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덕후’가 될 수 있다.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는 대상이 꼭 아이돌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이돌 덕후는 아무나 할 수가 없다. 인기 많은 아이돌일수록 더 그렇다. 아이돌 문화산업에서 인기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팬의 입장에선 음반·음원은 물론이고 사야할 것, 사고 싶은 게 많아진다는 얘기다. 아이돌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일명 ‘홈마(홈마스터)’들이 내놓는 상품도 소장 목록에 포함된다. 이를 두고 혹자는 부가가치라 말하고, 또 다른 혹자는 상술이라고 말한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 편집자주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방탄소년단, 김건모 넘었다’ 

최근 연예 뉴스를 장식한 제목이다. 방탄소년단(BTS)이 발매한 앨범(MAP OF THE SOUL : PERSONA)이 1995년 가수 김건모가 ‘잘못된 만남’으로 세운 330만장의 기네스 기록을 깨고 한국 음반 최다 판매량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무려 24년 만의 쾌거다. 

특히 온라인 스트리밍을 이용하는 음원시대에 이룬 쾌거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컸다. 복수의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과거 음반 중심으로 형성됐던 시장과 비교하면 1,000만장의 가치라고 환산했다. 이와 동시에 BTS의 상품성과 팬덤의 파워를 인정했다. 다시 말하면, 음원시대에서 음반 구매에 소비하는 팬층이 두텁다는 얘기다. 팬심의 다른 말은 ‘충성심’이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도 그들을 응원하는 아미(팬덤 명칭)가 있었기에 월드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다. / 뉴시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도 그들을 응원하는 아미(팬덤 명칭)가 있었기에 월드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다. / 뉴시스

◇ 과도한 팬심이 부른 차트의 역기능

팬들의 충성심은 음악방송 순위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보통 아이돌이 신규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기간은 2~3주 안팎이다. 이 기간 동안 출연하는 음악방송에서 1위 트로피를 안을 수 있는 기회는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대중성을 인정받은 곡이라면 자연히 순위(차트)에 오르겠지만, 짧은 활동기간에 많은 가수들 틈에서 신곡을 알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 팬덤의 충성심이 순위를 가른다. 얼마나 사고, 얼마나 듣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아이돌이 출연하는 음악방송은 ‘더 쇼(SBS MTV)’ ‘쇼! 챔피언(MBC 뮤직)’ ‘엠카운트다운(Mnet)’ ‘뮤직뱅크(KBS 2TV)’ ‘쇼! 음악중심(MBC)’ ‘인기가요(SBS)’ 등 6개 프로그램이다. 각 프로그램마다 1위를 선정하는 조건과 비중이 다르다. 하지만 음반과 음원을 합한 비중이 최소 40% 이상이다. 더 쇼의 경우 음반이 차지하는 비중만 40%에 달한다. 반대로 뮤직뱅크는 음반(5%)보다 음원(65%)에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방법이 어떻든 팬덤의 규모가 클수록 유리한 구조다. 실제 지난 7월 더 쇼에 출연한 A씨의 경우 동영상(유튜브 조회수), 전문가 평가, 사전 투표 부문에서 함께 후보에 오른 두 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음반·음원 부문과 실시간 투표 부문에서 만점을 기록하며 압도적 표차로 1위를 차지했다. 1위 후보였던 다른 두 팀의 음반·음원 점수는 A씨가 받았던 점수에서 3분의 1도 따라오지 못했다. A씨는 유명 그룹에서 솔로로 변신한 아이돌이다.

문제는 과도한 팬심이 부른 차트의 역기능이다. 아이돌 팬덤은 순위 산정에 반영하는 음원 점수를 높이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앨범 출시 전부터 각 음원사이트에 스트리밍을 하기 위한 아이디(ID)를 수집하고 사이트 이용료와 음원 다운로드를 위해 인력과 경비를 모은다. 여기에 복수의 팬들이 동참하면서 앨범 발매와 동시에 타이틀곡의 차트권 진입을 대비하는 것이다. 

국내 음원사이트는 멜론을 비롯해 지니 벅스 소리바다 네이버뮤직 엠넷뮤직 바이브 플로 등이다. 각 사이트마다 할인율은 다르지만 ‘음악만 무제한으로 듣는’ 이용권 결제를 위해선 최소 6,900원이 필요하다. 이와 별도로 개별 곡마다 다운로드를 하려면 수수료 포함 770원을 지불해야 한다. 만약 5곡이 수록된 앨범이 발매될 경우 한 사이트에만 한 아이디당 1만750원(6,900+770*5)을 결제하게 되는 셈이다.

