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경 동물권 행동 단체 ‘카라’ 상임이사

‘세류성해(細流成海).’ 가는 물줄기가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와도 맥이 닿아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이를 경험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것은 거대 권력도 아니고 정치적인 어젠다도 아니었다. ‘국민주권’을 위해 행동했던 ‘시민들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대한민국 변화를 이끄는 중심, ‘시민운동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제언을 경청해본다. [편집자주]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카라 사무실에서 전진경 상임이사는 “우리 사회의 동물권 보호 인식이 이제 첫발을 뗐다”면서 “사회적 공감대 확산이 시스템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인권(人權).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가치 있는 존재일까. 인간과 오랜 세월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 동물들은 어떠할까. 1970년대 호주의 윤리 철학자인 피터 싱어는 처음으로 ‘동물권’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사람이 아닌 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지니고 있으며 고통과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견해다.

오랜 인류 역사에서 동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인간과 함께 살아가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주로 인간은 우월적 위치에서 동물을 다양한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음식, 옷의 재료, 실험 도구, 오락을 위한 수단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동물 학대와 착취가 문제가 되면서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인식 확산에 부단히 노력한 결과다. 주요 선진국은 동물보호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법 개정 작업이 활발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 “어린시절 경험, 동물보호 관심 키워”

“이제 첫걸음을 뗀 단계다.” 동물권 행동 단체인 카라의 전진경 상임이사는 한국 내 ‘동물권’ 인식 수준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카라는 2002년 ‘아름품’이라는 이름의 작은 단체로 출발해 국내 대표 동물권 운동단체로 자리 잡았다. 개식용 철폐와 공장식 축산 폐기 등 동물보호 운동은 물론 △유기동물 구조 △입양 △치료 △교육 △캠페인 △동물보호법 개정 등의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20일 기자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카라 사무실을 찾아 전 이사를 만났다. 이날 인터뷰는 카라의 고양이연구소·세미나실에서 진행됐다. 세미나 공간 한편에 카라가 구조한 개와 고양이가 자유롭게 뛰어 놀고 있었다. 실무 총책인 전 이사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 인터뷰도 겨우 짬을 내 이뤄졌을 정도다.

전 이사는 이 단체의 창립 멤버다. 어느덧 단체에서 활동한지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동물보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묻자, 어린 시절을 먼저 떠올렸다.

“어렸을 때 영향이 컸다. 부모님이 동물을 좋아하셨고, 자연스럽게 항상 개를 키웠다. 전 집안에서 막내였는데 개는 저한테 동생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때, 동물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던 것 같다.”

전진경 상임이사는 굳어진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면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경희 기자

어린 시절, 충격적인 경험도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을 키웠다고 한다. 전 이사는 “어린 시절 우연히 개를 도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당시엔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자연스러웠고 시장에서 개를 잡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봤던 그 장면이 너무 참혹하고 끔찍했고, 상처로 남았다”고 회상했다.

시민운동가의 길은 어떻게 뛰어들게 됐을까. 전 이사는 약학 대학을 졸업하고 8년간 외국계 회사와 대기업 등에서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최연소 대리 직함까지 달았고, 평탄한 삶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늘 공허함이 가득했다고 토로한다.

“외로웠다. 동물 문제에 관심이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수준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동물 보호 문제를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제 주변에 없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개식용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상한 사람만 취급당했다.”

그러던 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된 게 계기가 됐다. 전 이사는 “혼자인 줄 알았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뭐라도 우리가 해보자’는 뜻이 모아져 탄생한 것이 ‘아름품’이었다”며 “초기 창립 멤버는 9명이었다. 각자 다 직장이 있었는데, 사비를 모아 활동을 이어나갔다”고 말했다.

◇ 사비 모아 동물권 보호 운동 뛰어들다 

2000년대 초반, 국내의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은 더 척박했다. 규모를 갖춘 동물보호단체들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시민운동계에서도 비주류로 분류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년 월드컵까지. 국제 스포츠 행사를 거치면서 한국 내 개식용 문화 종식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졌지만 갈 길이 먼 상황이었다. 개식용을 고유의 문화로 인식해야 한다는 반대론도 적지 않았다.

개에 대한 학대가 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전 이사는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어온 동물”이라며 “반려동물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개다. 인간과 친밀한 동물조차 최소한의 생명권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동물보호 인식이 제대로 자라나기 어렵다고 봤다. 이에 개로 시작해서, 고양이, 축산 동물, 야생동물 등으로 보호 운동을 확대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굳어진 사회적 인식과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이 쉬울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카라 활동가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2002년 안용근 교수의 개고기 가공식품, 화장품 발표회 반대시위를 시작으로, 즉석보신탕 철폐 캠페인, 유기동물입양 캠페인, 동물 학대 고발 및 사례 발표, 동물보호잡지 ‘숨’ 창간, 식용견 농장 및 개시장 철폐, 동물보호법 개정 촉구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던 수많은 유기 동물과 식용 견이 구조됐고, 새로운 주인 품으로 입양됐다.

