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발달로 으슥한 뒷골목의 도박장은 이제 우리 손 안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스며들었다.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어두운 방 안에 놓여있는 원형 탁자에 다섯 사람이 앉아있다. 모두들 신경이 곤두선 채 카드를 돌리는 딜러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카드를 받은 사람들은 떨리는 손으로 베팅을 시작한다. 칩은 현금과 달리 금액에 대한 현실감을 무디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을 잃은 사람과 일확천금을 손에 쥔 사람이 나타난다.  

흔한 ‘도박’의 풍경이다. 정보화 시대에 발맞춰 도박은 진화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발달은 도박이 우리 생활 깊숙하게 침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더 이상 경찰의 눈을 피해 어두운 공간에 숨어서 게임을 진행할 필요도, 신분증을 제시하고 카지노에 입장할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 하나면 거액의 불법 도박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쉬운 접근성은 청소년들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 청소년부터 군인까지... 높은 접근성의 인터넷 도박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스마트폰이 청소년의 인터넷 도박 접근성을 증가시키고 청소년 도박문제를 심각하게 부추기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실시한 ‘2018년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온라인 돈내기 게임을 경험한 경우 PC(25.8%)보다는 스마트폰(74.2%)을 통해 접속했다는 응답이 3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인터넷 도박 이용 청소년은 사다리, 달팽이, 그래프 등 온라인 내기 게임(3.6%), 온라인 카지노, 블랙잭 등 불법 인터넷 도박(1.6%)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5년 온라인 내기 게임 3.2%, 불법 인터넷 도박 1.1%에 비해 증가한 수치다. 

불법 웹툰 사이트 등에서는 화려한 인터넷 도박광고를 매우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웹청소년들이 도박 사이트 광고에 노출되기 쉽게 만든다. 

실제 기자가 다양한 사이트에 접속해 본 결과, 청소년들은 인터넷 도박의 광고 노출에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형 포털사이트 블로그나 카페 등에는 도박 사이트 광고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웹툰 사이트에는 수많은 도박 사이트 광고가 쏟아진다. 블로그, 카페, 웹툰 사이트 등은 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위험성이 더 크다.

최근 부대 내 휴대폰 사용이 허용된 군에서도 인터넷 도박으로 인한 사건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7월 경기도 모 부대에서는 병사 5명이 스마트폰으로 스포츠 도박을 하다 적발됐다. 이는 부대 내 휴대폰 사용이 허용되고 3개월 만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에 도박 관련 군인들의 상담이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48명이던 군인 상담자가 2018년에 약 3배인 123명으로 증가했다. 2019년 5월 기준으로 상담자 수가 117명에 달해 올해 말에는 280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인터넷 도박 근절위해선 단속 방법과 예방교육 차별화 필요

문제는 인터넷 도박의 경우, 오프라인 도박과 달리 현금이 직접 이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돈이 오가는 것이 아니라 숫자만 바뀔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중독이 심해지고, 그에 따른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증가하는 인터넷 도박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은 2019년 상반기에 도박전담팀 신설하고 1월부터 6월까지 특별단속을 실시했다. 이 결과 총 3,625건을 단속해 사이버도박사범 4,876명을 검거하고 그 중 184명을 구속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단속건수는 107.5%(1,747→3,625건), 검거인원은 103.25%(2,399→4,876명), 구속인원은 58.62%(116→184명)으로 대폭 증가한 수치다. 유형별로는 스포츠 도박이 57.5%, 연령별로는 30대가 38.2%(10대는 2.5%)이다. 직업별로는 직장인이 42.4%(학생은 3.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경찰은 이번 특별단속기간 중 해외에서 운영되는 도박 사이트의 운영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해외 수사기관과 적극적인 국제공조를 실시했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 도피 중인 도박사이트 운영 피의자 43명(서울 사이버 28명, 서울 광진서 6명, 대구 사이버 1명, 경기북부 사이버 5명, 광주 사이버 3명)을 검거하는 성과를 거뒀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근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이 고수익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통장을 빌려달라고 한 뒤 도박 입금 계좌로 사용하는 사례를 확인했다”라며 “통장을 빌려주는 행위는 도박 사이트 운영 방조에 해당하며 처벌받을 수 있으므로 국민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또한 “운영자, 협력자뿐만 아니라 행위자에 대해서도 철저히 단속하고 있으므로, 국민들은 호기심으로라도 사이버도박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했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8월 해외에 서버를 두고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총책, 통장 모집책, 현금 세탁책, 인출 및 전달책 등 도박운영 관리자 12명을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인터넷 도박의 근절을 위해선 경찰의 도박 사범,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 검거뿐만 아니라 정책적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도박 중독 예방 및 치유 활동 강화를 위해 2007년 9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를 발족했다. 현재 사감위에서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신고할 수 있는 불법도박 신고센터 운영과 도박 중독 예방교육 및 상담치유 등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사감위와 함께 설립된 중독 예방 치유센터는 도박문제에 대해 대국민 교육 기관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도박에 대한 예방 및 치료 교육일 뿐 인터넷 도박이라는 특화된 영역에 대한 본질적 문제 해결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 도박의 경우, 기존 도박과 접근 방식, 운영 방식, 이용자 연령 분포 등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인터넷 도박에 대한 개념과 유형에 대한 명확한  실태 및 원인 분석 연구과 단속 방법의 차별화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인터넷 도박의 증가원인과 대처방안에 대한 연구(이하 ‘논문’, 책임연구자 :홍영오 연구위원, 공동연구자 :최수형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대포통장이나 개인정보 도용 방지, 불법자금유통 등의 2차적 범죄발생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사이트 운영자들은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통해 불법자금유통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선 금융기관의 적극적 협조가 뒷받침돼야 한다.

아울러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논문을 통해 “인터넷 도박으로부터 아동 및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 도박 사이트의 나이 검증과 같은 기술적 전략과 더불어 인터넷 도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중요하다”라며 “관계기관의 대국민 교육 프로그램 보급에 효율적 체계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도박하는 모든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에 돈을 건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도박의 위험에 근접해 있는 현재.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대수롭지 않을 것처럼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붉은 경고등’ 진화에 하루빨리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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