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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작품으로 말하는 조진웅, 그가 달려온 이유
2019. 11. 12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로 관객과 만나는 조진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로 관객과 만나는 조진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조진웅은 이름 석자만으로도 대중에게 신뢰를 준다.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에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 쉴 틈 없는 ‘열일’ 행보까지. 그를 사랑하지 않을 관객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또 하나. 그가 ‘믿고 보는 배우’로 꼽히는 이유는 소신 있는 행동과 발언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도 조진웅의 소신으로 택한 작품이다.  IMF 이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영화화했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이상 2012)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면을 조명해온 정지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자산가치 70조 은행이 1조7,000억원에 넘어간 희대의 사건 앞에 금융감독원과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뒤얽힌 거대한 금융 비리를 파헤치는 평검사의 활약상을 그리는 ‘블랙머니’에서 조진웅은 수사를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막 가는 ‘막프로’ 양민혁 검사를 연기했다.

앞서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블랙머니’에서 조진웅은 양민혁에 완전히 분해 열연을 펼친다.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며 또 하나의 인생캐릭터 탄생을 예감하게 한다.

실제로 만난 조진웅은 화끈하게 밀어붙이고, 시원하게 할 말 하고, 통쾌하게 고발하는 양민혁과 똑닮아 있었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사건에 대해 알게 될수록 화가 났다”면서 “관객들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털어놨다.

조진웅이 정지영 감독과 작업한 소감을 전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조진웅이 정지영 감독과 작업한 소감을 전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시나리오보다 잘 나온 것 같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경제 관련된 이야기라는 걸 알고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데, 이런 얘기가 먹히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올곧게 가는 모습을 보고 힘이 느껴졌다. 또 정지영 감독님이 두말할 것 없는 거장이지 않나. 첫 만남부터 작품 얘기를 심도 있게 했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꼰대’ 사고가 없더라. 나보다 더 캐주얼했다. 너무 편안하고 좋았다.”

-어려운 소재를 담고 있지만, 상업영화로서의 매력도 충분히 있다.
“정지영 감독님한테 ‘왜 돈 안 되는 고발만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부러진 화살’때 돈 얼마나 벌었는데 하시더라. 분명 어둡고 무거운 얘기다. 해결이 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업영화로서 가져야 할 재미를 보장하고 있다. 영화적인 화법으로 이 영화가 가지는 기능적인 역할이 분명히 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까 이 작품을 한 게 다행이다 싶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받고 ‘왜 나한테 줬지’ 싶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작업하다 보니 화가 나서 불끈 불끈하더라. 시나리오를 읽을 때에는 이성적으로 인식만 했는데, 실제로 부딪히니 정말 화가 났다. 고스란히 잘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정지영 감독이 현장에서 에너지가 넘쳤다고.
“정지영 감독님이 46년 개띠다. 우리 아버지와 동갑이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보다 체력이 훨씬 좋다. 현장에서 정말 뛰신다. 무전이 있는데… 직접 눈을 보고 말씀하신다. 무전으로 했을 때 정확한 의사전달이 안 된다고 생각하신다. 사실 그게 또 맞다. 직접 와서 디렉션 할 때 표정이나 온도가 전해지는 게 훨씬 더 정확하다.”

-정지영 감독의 열정에 조금의 꾀도 부릴 수 없었겠다.
“저 현장에서 꾀 안 부린다. 하하. 모든 현장이 그렇지 않나. 한 땀 한 땀 열심히 만드는데 이번 영화라고 예외일 수 있겠나. ‘블랙머니’라는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무게감도 있고, 정지영 감독의 경력도 어마어마했지만, 짓눌리진 않았다. 전달함에 있어 꼼꼼함은 잇되, 지쳐서 하지 말자는 것이 감독님의 생각이었다. ‘모든 것은 내가 다 짊어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저희는 인쇄된 활자를 잘 느껴서 고스란히 화면에 담으면 됐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진 모르겠으나,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게 절실하게 담아보자 그랬다.”

‘블랙머니’에서 양민혁 검사를 연기한 조진웅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블랙머니’에서 양민혁 검사를 연기한 조진웅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양민혁이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화자로서의 역할도 해내야 했다. 어렵지 않았나.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다. 사건이 있고, 거기에 부딪히고 돌진하는 역할은 해봤다. 보통은 그렇게 부딪혀서 나가떨어진다. 관객은 그 상처를 통감하고 함께 슬퍼하고 아파한다. 그런데 양민혁은 부딪히고 아파하는 게 아니라 부딪힐수록 이성적이고 지성적으로 이 사건을 들여다봐야 했다.

어떤 때는 촬영을 하고, 편집본까지 확인한 신을 다시 찍기도 했다. 다음날 다른 장면을 찍기 위해 모였는데, 놓친 것 같더라.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촬영했다.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시나리오가 굉장히 직구고, 설계가 잘 돼있었다. 던져야 하는 메시지도 간단했다.