쉼 없이 달려온 결과, 카라는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국내 최대 동물단체로 발돋움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의 노력과 시민들의 의식 개선 덕에 동물권 보호에 대한 인식은 이전보다는 나아진 분위기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동물 보호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 부산 구포 개시장 철폐 운동 결실… “끈질긴 설득 통했다” 

특히 전 이사는 올해는 부산 구포 개시장 철폐 운동이 결실을 맺어 의미 있는 해였다고 진단했다. 지난 7월 1일 구포 개시장은 60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 곳은 성남 모란 개시장(2016년 12월 폐업), 대구 칠성 개시장과 함께 국내 3대 개시장으로 불렸던 곳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쇠창살에 갇혀 있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개들의 곡소리가 무성했던 장소였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최근 몇년간 구포 개시장 철폐를 위해 치열하게 발로 뛰었다. 시 공무원, 정치인, 시장 상인들과 만나 끈질기게 설득하고 협상해 결국 개시장 철폐를 이끌어냈다.

카라는 구포 개시장 철폐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동물보호단체 중 하나다. 전진경 상임이사는 “구포 개시장은 앞으로 동물 복지 특화거리로 조성될 예정”이라며 “이같은 사례가 많이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경희 기자

카라는 구포 개시장 철폐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동물단체 중 한 곳이다. 전 이사는 구포 개시장 철폐는 동물권 운동에 있어 이정표가 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지자체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고 시민들도 큰 응원을 해주셨다. 부산 시민들이 공감을 해주셨기에 잘 협의가 이뤄졌던 것 같다. 구포 개시장 공간은 앞으로 동물복지 특화거리로 조성될 예정이다. 동물권 복지 운동에 있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엔 다소 불편한 사건이 드러나기도 했다. 구포 개시장이 폐쇄된 지 넉 달 만에 또다시 개고기를 판매한 업소가 적발된 것이다. 이에 지자체에서는 또다시 개고기를 판매하다가 적발될 경우 생활 안정 자금과 신규 상가 입점권을 회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전 이사는 “시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강도 높은 제재 조치를 가해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전 이사는 여전히 목마름을 느낀다고 했다. 전 이사는 “동물에 대한 학대 사례가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시민단체들이 아무리 고통받는 동물을 구조하려 애쓴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동물 복지가 더 한발 나아가기 위해선 큰 틀의 법 제도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큰 변화가 필요할 때, 장애가 되는 것은 사람들의 굳어진 인식이다. 그리고 이 인식을 지배하는 것이 시스템 즉, 법 제도다. 현행 민법에서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는 ‘물건’에 해당된다. 학대로 동물을 죽이더라도 법에서는 재물손괴죄로 처벌하고 있다.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임에도 생명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법에서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에 동물이 생명이 아닌, 소유물로 쉽게 취급되는 것이다.”

전 이사는 민법은 물론, 헌법에서도 동물의 지위와 보호를 명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헌법은 모든 법의 근간이 된다. 이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민법은 물론 헌법에도 동물권에 대한 조항을 넣고 있다.

◇ 민법상 동물은 ‘물건’ 취급… “법 규정 체계 바뀌어야”

우리나라에도 지난해 첫 논의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에 동물보호 의무를 명시한 내용을 넣으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안타깝게도 해당 개정안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결실을 맺지 못했다. 다만 전 이사는 이 같은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처음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왈칵 흘린 일화도 들려줬다.

“헌법 개정안에 동물 보호와 관련 문구가 들어갔다는 소식을 지하철로 이동 중에 들었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왈칵 났다. 통과가 되든 안 되든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거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전 이사는 “현 정부 들어 동물복지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진 점은 의미가 있다”며 “다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 수준이다. 사회 인식 수준도 마찬가지다. 이제 사람들이 조금씩 감수성을 가지고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도와 달라고 말하는 초기 단계”라고 진단했다.

전진경 상임이사는 “지금도 많은 동물이 고통을 받고 있다”며 “이들에게 유효한 도움을 주기 위해 단체가 사회적 영향력을 키울 수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실천을 무엇이 있을까. 전 이사는 “작은 관심도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동물은 매 순간 우리와 같이 하고 있다. 내 생활 속에서 나는 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지,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대상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개를 사는 게 아니라, 입양하는 것도 좋은 실천이 될 수 있다. 작은 관심과 생각 전환, 실천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향후 목표를 묻자 전 이사는 “힘을 갖고 싶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자신들이 던지는 동물권 보호 메시지가 사회적 파급 효과를 내기 위해선 더 큰 영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전 이사는 “카라가 많이 성장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힘이 약하다”며 “고통받고 있는 동물들에게 유효한 도움을 줄 수 있는 힘 있는 단체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해야 한다. 그 때까지 저도 쉴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카라는 2020년 3월 정식개관을 목표로 경기도 파주에 더봄 센터를 짓고 있다. 이곳에서 △위기동물 보호 △보호자 사전 인증교육 △반려동물 행동교육 △입양캠페인 △시민봉사 등의 프로그램을 연중 진행할 예정이다. 동물들에게 진정한 봄날이 찾아올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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