스스로 모여 자정을 선언하고 사회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언론이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독자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게 유홍식 교수의 주장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디지털뉴스리포트2019’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뉴스 신뢰도는 22%에 머물렀다. 조사대상 38개국 중 최하위다. 이에 대해 유홍식 교수는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 언론도 독자의 신뢰를 못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미국의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프랑스의 르몽드처럼 독자들이 믿고 볼 수 있는 언론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 존경받는 언론이 존재하길 바란다”고 일침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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