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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의 ‘알레오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 자신들이 버린 부천과 마주하나
2019. 10. 11 by 이수민 기자 sooomiiin@hanmail.net
강등 위기에 놓인 제주 유나이티드는 최근 홈구장에 조형물을 설치하고 다양한 응원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강등 위기에 놓인 제주 유나이티드는 최근 홈구장에 조형물을 설치하고 다양한 응원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시사위크=이수민 기자  2006년 2월, 당시의 부천 SK이자 지금의 제주 유나이티드는 충격적인 발표를 한다. 홈구장, 즉 연고지를 부천에서 제주로 옮기겠다는 발표였다. 당시 관중 동원이 리그 꼴찌에 머무는 등 흥행이 시원찮았던 부천 SK는 용역조사 결과를 연고지 이전 결정의 근거로 제시했다.

파장은 컸다. 부천 SK는 경인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프로축구 구단이었고, 국내 서포터 문화의 뿌리로 여겨지는 ‘헤르메스’의 열렬한 응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연고지 이전 결정 과정에서 부천 SK 구단은 부천시는 물론 서포터, 심지어 선수단 및 코칭스태프와도 전혀 논의를 하지 않았다. 오로지 경제논리에만 근거를 둔, 의리와 도리는 찾아볼 수 없는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응원해준 팬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배신감을 떠안아야 했다.

그로부터 어느덧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도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에도 축구공은 계속 굴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K리그는 계속되고 있고, 규모는 더 커졌다.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던 제주 유나이티드는 한동안 싸늘한 시선을 받았지만, ‘시간이 약’이란 말이 있듯 제주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비록 리그 우승에 닿지는 못했어도 상위권에 종종 이름을 올렸고, ‘감귤타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부천 SK가 떠나며 큰 상처를 입은 부천에서도 축구는 끝나지 않았다. 열성적인 팬들을 중심으로 부천FC 1995라는 새로운 구단이 창단됐고, 이후에도 많은 어려움을 꿋꿋이 딛고 일어섰다. 그 결과 지금은 K리그2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얄궂은 인연이자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부천FC가 다음 시즌 사상 처음으로 같은 리그에서 만날지도 모르겠다.

K리그1이 정규 라운드를 마치고 A·B그룹으로 나뉘어 파이널 라운드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제주 유나이티드는 순위표 가장 아래 머물고 있다. 제주 유나이티드의 승점은 23점, 11위 인천 유나이티드는 26점, 10위 경남FC는 28점을 기록 중이다. 그 위로는 볼 필요도 없다.

K리그1은 맨 꼴찌가 K리그2로 곧장 강등된다. 11위는 K리그2 플레이오프 최종 승자와 맞대결을 펼쳐 강등 또는 잔류를 결정한다. 강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선 최소 10위에 올라야 하는 것이다. 즉, 현재로선 제주 유나이티드의 강등이 가장 유력하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시기, K리그2의 부천FC는 10개 구단 중 8위의 아쉬운 성적을 기록 중이다. 플레이오프 진출은 사실상 멀어졌고, K리그2는 강등이 없다. 따라서 부천FC는 내년에도 K리그2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끝내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 채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강등 될 경우, 제주 유나이티드는 다음 시즌부터 부천FC와 같은 K리그2에 속하게 된다. 대진 추첨 여부와 무관하게, 반드시 맞대결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제주 유나이티드가 버리고 떠났던 옛 연고지 부천으로 원정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주 유나이티드 입장에선 자존심이 크게 상할 일이고, 부천FC 입장에선 칼을 갈고 기다려온 일이다.

공교롭게도 제주 유나이티드와 부천FC는 그동안 공식경기에서 마주친 적이 없다. 서로 다른 리그에 속해있었고, 유일한 기회인 FA컵에서는 운명적인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다. 두 팀이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친 것은 2013년 1월인데, 이는 공식경기가 아닌 연습경기였다. 그동안 맞대결이 없었던 만큼, 이들이 같은 리그에 속하게 될 경우 무척이나 흥미로운 맞대결이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 유나이티드에게 남은 경기는 파이널 B그룹에서의 5경기다. 제주 유나이티드는 강등을 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기장에 ‘NAVER GIVE UP’ 조형물을 설치했고, 팬들에게 같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나눠주는 등 다양한 응원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가장 최근 경기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는 경남FC를 만나 패하고 말았다. 강등권을 벗어나기 위해 제쳐야할 경남FC였기에 패배는 더욱 쓰라렸다.

제주 유나이티드는 기적처럼 강등을 면할 수 있을까. 아니면 2부리그에 강등돼 자신들이 버리고 떠났던 부천을 다시 찾게 될까. 남은 시즌, 제주 유나이티드의 행보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