◇ 멜론 측 “실시간 차트 항상 고민”

결과적으로 음원사이트들은 아이돌 팬덤을 통해 회원을 확보하고 수익을 창출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팬들은 차트 조작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브로커가 의뢰받은 가수의 음원을 스트리밍하여 순위를 올리는 이른바 ‘음원 사재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팬들의 자발적인 참여라 할지라도 의도성이 분명하다. 이는 결국 리스너(청취자)들의 선택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차트는 현상의 반영인데 차트가 현상을 만드니 차트에 올리는 게 목표가 된 현실. 왜 내가 원하는 음악과 뮤지션 소식보다 그들이 알리고자 하는 소식과 음악들을 봐야 하는가.”

가수 윤종신이 지난해 7월 숀의 차트 조작 의혹이 제기되자 자신의 SNS를 통해 지적한 말이다. 그가 꼬집은 ‘그들’이 의혹의 당사자나 소속사만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경쟁이 과열될수록 차트는 왜곡되기 쉽다. 차트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에 대해 음원사이트 3곳에 문의했으나 답변에 응한 곳은 멜론뿐이었다. 멜론은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다.

멜론 측은 답변서의 상당 부분을 ‘공정한 집계로 순위를 제공하고 있다’는데 할애했다. ▲수년 전부터 모니터링과 필터링 시스템 강화 ▲실제 이용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집계된 순위 제공 ▲멜론차트 세분화 및 플레이리스트 중심의 큐레이션 등 서비스 개편을 통해 “이용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고, 선호도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 특히 “실시간 차트의 순기능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돌그룹 워너원의 데뷔 앨범은 72만장 이상이 팔렸다. 앨범 판매량은 아이돌의 인기를 가늠하는 중요 기준이 된다. / 음반 판매 사이트 캡처
아이돌그룹 워너원의 데뷔 앨범은 72만장 이상이 팔렸다. 앨범 판매량은 아이돌의 인기를 가늠하는 중요 기준이 된다. / 음반 판매 사이트 캡처

가수 소속사들의 고민도 요구된다. 팬덤의 조직적 행위에 대한 당부의 말 대신 도리어 팬심을 부추기고 있는 게 소속사다. 음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마케팅이 그 일례다. 동일한 음반을 종류별로 내놓는다거나 앨범 구성품으로 지급되는 포토카드 등을 랜덤으로 지급해 팬들의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많으면 많을수록 모든 구성품을 모으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구성품을 뽑기가 어려워진다.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사례를 보자. 이들의 데뷔 앨범은 핑크와 스카이 버전의 두 종류로 발매됐다. 멤버가 11명인만큼 두 버전을 완성하기 위해선 총 22장의 앨범을 사야 됐다. 여기서 멤버별 커버와 포토카드는 랜덤 지급이었다. 랜덤 구성품을 멤버별로 맞추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팬들끼리 교환을 하고 앨범을 추가 구매하기도 한다. 팬들은 22장의 앨범을 멤버별로 모두 맞추면 ‘드래곤볼’이라고 불렀다. 드래곤볼을 완성한 팬은 앨범을 정가(1만7,000원)로 구매했을 경우 38만5,000원을 지불한 것으로 계산된다.

◇ 팬심 부추기는 소속사의 음반 마케팅

이 같은 아이돌의 음반 판매 마케팅은 예외 없이 동일하다. 팬심을 미끼로 한 각 소속사들의 랜덤 지급 방식은 팬들의 아우성에도 바뀌지 않았다. 음반 관계자들은 이에 대한 질의를 부담스럽게 받아들였다. 한 관계자는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아니냐”는 말로 답변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지금과 같은 마케팅에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될 만하다.

사단법인 한국음악콘텐츠협회는 아이돌 문화 산업에서 선두적 역할을 하고 있는 소속사와 인기 아이돌의 책임의식을 강조했다. 최광호 사무국장은 “자유시장 체제에서 비즈니스 판매 전략에 대해 100%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업계에서도 공론화를 통한 선순환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팬심을 악용하는 마케팅이 과열될수록 도리어 팬덤에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현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최광호 사무국장은 아이돌 음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뒀다. 음반의 용도가 청취에서 소장을 위한 MD(merchandise) 상품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CD로 음악을 듣는 사람은 드물다. 고사된 음반시장을 받쳐준 것이 바로 아이돌 음반인데, 사실상 CD가 아닌 구성품으로 들어있는 화보집과 포토카드 등을 소장하기 위해 구매한다”면서 “앞으로는 음반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보다 아이돌 팬덤을 가늠할 수 있는 시장으로 특화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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