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티고’(Vertigo, 감독 전계수)가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트리플픽쳐스
영화 ‘버티고’(Vertigo, 감독 전계수)가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트리플픽쳐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오늘 하루도 몹시 흔들렸지만, 잘 견뎌냈다. 거리는 튼튼하니 이제 안심이다.

현기증 나는 고층빌딩 숲 사무실에서 매일을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30대 직장인 서영(천우희 분). 안정적인 삶을 원하지만 현실은 속수무책으로 흔들거린다. 불안정한 계약직 생활, 비밀사내 연애 중인 연인 진수(유태오 분)와의 불안한 관계, 밤마다 시달리는 엄마의 전화까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낀 그녀가 무너져 내릴 때, 창밖에서 로프에 매달린 채 그녀를 지켜보는 로프공 관우(정재광 분)를 마주하게 된다. 서영을 지탱하고 있던 모든 끈이 끊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서영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다.

영화 ‘버티고’(Vertigo, 감독 전계수)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이 창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는 감성 무비다. 소통이 부재한 현대인들이 공감할만한 스토리와 독특한 감성의 비주얼,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서영은 IT 업체 계약직 디자이너다. 사내연애를 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남들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집안일까지 뜻대로 되지 않아 그저 빌딩 안에서 거대한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부유하며 일상을 견뎌낼 뿐이다.

‘버티고’에서 서영을 연기한 천우희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버티고’에서 서영을 연기한 천우희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일, 사랑, 가족 등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서영의 현실은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아 더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버티고, 버티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 비로소 마주한 희망은 서영, 그리고 우리를 따뜻하게 위로한다. “괜찮아요, 당신은 절대 떨어지지 않아요.”

‘버티고’는 감각적인 미장센과 유니크한 사운드 자랑한다. 독특한 화면 구도와 다양한 카메라 움직임, 과감한 사운드 효과 등을 통해 서영의 불안함과 외로움을 실감 나게 담아낸다. 답답한 빌딩 속에 관을 타고 물이 흐르는 소리, 기계나 사무집기가 삐걱거리는 소리, 바람소리 등과 서영이 단계적으로 겪는 이명 사운드를 영리하게 활용해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킨다.

또 그동안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왔던 서영이 폭발하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회사 곳곳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디 캠을 이용해 직설적으로 보여주는데, 극적인 효과뿐 아니라 서영의 감정에 한층 더 빠져들게 만든다.

‘버티고’에서 호흡을 맞춘 천우희(위 왼쪽)와 유태오, 그리고 정재광(아래). /트리플픽쳐스
‘버티고’에서 호흡을 맞춘 천우희(위 왼쪽)와 유태오, 그리고 정재광(아래). /트리플픽쳐스

서영으로 분한 천우희는 섬세한 감정 연기로 극을 이끈다. 현 사회가 반영된 듯한 고층빌딩 안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서영을 떨리는 눈빛, 목소리, 동작 하나하나에 응축된 감정을 담아 표현해낸다. 천우희가 아닌 서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등장만으로도 신선한 유태오와 정재광도 제 몫을 해낸다. 서영의 비밀스러운 연인이자 사내 최고 인기남 진수를 연기한 유태오는 완벽해 보이지만, 무언가 다른 비밀을 간직한 듯한 캐릭터로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로프공 관우 역을 맡은 정재광은 순수하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로 긴장감과 함께 설렘을 선사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러닝타임 114분, 16일 전야 개봉.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