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4번째 노조이자 첫 양대노총 산하 노조가 출범한다. 사진은 지난해 삼성 관련 노조들이 ‘삼성 노조 와해 의혹’과 관련해 결의대회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삼성전자에 4번째 노조이자 첫 양대노총 산하 노조가 출범한다. 사진은 지난해 삼성 관련 노조들이 ‘삼성 노조 와해 의혹’과 관련해 결의대회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무노조 경영’을 고집해왔던 삼성그룹에 또 하나의 중대 변곡점이 찾아왔다. 양대노총 산하 노조의 공식 출범이 임박한 것이다. 3대에 걸쳐 세계최고의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그룹도 시대의 변화까지 막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계에 따르면, 오는 16일 한국노총 산하 삼성전자 노조가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 10일 설립 총회를 가졌으며, 지난 11일엔 고용노동부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오는 16일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출범을 공식 선언하는 한편, ‘노동법 개악 저지’ 전국노동자대회에 함께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삼성전자엔 4번째 노조가 출범하게 됐다. 다만, 앞선 세 노조에 비해 의미와 존재감이 상당하다. 지난해 삼성전자에 설립된 3개 노조 중 1·2노조는 조합원이 2~3명에 불과하고, 3노조도 30여명에 그친 바 있다. 이번 한국노총 산하 삼성전자 노조는 이미 조합원 규모가 4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양대노총 중 한 곳을 상급단체로 둔 첫 노조로, 다양한 연대활동도 예상된다. 삼성전자에 깃발을 꽂은 사실상의 첫 노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그룹은 창립 이후 줄곧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왔다.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라고 말한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다. 그 덕분인지 재계의 또 다른 한 축인 현대그룹(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은 강성노조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삼성그룹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는 삼성그룹의 지나친 ‘무노조 경영’ 고집은 결국 탈을 불러왔다. 에버랜드, 삼성전자서비스 등 일각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일자 노조와해 및 탄압으로 맞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치밀하게 노조와해를 계획안 내부문건이 드러나 큰 파문을 일으켰고, 파업투쟁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합원의 시신을 탈취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은 무너졌다. 노조의 계속된 투쟁 속에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정치권의 압박도 거세지면서, 노조를 인정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균열은 삼성엔지니어링, 에스원, 삼성웰스토리 등 계열사에서의 노조 설립으로 번져나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와해 작업을 벌였던 주요 인물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고 재판에 부쳐졌다.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목장균 전 삼성전자 전무,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사장,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등 30여명은 최근 검찰로부터 각각 징역 1~5년의 실형을 구형받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에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출범한다는 점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에 마침표를 찍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국내 최대기업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노조탄압을 저질렀고, 그들의 치밀한 행태는 다른 기업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 많은 사회적 갈등을 낳았다”며 “이제 그 책임을 묻고, 정상적인 노조 활동이 보장되는 기업으로 가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다른 업종이나 기업에서 나타나고 있듯, 노조의 지나친 요구와 극단적인 행동이 경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다. 재계 한 관계자는 “갈수록 급변하고 있는 경영환경 속에 노사갈등으로 인해 큰 손해를 입거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보다 발전적인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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