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유미가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으로 관객과 만났다. /매니지먼트 숲
배우 정유미가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으로 관객과 만났다. /매니지먼트 숲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용기를 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배우 정유미가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 출연을 두고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하자 내뱉은 말이다. 젠더 이슈로 화제를 모은 조남주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제작 소식이 전해진 후부터 일부 네티즌의 평점 테러와 악성 댓글로 몸살을 앓았다. 주연 배우들을 향한 비판도 거셌다. 특히 김지영 역을 맡은 정유미의 SNS는 악성 댓글로 도배가 됐다.

그러나 정유미는 흔들리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보고 위로를 받았고, 꼭 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느낌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여러 논란을 뒤로하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해내는 데 최선을 다한 정유미는 김지영 그 자체가 됐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으로 분한 정유미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으로 분한 정유미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스크린에 재탄생한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원작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충실히 지켜내면서도, 한층 더 깊어진 드라마와 스토리로 호평을 받고 있다. 관객의 반응도 뜨겁다. 개봉 당일인 23일 예매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다.

극 중 정유미는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동료이자 엄마인 지영을 연기했다. 정유미는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어 극을 이끈다. 묵묵히 일상을 살아가는 담담한 모습부터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뜨거워지는 감정까지 섬세한 연기로 마음을 흔든다. 정유미가 아닌 김지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도 높은 열연을 펼친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정유미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82년생 김지영’이 쉬어갈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유미가 ‘82년생 김지영’으로 위로를 받았다고 밝혔다. /매니지먼트 숲
정유미가 ‘82년생 김지영’으로 위로를 받았다고 밝혔다. /매니지먼트 숲

-시나리오 처음 보고 어땠나.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가족들 생각도 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알고 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 척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럼에도 이해해준 가족들에게 고맙기도 하면서 미안했다. 이 영화는 여자의 이야기라기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은 어떻고, 나는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도 담겼지만, 지영의 이야기다. 극을 끌고 가는 역할을 해내야 했는데. 
“나는 조금 비겁해서 떼로 나오는 걸 좋아한다. 하하. 나눠서 하는 게 좋지 앞에 나서서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런 관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을 한 것이 모순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부담이 전혀 없었다. 이야기가 주는 힘이 굉장히 컸고, 나 스스로에게도 큰 위로가 됐다. 생각도 많이 하지 않고 한다고 했던 것 같다. 원래 생각을 엄청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를 찍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큰 깨달음보다 잊고 지냈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을 느꼈다. 알게 됐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지겠냐마는 그래도 인지가 됐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이야기에 감사했다. 시나리오를 읽지 않았다면, 시간이 지나도 몰랐을 수 있지 않나.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육아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심한 자식으로 상황에 대입해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또 내가 선택한 이상 잘 표현해내는 것이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김지영 그 자체로 분한 정유미. /매니지먼트 숲
김지영 그 자체로 분한 정유미. /매니지먼트 숲

-시사회 끝나고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여러 장면이 있었지만, 어린 지영이 엄마한테 얘기하는 장면이 뭉클했다. 이상하게 시나리오로 읽었을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입체적으로 캐릭터들이 살아나니 눈빛이나 감정선이 확실하게 느껴지더라. 영화를 볼 때 되게 몽글몽글했다.”

-원작을 보며 가장 궁금했던 장면 중 하나가 지영이 다른 사람이 돼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준비했나.
“감정 전달이 제일 먼저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장면이 촬영 초반에 찍었던 것 같다. 나보다 스태프들이 더 많이 긴장하더라. 촬영 전날 감독님이랑 얘기를 많이 했다. 어떤 톤으로 가야 할지 의견을 나눴다. 외할머니가 돼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예수정 선생님께 따로 대사를 읽어봐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막연하게 상상하기만 했었는데,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눈물이 나더라. 그 감정을 빌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여성들이 사회에서 처한 여러 가지 불이익이나 차별 등을 담아내며 경종을 울린 작품인데,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면. 
“꼭 여성이라기보다 상처받은,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도 분명 불편한 상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잘못된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가 좋았던 것은 희망적인 결말을 담았다는 것이다. 잘 살기 위해서, 잘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크게 변화하고, 바뀌는 게 아니지 않나. 잘 치유하면서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나.
“메시지 전달보다, 자극적인 것들이 너무 많은 사이에서 쉬어갈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갈지는 모르겠지만, 조미료가 없는 영화라고 생각을 한다. 다양하게 오고 가는 시선들이 있을 거다. 그럼에도 편하게 보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유미가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매니지먼트 숲
정유미가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매니지먼트 숲

-제작 단계부터 영화 외적으로 논란이 많았다. 악성 댓글에 평점 테러까지. 쉽지 않은 작업이었겠다. 
“현실감이 없었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논리적 비판은 얼마든지 듣고 싶다. 어떻게 다 좋게만 보겠나. 이해한다. 놀라긴 했지만, 이 일을 하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하기로 한 이상 하나의 마음이었다. 이 이야기를 보고 느낀 그대로 영화로 잘 만들어서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사회 후 진행된 간담회에서 논란이 많은 작품에 출연한 것을 두고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표현에 ‘용기를 내야 할 때는 따로 있다’고 한 것이 인상 깊었다. 어떤 게 진짜 용기를 내는 일인가.
“말할 수 없다. 하하. 진짜 용기를 내는 일은 따로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용기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작품을 결정할 때 혹은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때 배우인 내가 해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은 내 몫을 최선을 다해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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