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전혜진. / NEW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전혜진. / NEW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탄탄한 연기력에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 작품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 온 배우 전혜진. 그가 또다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를 통해서다. 마약 브로커 춘배로 분한 그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캐릭터를 완성, 스크린을 집어삼킨다. ‘비스트’ 춘배는 전혜진이어야만 했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비스트’는 희대의 살인마를 잡을 결정적 단서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은폐한 형사 한수(이성민 분)와 이를 눈치챈 라이벌 형사 민태(유재명 분)의 쫓고 쫓기는 범죄 스릴러다. 2005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오르페브르 36번가’를 리메이크했다.

극중 전혜진은 희대의 살인마를 잡을 결정적 단서를 쥔 마약 브로커 춘배를 연기했다. 춘배는 한수를 비롯해 민태까지 혼란에 빠트리는 인물로 첫 등장부터 강렬한 존재감으로 관객을 극으로 끌어당긴다.

전혜진은 피어싱과 타투·스모키 메이크업 등 파격적인 스타일링부터 말투·걸음걸이까지 독특한 개성의 춘배를 입체적으로 그려내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시나리오 당시 남성 캐릭터였던 춘배는 전혜진을 만나 여성 캐릭터로 재탄생됐다. 이정호 감독은 “단언컨대 전혜진 이외에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캐릭터”라며 그의 열연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역대급 캐릭터가 탄생했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전혜진은 “춘배의 매력에 매료돼 출연을 결심했지만, ‘잘 해낼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고 털어놨다.

전혜진이 ‘비스트’ 춘배 캐릭터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 NEW
전혜진이 ‘비스트’ 춘배 캐릭터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 NEW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은.
“춘배에 대해 염려가 너무 많이 됐는데, 크게 어긋나지 않게 생각대로 갔고 다른 인물들과 잘 어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춘배가 조금 더 마무리를 지었으면 어땠을까. 이정호 감독님도 그러시더라. ‘춘배를 조금 더 할걸 그랬어’라고. 감독님이 처음에 ‘춘배가 살면 이 영화가 산다’라고 말했었다. 춘배가 조금 더 영화에 침투가 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춘배가 굉장히 독특하고 강렬했다. 캐릭터를 구축했던 과정이 궁금하다. 
“춘배의 외형은 누구도 아닌 전혜진의 메이크업과 헤어를 만들기 위해 되게 많은 자료들을 참고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많이 고민을 하고 시도한 끝에 지금의 춘배에 가까운 모습을 첫 촬영 날까지 잡았던 것 같다. 문신은 원래 얼굴 전체를 덮으려고 했는데, 촬영 직전에 지웠다. 그런 준비 과정이 있었다.

짧은 시간에 감독님과 많은 상의를 했다. 또 춘배는 지금 급하고 절실하니까 언제라도 앞으로 나갈 준비가 돼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걸음걸이도 들떠있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튀는 것보다 감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혜진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으면 했다. 예상치 못했던 뭔가가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파격 변신을 해야 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그런 것(외적 변신)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그냥 춘배에 대해 대책 없지만 귀엽고,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춘배가 나오면 되게 좋았다. 그래서 (영화 속 춘배의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춘배는 정말 대책 없는 인물이다.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저지르고 스웨그가 몸에 배어있다. 누군가는 싫어할 수 있겠지만, 나는 춘배가 되게 좋았다. 그리고 불쌍했다.”

-춘배가 원래 남자 캐릭터였는데, 이정호 감독이 전혜진을 만나고 여자 캐릭터로 바꿨다고.
“처음 감독님이 먼저 제안을 해줬고, 나는 정말 좋았다. 그런데 막상 하려고 하니까 서로 고민이 있었다. 나는 캐릭터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됐고, 감독님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비스트’에서 파격 변신을 시도한 전혜진 스틸컷. / NEW
‘비스트’에서 파격 변신을 시도한 전혜진 스틸컷. / NEW

-가장 염려됐던 부분이 무엇이었나. 
“원래 남자였고, (여자로 바뀌면서) 흐름이 영화의 톤하고 맞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더 잘할 수 있는 연령대나 성별을 가진 배우가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남자였을 때는 다 이해가 되는데 (여자로 바뀌니) 호칭도 어렵고, 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더라. 연기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자칫 잘못하면 너무 과하게 보일까 봐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언론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정호 감독에 대해 굉장히 집요하다고 했다. 본인은 어떤 편인가.  
“집요하진 않다. 그래서 이정호 감독님이 얘기하는 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감독이 원하는 지점까지 가는 게 힘들더라. 그리고 현장이 내가 생각한 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건 또 가짜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오케이가 나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것저것 그냥 다 해보는 거다. 하하.”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고,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을 보여줘서 노력파일 거라고 생각했다.
“선을 두고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시나리오가 좋을 수 있고, 그 안에 캐릭터가 마음에 들 수도 있다. 정해놓은 룰은 없다. 욕심은 없는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항상 한다. 주변에서 자존감이 너무 낮다고 얘기를 하기도 한다. 매니저들이 되게 힘들어한다. 우선 작품이 들어오면 못할 것 같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게 되면 열심히 하고, 그 안에서는 치열하려고 하는 편이다. 나 혼자 하고 끝나는 작업이 아니지 않나. 또 계속 남는다. 책임을 져야 한다.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없다는 말도 의외다.
“그런 애들이 원래 센 척하는 거다. 하하.”

전혜진이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 NEW
전혜진이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 NEW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둔 엄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경험은 전혜진에게 어떤 변화를 줬나. (전혜진은 배우 이선균과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내 안에 이런 괴물이 있을지 몰랐다. 하하. 분노 조절이 안 되더라. 육아 서적을 되게 좋아해서 많이 봤지만, 아무리 이성적으로 하려고 해도 순간의 극한이 나를 제어할 수 없더라.  후회하기도 하고, 자는 아이들을 보며 너무 미안하고 그랬다. 그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그래서 현장이 굉장히 고맙기도 했다. 그런데 ‘비스트’는 힘들었다. 여길 가도 힘들고, 저길 가도 힘들었다. 그래도 육아가 더 힘든 것 같다. 하하.”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랐고, 이제 배우 전혜진으로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을 것 같다.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아이들이 컸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일이고 육아고, 어떤 게 더 우선인지 이제는 모호해졌다. 이 안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최대한 누구한테 누를 끼치지 않고 싶다. 아이들한테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남자 애들이라 20대까지도 손이 갈 것 같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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