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매 작품 독보적인 캐릭터 소화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배우 김명민이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감독 곽경택·김태훈)로 돌아왔다. 772명 학도병을 이끄는 유격대 리더 이명준 대위로 분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마음을 흔든다.
김명민은 오랜 무명 생활 끝에 2004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했다. 이후 드라마 ‘하얀거탑’(2007), ‘베토벤 바이러스’(2008), ‘육룡이 나르샤’(2016) 등과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 등을 통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에서도 제 몫을 해낸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평균나이 17세, 훈련기간 단 2주. 역사에 숨겨진 772명 학도병들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투입됐던 장사상륙작전을 그린 영화다.
한국전쟁 중 기울어진 전세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었던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양동작전으로 진행된 장사상륙작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곽경택 감독과 김태훈 감독이 공동으로 메가폰을 잡았다.
극 중 김명민은 유격대를 목숨 걸고 이끄는 이명준 대위 역을 맡았다. 출중한 리더십과 판단력으로 772명 학도병을 이끌고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인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실존 인물 이명흠 대위를 모델로 했다. 학도병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탓에 이명준 대위의 분량은 많지 않다. 하지만 김명민은 묵직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으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김명민은 “배우로서 해야 할 몫이라는 사명감이 생겼다”면서 남다른 책임감으로 작품에 임했다고 밝혔다.
-영화를 택한 이유는.
“다른 전쟁 영화하고는 확실히 차별점이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곽경택 감독님과의 작업에 대한 기대도 많이 했다. 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 곽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기 전이었는데, 느낌이 오지 않았다. 곽 감독님이 대본을 각색하면서 인물들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관련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더라. 그런데 남아있는 사료가 정말 없다. 몇 줄 기록된 게 다였고, 참전 용사 인터뷰나 유가족분들의 이야기뿐이었다. 그런 것들에 입각해서 인물들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됐는데, 분량과 상관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인천상륙작전만 이야기하고 알고 있는데, 최대 공을 세운 장사리상륙작전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모르는 걸까, 왜 묻힐 수밖에 없었을까 궁금했다. 배우가 연기도 열심히 해야 하고, 도덕적으로 위배되지 않게 살아야 하지만, 무언가를 알리고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해야 할 몫이라는 사명감이 생겼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그랬을 거다. 다 같은 마음으로 촬영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점이 있었나.
“곽경택 감독님이 현장에서 항상 강조했던 것이 ‘우리 영화는 큰 영화가 아니다. 학도병들의 희생, 그 숭고한 정신을 담는 영화다’였다. 진행 과정도 역사에 전해 내려오는 몇몇 안 되는 사료 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만들었다. 그들의 임무를 보면 무모하고 말도 안 된다. 정규군이 아니고 학생들에게 주어진 임무라고는 상상이 안 되는데, 다 해냈다. 너무 대단하고 위대한 작전이 됐다.
화려한 기교나 신파를 이끌어내는 요소가 없이 담백하게 갈 수 있었던 것이 우리 영화만의 특화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은 진정성이다.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다. 어리고 나약한 민초들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여서 목숨을 바치고 희생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자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명준은 실존 인물인 이명흠 대위를 모티브로 했다. 어떻게 접근했나.
“너무 자료가 없었다. 이 사람의 성격, 겉모습부터 생각과 사상, 당시 이명흠 대위의 포지션은 어느 정도였는지, 772명의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땠을지, 아이들을 데리고 작전에 나가야 했던 심정은 어땠을까, 리더로서의 마음이 무엇이었을지 고민했다. 유가족과 감독님의 말을 바탕으로 하나씩 만들어갔다. 위험한 감정선에 놓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정선은 학도병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이명준은 리더로서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만 갖고 연기했다.”
-분량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나.
“영화에 담긴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을 촬영하긴 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의 결과물이 주는 담백함에 걸림돌이 됐기 때문에 감독님이 과감하게 덜어내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배우 개인의 욕심을 생각하면 끝이 없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방해가 됐겠다 싶더라. 이명준 대위의 명분이 뭐가 중요할까 생각이 들었다. 내 몫은 최선을 다해서 충분히 해낸 것 같고, 감독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히 드러난 것 같아서 만족한다.”
-학도병을 연기한 후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정말 잘 하는 것 같다. 너무 똑똑하다. 감독님이 얘기하면 바로 알아듣고 해낸다. 내가 신인이었을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말 잘 하더라. 환경도 좋아졌다면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선배라고 해서 굳이 해줄 말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말보단 지갑을 열어야 한다. 하하. 먼저 다가오지 않는 후배들에게 먼저 말한다는 것 자체도 잔소리일 수 있어서 조심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들이 보이지도 않는다.”
-두 명의 감독과 작업을 해야 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없었다. 두 명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분야가 나눠져 있었다. 거의 모든 부분은 곽경택 감독님과 작업했고, 김태훈 감독님은 스케일이 크거나 비주얼적인 부분을 담아야 해서 보조 출연자들과 주로 촬영을 했다. 김태훈 감독님이 CG작업을 할 동안 곽경택 감독님은 대본을 계속 수정했다. 진정성 있게 담아내기 위해 모두 노력했다. 두 감독님이 왔다갔다 하시는 동안 우리(배우들)는 계속 현장에 있었어야 한다는 것 말고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하.”
-관객들이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을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의무라고 본다. 장사리상륙작전에 대해 너무 몰랐다. 창피한 이야기다. 알게 됐으니,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세대가 아닐까 싶다. 지금 청소년들의 나이다. 69년 전 자기 나이대의 친구들이 그 치열한 현장에 있었던 거다. 우리보다 더 느끼는 바가 많을 거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알리는 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자긍심이고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69년 전 그곳에 미래를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김명민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가치관을 다시 한 번 잡아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예전 작품을 통해 일개 배우의 영향력에 대해 느낀 적이 있다. ‘나 자신을 위해 연기하지 않겠다. 나 하나 우리 가족을 위해 연기하지 않겠다’는 가치관이 있었는데, 흐리멍덩해질 무렵 또다시 나를 잡아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언제 눈을 감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 배우로 살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로 살기 참 잘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