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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부터 채팅까지 다양한 형태의 사이버 언어 폭력 익명성과 그릇된 정의감으로 비롯된 폭력이 '유머'로 포장되기도
[2019 사이버 보고서③] 펜은 칼보다 강하고, 키보드는 총보다 위험하다
2019. 11. 13 by 박설민 기자 ihatefree1@sisaweek.com
익명성 뒤에 숨어 가하는 '사이버 언어 폭력'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자리잡았다.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 쾌쾌한 담배냄새와 어둠 대신, 깔끔한 카페처럼 변모한 PC방. 그 곳에는 여러 연령층의 이용자들이 게임, 동영상 시청, 업무 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화려하고 깨끗하게 바뀐 모습 뒤로 여러 이용자들이 소리치는 섬뜩한 욕설이 오가고 있다. 

욕설이 들리는 자리로 다가갔다. 그 살벌한 욕설을 내뱉는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인기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자신의 팀원과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때 뒤에 앉아있던 40대 중반 남성이 온라인게임을 플레이 도중 키보드를 세게 내리쳤다. 남성은 보이스톡(무선 인터넷망을 활용한 음성통화)으로 보이지 않는 상대 플레이어에게 욕설을 내뱉는다.

◇ 사이버폭력 경험률 32.8%, 전년 대비 6.8%p 증가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연결돼 생활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온라인 게임을 즐기며 외국인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또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취미, 일상생활 등을 공유하거나 학술 사이트에선 논문, 연구 결과 등으로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해 여러 분야가 융합된 하나의 ‘가상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하나의 ‘문명’을 만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가상의 사회에서도 실제 사회와 다름없는 범죄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사이버 폭력’ 문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실시한 ‘2018 사이버폭력 가해 및 피해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이버폭력 경험률이 32.8%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보다 6.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학생의 사이버폭력 가해와 피해 경험률은 1년 전보다 4.7%포인트 증가한 29.5%로 집계됐다. 성인의 경우 가해 경험은 5.3%포인트 증가한 24.1%, 피해경험은 13%포인트 급증한 36.8%로 나타났다. 학생의 경우 중학생이, 성인의 경우 20대가 사이버 폭력 경험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키보드를 통해 전달되는 ‘사이버 언어 폭력’은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다. 온라인 상 모욕과 명예훼손, 성범죄 등 사이버 폭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명인부터 일반인까지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만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방통위의 조사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의 피해 유형별 순위는 언어폭력이 19.6%로 가장 높았다. 이어 명예훼손(7.9%), 스토킹(7.9%), 성폭력(6.6%), 신상유출(4.7%), 따돌림(4.2%), 갈취(3.7%), 강요(3.7%) 순으로 집계됐다. 

◇ 악플, 가장 대중화된 사이버 언어 폭력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사이버 언어 폭력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악플’을 떠올린다. ‘악성 댓글’이라는 뜻의 악플은 인터넷 기술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1990년대까진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오프라인 상의 악담, 모욕행위들이 더 위협적이었다. 

초고속 인터넷 망이 발달되기 시작하는 2000년대부터 악플의 위험성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빠른 속도를 갖춘 인터넷의 등장으로 홈페이지, 개인 블로그, 게임 사이트, 인터넷 뉴스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각 홈페이지 등에는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댓글창이 신설됐다. 댓글창에는 크고 작은 의견 충돌로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유명인사들은 공인이라는 점때문에 악플의 위협에서 취약하다./ 네이버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악플의 위협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연예인과 유명인사들에 대한 허위 소문, 욕설, 악의적 비방 등으로 인한 고통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악플로 고통받던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일어났다. 유명인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악플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공중파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학생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악플이 달렸다. 이로 인해 충격을 받은 학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악플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급부상하자 경찰에서는 악플 전담 사이버 경찰청이 신설하고 악플 방지 공익광고 방송, 언론 보도 등 각 계에서는 악플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SNS의 활성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악플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욕설의 수위도 예전보다 훨씬 더 심각해지고 있다. 과거 금기 시 되던 상대방의 부모를 모욕하는 이른 바 ‘패드립’은 이제 장난처럼 가볍게 사용되고 있는 지경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지역, 정치, 성별, 직업, 학벌 등 각 집단으로 나뉘어 서로 공격하는 ‘집단성 악플’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집단성 악플은 개인에게 가해지는 피해를 넘어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제한 내역. 상대방의 부모를 모욕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 됐다./ lol inven

◇ 커져가는 온라인 게임시장, 증가하는 사이버 언어 폭력

정보화 사회에서 댓글창 외에도 사이버 언어 폭력이 심각하게 일어나는 곳이 있다. 바로 온라인 게임 속 채팅이다.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높은 집중력과 승부욕을 필요로 한다. 흥분된 상태로 게임을 즐기던 유저들은 팀원의 작은 실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런 온라인 게임의 특성이 쉽게 언어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이다.