그럼에도 그 지점을 지키는 게 어렵더라. 정지영 감독·배우 조진웅과 양민혁의 싸움이었다. 만약 정지영 감독의 캐주얼한 마인드나 사고가 없었다면, (캐릭터에) 동기화되지 못한 채 해버린 헐값 연기가 됐을 거다.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양민혁의 연설 장면이 인상 깊었다. 촬영할 때 어땠나.
“재밌었다. 연극을 안 한지 꽤 됐는데, 연극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식구이기도 하고 약속된 리액션이었음에도, 관객들이 많으니까 에너지와 피드백을 받으면서 신명이 났다. 배우로서 그 장면의 목적을 정확히 지켜서 연기하지만, 그 속에 있는 나는 광대가 돼있었다. ‘광대들: 풍문조작단’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었다. 그땐 너무 짧게 찍었지만, 정말 재밌었다.

관객들이 앉아있으면 힘을 더 받고, 잘 관철시키려고 에너지가 더 나오는 것 같다. 예전에 한 번은 오디션 보는데, 그냥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게 너무 재미없는 거다. 그래서 나가서 시간 되시는 분들 들어와서 재밌는 단막 하나 보고 가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모아왔다. 그들을 앉혀놓고 했던 기억이 난다. 관객과 같이 하는 게 정말 재밌다.”

-연극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무대에 설 계획은 없나.
“계획을 못하겠다. 계획을 하면 무산된다. 사실 연극은 서울도 괜찮은데, 부산에 연극하는 동지들이 있으니까 그들과 하고 싶다. 사실 작년에 그런 생각을 상당히 많이 했다. 이번까지만 (영화) 작업을 하고 공부를 더 하거나, 부산에 내려가서 연극을 1년 정도 할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어불성설이었다. 밀려놓은 작업하느라 도저히 시간이 안 되더라. 또 시나리오 보면 재밌고, 하고 싶고…”

할 말은 하는 배우 조진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할 말은 하는 배우 조진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나.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영화과를 안 나온다고 해서 영화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에 대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싶었다. 제작하고 싶은 영화가 생기고, 사람들과 뜻을 모아 함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설프게 시작했다가 흔들릴 수 있으니까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개념은 아니었다. 실무자들과 함께 워크숍을 해보고 싶었다.

미국 프로듀스 시스템이 굉장히 견고하다. 우리는 허점이 많다. 아직 그 과도기에 있다. 특정 누군가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아니다. 영화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고민해야 하고, 그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거다. 실무자들과 만나서 어떤 사고를 갖고 있는지, 어떤 콘텐츠를 모아서 채널을 만들 수 있는지 계속 논의해보자는 거다. 콘텐츠로서 영화의 기능적인 역할을 조금 더 증대시키면 좋지 않을까 싶다. 단편영화를 연출한 것도 그런 이유다. ( 조진웅은 단편영화 ‘예고편’으로 첫 연출 도전을 앞두고 있다.) 해보지도 않고 상상하는 것 보다 실제로 하면서 공부를 해보는 거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들을 계속 현장에서 풀어내는 거다.”

-‘블랙머니’를 택한 것도 그렇고, 평소 소신 있는 행동과 발언을 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에 대한 생각은.
“연극할 때부터 저희 극단 자체가 운동적 성향이 짙었다. 정치적 색깔을 띤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선배들이 했던 연극적 업적을 우리들이 왜 소생시키지 못하랴. 소극적 운동을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찾아가는 연극을 했다. 문화 소외 지역에 찾아가서 야외극을 하기도 했다. 선배들을 통해 많은 걸 느꼈다.

다만 의식을 갖고 연극을 하는 건 좋지만, 연극만으로는 답이 없었다. 45석짜리 공연에 37명만 들어도 만석이다. 그런데 연극예술경영 통계를 보면 만석이 됐을 때 진짜 관객은 40%다. 나머지 60~70%는 지인이다. 공짜 손님이라는 거다. 그렇게 해서 연극이 유지가 안 된다. 그래서 연극이 돈이 안 된다는 거다. 당시 수뇌부 다섯 명 중 내가 막내였는데, 다 찢어지자고 했다. 프랑스 일본 서울 부산으로 다 흩어졌고, 나는 연기를 하겠다고 했다. 영화 한 편을 300만이 본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 시간을 학수고대하면서 열심히 달려왔다. 묵묵히 기다렸다. 내가 작업을 할 때 나의 능력이 미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이 영역을 통해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시기가 있어야 하고 그걸 꼭 만들리라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중요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하는 것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많은 것들을 검토하게 되고, 내 소신을 밝힐 수 있는 것 같다.”

-‘블랙머니’를 통해서는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인지하는 것. 일상생활을 하다가 어떤 현상을 접했을 때 ‘저거 블랙머니 얘기 아니야?’라고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직구, 슬라이더만 던지던 투수가 스프링 캠프에 가서 체인지업을 장착하고 오는 것과 비슷하다. 그 체인지업으로 다음 시즌에 들어가면 타자를 바로 삼진 시킬 수 있다. 관객들이 그런 칩을 하나 장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