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기 단축근로 제도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육아기 단축근로 제도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다시 뜨거운 여름입니다. 다행히 지난해만큼은 아니지만, 올 여름도 무더위의 기세가 대단합니다. 8월의 폭염을 마주하니, 작년 이맘때가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태어난 지 두 달된 딸아이와 ‘역대급’ 폭염에 맞서느라 더욱 혼이 빠졌던 여름이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가장 특별한 여름이겠죠.

어느덧 1년이란 세월이 지난 만큼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1년 전, 살인적 폭염 속에 유아차 외출에 나섰다 울음을 터뜨렸던 딸아이는 이제 혼자 걷는 수다쟁이가 됐죠. 뭣 모르고 무리한 외출을 감행했다가 땀을 한바가지 쏟았던 저 아빠도 이제 기저귀 갈기는 물론 목욕, 밥먹이기, 외출 등을 혼자서도 능숙하게 해내는 베테랑이 됐습니다. 이렇게 보면 1년이 새삼 참 긴 시간인 것 같네요.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잠시 일터를 떠났던 제 아내가 이달 들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겁니다. 아내는 지난해 5월부터 출산휴가를 시작해 6월에 아이를 낳았고, 8월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갔었습니다. 15개월 만의 복직이자, ‘워킹맘’으로서의 데뷔입니다.

복직을 앞둔 아내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 특성상 새로운 장소로 발령을 받게 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업무 상 달라진 것이나 새롭게 생긴 것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도 약 보름 정도 지난 지금은 별 탈 없이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저도 걱정을 덜었습니다.

아내의 복직과 함께 딸아이도 큰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여기서 다행인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내의 단축근무입니다. 임신했을 무렵만 해도 1년이었던 회사의 육아기 지원제도가 그 사이 2년으로 늘어났더군요. 덕분에 제 아내는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친 뒤에도 1년을 추가로 활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육아휴직을 더 하거나, 단축근무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진 겁니다. 아이가 만 8세(초등학교 2학년)가 되기 전까지 1차례 분할 사용도 가능하구요.

저희는 논의를 거쳐 우선 내년 3월까지 8개월 간 하루 4시간 단축근무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당분간은 가까이 사시는 저희 어머니가 아이를 조금 봐주시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스케줄 근무를 하다 보니 아침 일찍 또는 저녁, 그리고 주말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일주일에 3~4일, 하루 4~5시간 정도 도와주고 계십니다. 우선은 이렇게 각자 적응의 시간을 보내고, 차근차근 어린이집을 알아본 뒤 적당한 시기가 되면 보낼 계획입니다.

직접 체감하는 육아기 단축근로의 긍정적인 효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큽니다. 육아기 단축근로를 이용할 수 없었다면, 제 아내는 곧장 하루 8시간 일해야 했고 출퇴근 시간까지 족히 9시간 이상 직장에 써야했을 겁니다. 만약 그랬다면 어머니가 도와주시는 데에도 무리가 따랐겠죠. 어쩔 수 없이 일찌감치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아이를 데려가 적응기를 가지며 이런저런 어려움도 겪었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주변에도 저희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서 잘 지내는 것을 봤고요. 특히 딸아이가 낯가림이 적고 친구들을 좋아해서 어린이집을 보냈어도 금세 잘 다녔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가능하면 조금 더 집이라는 울타리에서 자랄 수 있게 하고픈 마음이 큰 게 사실입니다. 유난떠는 것일지 몰라도, 아직 걸음도 온전하지 않고 엄마아빠에 대한 애착이 점점 커지는 시기에 홀로 떼어 놓는다는 게 쉽지 않네요. 아마 심적으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육아휴직을 연장하는 것은 저희 부부 모두 원치 않았습니다. 앞서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육아문제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은 개인과 가정, 사회 모두에게 무척 불행한 일입니다. 단순히 돈벌이의 문제가 아니라,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아내가 자신의 길을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활동을 보장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 역시 정답은 아닐 겁니다. 결과적으로 ‘슈퍼엄마’를 강요하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여성의 지속적인 사회생활 기회를 보장하되, 육아 및 가정과 균형을 잡고 병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는 비단 여성과 엄마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아빠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변화이고요.

작년 여름, 폭염으로 고생했던 딸아이가 이제는 혼자 걷고, 춤까지 추곤 합니다. /시사위크
작년 이맘때, 태어나자 찾아온 최악의 폭염으로 고생했던 딸아이가 이제는 혼자 걷고, 춤까지 곧잘 추곤 합니다. /시사위크

이러한 측면에서 육아기 단축근로는 참 좋은 선택지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이 갓 지난 시기에 또 다시 급격한 변화를 맞기 보단, 여유 있게 변화에 대응하고 적응해나갈 수 있게 해주네요.

복직 이후 아내는 매일 집에서 아이와 씨름만 하던 때와 비교하면 훨씬 활기가 넘칩니다. 잠시나마 아이와 떨어져있다 보니 육아 스트레스는 줄고, 더 애틋해진 것 같고요. 아이 역시 하루 종일 엄마와만 붙어있을 때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또 저희 부부의 대화에 모처럼 아내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몸은 전보다 피곤하겠고, 이것저것 신경 쓸 일도 늘었지만 무척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또한 어느 정도 복직 적응을 마치고, 조만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 아내는 좀 더 자기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내년 봄, ‘풀타임 복직’을 하기까지 충분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셈이죠.

하지만 육아기 단축근로 제도가 확실하게 정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기도 합니다. 증가세에 있긴 하지만, 지난해 육아기 단축근로 이용자수는 3,82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턱없이 적은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및 공공부문이 아닌 중소기업이거나, 업무 특성으로 인해 육아기 단축근로 제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분들이 많은 게 현실이죠.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만 살펴봐도 육아휴직을 마친 뒤 육아기 단축근로를 이용할 수 없어 퇴사밖에 방법이 없다는 글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육아기 단축근로 제도가 보다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각종 제도적 지원,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됩니다. 무엇보다 업종 및 직군에 따른 다양한 지원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 기업 및 직원의 사정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육아기 단축근로를 적용할 수 있게 하고, 그에 맞는 지원과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사회적 차원의 인식 개선과 육아기 단축근로의 장점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필요합니다. 얼마 전, 한 연구원은 주 36시간 이상 일자리의 취업자수가 감소했다며 취업자수 증가만 볼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질적인 향상도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적잖은 언론이 같은 논조로 이를 전했고요. 앞서 팩트체크 섹션을 통해서도 다뤘습니다만, 저는 이러한 지적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더 적게 일할 수 있는 제도 덕분에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부디 육아기 단축근로 제도 및 문화가 우리 사회에 더 빠르게 확산되고, 긍정적으로 발전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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