이러한 온라인 게임 상 언어 폭력은 학생들에게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방통위의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폭력 피해를 경험한 공간은 학생의 경우 온라인게임(42.8%), 채팅, 메신저(42.8%), SNS(28.3%)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게임에 좀더 쉽게 몰입하고 성인에 비해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학생들이 언어 폭력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게임인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욕설로 인해 게임을 하지 않는 유저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라이엇 게임즈에서는 욕설 필터링 시스템을 도입, 욕설을 가하는 유저들의 계정을 정지시키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교묘하게 욕설 대신 상대방과 팀원을 모욕하는 채팅은 여전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라이엇 게임즈 관계자는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일체의 언어폭력 행위를 할 경우 적발된다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린다”라며 “다만 자세한 적발 방식을 공개할 경우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한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이용하는 한 유저는 “너무나 심한 욕설과 비아냥 때문에 랭크게임(리그 오브 레전드의 주력 콘텐츠. 자신의 점수를 걸고 승패에 따라 점수를 얻거나 잃는 방식의 게임)을 도저히 할 수가 없다”라며 “이 때문에 친구들과 모여 가벼운 일반 게임밖에 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 익명성과 그릇된 정의감, 폭력을 ‘유머’로 포장하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이버 언어 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무뎌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방문해보면 쉽게 비속어와 패드립을 난발하는 글을 볼 수 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유쾌하다”, “필력 좋네” 등 오히려 욕설을 가한 자를 칭찬하는 댓글이 즐비하다. 

지난 6월 한 노인이 손녀에게 살해당했다는 뉴스에서 달린 고인 비하 댓글과 그에 동조하는 댓글./dcinside.com

더 나아가 어떤 이유나 목적도 없이 그저 그들만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언어 폭력도 난무하고 있다. 성희롱부터 시작해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등 안타까운 사고의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댓글 역시 “사탄도 울고 갈 드립” 이라며 ‘유머’로 포장한다.

반면 비속어를 지적하거나 글의 내용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음을 지적하는 댓글에는 “선비납셨네”, “분위기 파악 못하네”, “찐따(‘절름발이’의 방언으로 상대방을 비아냥거릴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라며 공격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이버 언어 폭력의 발생 원인과 그것을 유머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 ‘익명성이 주는 안정감과 비뚤어진 정의’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김경우 정신의학과전문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악플 등 사이버 언어 폭력을 가하는 이유는 자신이 규칙을 어긴 자에게 벌을 가한다는 ‘정의감’에 비롯한 것”라고 전했다.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는 옳은 일이며 이로 인해 상대방을 쉽게 비난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 정의를 실현했다는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어 김경우 전문의는 “인터넷은 신고 및 적발이 가능해 완전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음에도 사이버 언어 폭력 가해자들은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지 않아 자신들이 익명성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착각한다”라며 “이런 착각으로 자신의 어두운 내면과 비뚤어진 정의감을 드러내 상대방을 공격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이유나 목적 없이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언어 폭력에 대해서는 “아직 철이 없는 어린 학생이거나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판단이 어려울 만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며 “그런 분들은 단순한 일반적인 심리의 문제가 아닌 본인 스스로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전했다.

◇ “정확한 문제 진단 급선무, 실태조사와 연구 수반돼야”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사이버 언어 폭력에 대해 세계 각국 역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3년 뉴욕 주에서 여러 학생들에게 모욕적인 문자 메시지, 채팅 등으로 공격받던 가브리엘 모리나가 자살한 사건 이후 사이버 언어 폭력의 심각성이 대중화됐다. 이 사건 이후 뉴욕 주는 이미 사이버 언어 폭력 사건을 형사범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또한 뉴욕 시 교육감은 1,700여 개 학교에서 사이버폭력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캐나다는 청소년 간 사이버 언어 폭력을 포함한 ‘사이버 괴롭힘 처벌법’을 주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또한 가해 범인을 형사 처벌하는 법안을 제정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영국은 사이버 언어 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를 조장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광고주의 보이콧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이들 사이트 운영자들이 책임의식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시민단체들도 항의성명을 발표하면서 사이버 언어 폭력 근절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 또한 민간에서는 사이버폭력 예방 및 대응에 대한 가이드 맵을 개발해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사이버 언어 폭력을 줄이기 위해선 우리 모두의 인터넷 윤리의식 함양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사이버 언어 폭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7년부터 악플 퇴치를 위한 선플달기운동본부가 운영되고 있으며 2010년에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방송통신위원회가 함께 민간기업, 시민단체 등을 참여시킨 ‘아름다운 인터넷세상 범국민협의회’를 출범했다. 이를 통해 아름다운 인터넷세상 만들기 연중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사이버 폭력 감소를 위해 경찰청에서는 사이버 악플처리 전담반을 조성하고 경찰 민원포털을 통해 신고를 접수받고 있다. 또한 체험형 범죄예방교육 시설인 청소년경찰학교에서도 전문강사를 초빙해 언어·사이버폭력 예방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이버 언어 폭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은 사이버 언어 폭력이 나날이 심각해지며 연령대는 낮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안과 전략은 부족한 상태라는 지적한다. 최근 배우 설리(25)의 사망 원인을 계기로 '차별 금지법' 제정, 악플 처벌 수위 강화 등의 대책이 제안되고 있으나 전부 일시적 방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언어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선 단순한 대책 논의보다 정확한 문제 진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누가, 왜 사이버 언어 폭력을 가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 부처간 실질적 협력체계를 구성하고 사이버 언어 폭력에 대한 실태조사와 연구 등을 통해 국내 환경에 적합한 정책 및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