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희 기자
김원웅 광복회장은 역사의 진실에 힘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부인하던 사실들이 결국 부력으로 떠올라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친일청산은 역사적 과제이자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 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아버지가 조선의열단에서 활동한 김근수 선생이다. 어머니는 여성광복군으로 유명한 전월선 여사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막걸리 심부름을 했던 아들이 바로 김원웅 광복회장이다. 그 시절, 문밖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뒤엔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했다. 스스로 입조심을 배웠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부모가 독립운동을 함께 한 동료의 상갓집을 다녀온 날이다.

“중학교 다닐 때인 것 같다. 그날은 상갓집을 다녀온 독립운동가들이 우리 집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저녁에 막걸리 심부름을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독립운동가들이 통곡을 했다. 이유가 궁금해서 엿들어보니, 셋방에서 숨진 동료가 가족들에게 ‘앞으로 독립운동은 절대 하지마라. 일본이 다시 쳐들어오면 친일파가 되라. 그래야 후손이 잘된다’는 유언을 남겼다더라. 그만큼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해방된 나라에서도 시련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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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은 친일청산을 위한 한 방법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을 제시했다. 공직후보자들에게 민법상 8촌 이내 가족이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돼 있다면 이를 공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 김경희 기자

그래서 김원웅 광복회장도 부모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를 볼 때마다 어른들은 ‘밖에 나가서 아버지가 독립운동한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것이 “친일파가 득세한 세상에서 생존하는 방법”이라고 깨우쳤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일제 때는 일본의 통치를 받았는데 해방 후에는 친일파의 지배를 받게 됐다”면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친일 미청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광복회관에서 진행됐다.

-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표현이 있을 만큼 후손들이 홀대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은 어땠는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해방 후에도 20~30대였다. 한참 일할 나이다보니 자식을 보살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다른 후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쁜 환경은 아니었다. 부모를 잃은 후손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가난의 굴레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해방 후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독립운동 사실을 숨겨야 했다. 일제 때 파출소장하던 사람이 경찰서장이 되고, 법원서기 하던 사람이 검사판사가 됐다. 군인은 더했다. 독립군을 토벌하던 만주군관 출신들은 장군이 되는데 독립군은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국군 초대 육군참모총장부터 21대까지 뒷말이 많은 게 아닌가.”

- 재향군인회와 갈등을 빚은 것도 같은 연장선인 것 같다.
“그렇다. 국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선엽은 독립군 토벌부대로 알려진 간도특설대 출신이다. 간도특설대는 일본 자체 평가에서도 독립군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말할 정도로 악랄했다. 한 마을을 불태우는 게 일도 아니었다. 중국 정부의 자료를 보면, 연변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항일열사가 3,125명인데 이중 85%가 조선인 독립군이라고 나온다. 약 2,600명 정도가 간도특설대에 살해당한 것이다. 지금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열사들이 많다. 그런데 백선엽이 영웅 소리를 듣고 있다. 말이 되는가. 그가 가장 흠모하는 사람이 시라카와 요시노리다.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죽은 일본군 대장이다.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흠모하면 윤봉길 의사는 어떻게 되는 건가. 백선엽을 대장으로 모신 국군에서 부끄럽게 생각해야 되는 게 아닌가. 이런 부분을 광복회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이전까지 광복회의 존재감이 미약했다.
“인정한다. 사실 설립 초기부터 문제가 있었다. 박정희 정부에서 쿠데타로 권력을 잡다보니 적통성이 결여됐다. 그래서 만든 단체가 광복회인데, 밀정으로 변절자 논란이 있는 이갑성을 내세우면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또 광복회장이라는 사회적 지위로 기득권층 일부에 편입되면서 역사적 진실을 말하는데 부담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광복회가 친일파 구색 맞춰주는 결과밖에 안됐다. 그래서 저는 광복회장 선거에서 친일청상을 말했다. 21대에 이르기까지 친일청산을 공약으로 내세운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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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의식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각 부처 관계자들이 정부의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김경희 기자

- 친일청산의 의미와 앞으로 전개할 방식은 어떤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친일 미청산에 있다.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하는 구조다. 그래서 애국이 안 되는 것이다. 친일파가 주도하는 나라는 애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친일을 청산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공직선거법 개정을 제시하고 싶다. 공직후보자들이 공개하는 목록에 재산과 전과 여부 등은 물론 민법상 8촌 이내 가족이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돼 있다면 이를 공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피선거권을 박탈하자는 게 아니다.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 올해 광복 74주년을 맞았다. 지금까지의 보훈 정책에 대해 평가를 해본다면.
“우선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의식에 대해 광복회 회원들도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식이 현실로 발현되기 위해선 각 부처의 정책과 예산이 뒤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2017년 8월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사라지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 대책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대통령의 의지만큼 각 부처에서 움직여주지 않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 광복회가 국방부에 독립군가 제창을 요청했다던데.
“군가집이 있다. 거기엔 독립군가가 하나도 없다. 반면 친일파 인사들이 작사·작곡한 군가가 수십 개에 달한다. 친일이 말하는 애국(愛國)의 ‘국’자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애국의 대상이 불분명한 노래를 군인들이 매일 군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친일파 인사들이 만든 노래를 빼고 독립군가를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아직까지 답이 없다. 문재인 정부와 국방부의 역사의식에 간극이 있다.”

-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가 종료됐다. 이에 대한 여야의 평가와 전망이 제각각이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엄밀히 말해서 지소미아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는 우리의 안보와 관련된 게 아니다. 일본과 미국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남북 협력을 통해서 서로 적대적이지 않은 관계를 조성하는 게 우리의 안보다. 지소미아로 한반도의 안보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소미아로 안보장사하는 사람들은 친일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일본과 협조를 하라는 얘기가 결국 일본의 경제보복에 무릎 꿇으라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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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소미아는 일본의 안보를 지키는 협정이라는 것. 도리어 그는 일본의 경제보복 원인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 김경희 기자

일본의 경제보복의 원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박정희 정권에서 체결한 한일조약과 박근혜 정권이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다. 두 협약으로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를 3억 달러로 퉁쳤고, 위안부 문제를 10억엔으로 처리했다. 여기서 피해 당사자의 의견은 없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의 한일조약을 보면, 36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가 없다. 일본 총리가 일본 국회에서 답하길, 한국에 3억 달러를 준 것은 독립축하금이었다. 일본은 가해자고, 우리는 피해자다. 일본은 우리를 축하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일본은 3년여 지배했던 필리핀과 맺은 조약엔 배상금으로 표기했더라. 잘못을 인정한 표현이다. 여기에 5억5,000만 달러를 지급했다. 우리보다 9년 전에, 2배 가까이 되는 배상금을 사죄와 함께 지급한 셈이다.

국제법에 따르면, 국가 간에 합의로 개인의 재산권을 박탈할 수 없다. 강제징용은 개인이 가진 노동에 대한 임금 청구권아닌가.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사자 동의 없는 합의는 전 세계에 통용되는 전시 여성의 인권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삼권분립이 정립된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하라마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면 일본의 경제보복에 원인을 제공한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보필한 정당에선 국민 앞에 겸허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여야 정쟁으로 삼을 일이 아니다.”

- 강제징용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결과적으로 일본 불매운동을 이끌어냈다. 
“일부에선 감정적이라는 말로 불매운동을 폄하하는데 동의할 수가 없다. 민족감정이라는 것은 원래 감정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자연스럽다. 다만 감정이라는 표현보다 공감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우리 국민들이 단결하고 있고, 그 모습을 보면서 국민 스스로 자긍심을 갖게 되는 것처럼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 친일찬양금지법 제정 추진 계획을 밝혔다. 정치권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인데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반대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의 반인류 범죄에 대해선 시효를 주지 않고 끝까지 추적해 법정에 세우고 있지 않은가. 인류문명사회의 큰 흐름이다. 여기에 우리나라만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적 흐름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법 제정은 불가피하다. 현재 구상하고 있는 방안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당의 후보가 결정되면 모든 후보에게 설문지를 보낼 것이다.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친일반민족 인사들의 국립묘지 안장 문제와 관련 상훈법 개정에 대한 의견이다. 둘째,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에 대한 의견이다. 답은 찬성, 반대, 무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답변을 취합해 공개하고 지역마다 배포할 계획이다. 이 역시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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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은 친일청산과 함께 통일운동을 강조했다. 그는 한일독립운동을 했던 남과 북의 양심이 하나가 되는 것을 통일이라고 설명했다. / 김경희 기자

- 이외 계획 중인 사업과 전망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안으로는 친일 미청산에 있다면, 밖으로는 분단이라 할 수 있다. 분단을 극복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독립운동가들이 바랐던 조국의 모습은 분단이 아니었다. 백범 김구 선생도 해방 후 이승만이 남쪽에서 단독 정부를 세우겠다고 했을 때 ‘어떤 불이익이 있더라도 외세에 의한 분단된 남한 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저는 통일이 한일독립운동을 했던 남과 북의 양심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한에 무너진 양심을 복원하는 것, 친일을 청산하는 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다.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하는 세력들이 일본 아베 총리의 주장에 놀라울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지 않은가. 그걸 염두에 두고 통일운동을 확장해나가고 싶다.”

- 독립유공자의 북한 방문, 북한과 역사자료 교류를 주장한 이유가 통일운동의 일환인가.
“그렇다. 장기적으론 휴전선 부근에 남북이 각 100만평씩 투자해 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 공원의 핵심은 홀로코스트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통해 일제의 잔학상을 알리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 남경대학살과 같은 사건들의 자료를 모아서 아시아에서 가볼 수 있는 역사적 관광코스로 만들어가고 싶다. 광복회 안으로는 예산 확보에 힘쓰고 싶다. 지금까지 광복회는 기능을 못하고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앞으로는 목소리를 키우고 역할을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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