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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걸이 간다
[안진걸이 간다㉙] 장애인 복지 예산, 이게 최선인가 
2019. 11. 22 by 이미정 기자 wkfkal2@sisaweek.com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달 22일부터 서울 중구에 위치한 ‘나라키움 저동빌딩’ 1층에서 진짜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기를 위한 예산 확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4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시사위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내년이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2년째를 맞이한다. 이 법은  장애에 대한 ‘차별 금지’를 명확하게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권 실현하는 것. 이 법이 품고 있는 지향점이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선뜻 말하긴 어렵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도 허덕이는 장애인들이 부지기수다.

◇ 진짜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기 목소리 '왜'

보이지 않는 사회적 배제와 차별도 여전하다는 게 장애인단체들의 시각이다. 또 정부의 복지 예산 편성에서도 여전히 ‘배제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해왔다. 특히 정부가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의 단계적 폐기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를 준비하기 위한 충분한 예산이 편성됐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들끓고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제도 폐기 추진의 걸림돌로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를 지목하고 있다. 기재부가 예정 배정의 우선순위에서 장애인 및 빈곤층의 예산을 배제시키고 있어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장애인단체들은 들고 일어났다. 완전한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기를 위한 내년도 예산확충을 요구하며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농성 시위에 돌입한 상태다. 지난 14일 기자는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함께 농성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지난달 22일부터 기획재정부가 건물주로 있는 서울 중구에 위치한 ‘나라키움 저동빌딩’ 1층에서 점거 농성 시위를 벌여왔다. 현장엔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연대 단체 활동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재부 예산반영 없는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기는 사기행각‘이라는 플래카드가 시위 현장에 가득했다. 홍남기 기재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문구도 강렬하게 새겨져 있었다.

박 대표 눈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정부가 ‘부양의무자’ 기준과 ‘장애인등급제’를 폐기한다고 발표했을 때, 적잖은 기대를 가졌지만 이내 실망감으로 돌아섰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부양의무자 기준에서 주거급여에 대한 기준만 폐기됐을 뿐이다. 생계급여의 경우, 중증 장애인에 대해서만 내년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보지 않기로 했고, 의료급여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시작조차 되지 않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수급권자를 선정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제도다. 소득이 있는 가족이 있다면 수급 혜택을 받는데 제한된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비수급 빈곤층을 만드는 걸림돌의 지목돼 제도 폐기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져온 바 있다.

장애인등급제도는 지난 7월 31년 만에 폐지됐지만 실효성에서 의문을 남기고 있다. 정부는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1~6급의 장애등급을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화하고,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폐지를 위해선 예산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게 장애인단체들의 입장이다.

◇ “예산 없는 제도 폐기 의미 없어”… 예산 증액 촉구 

박 대표는 “두 제도의 폐기가 의미를 가질려면 무엇보다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며 “정부는 장애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예산을 대폭 늘리는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기 위해선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2020년 장애인 및 저소득층 관련 예산안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장하는 예산안 비교표./ 그래픽=김상석 기자

전장연에 따르면 정부는 장애인과 저소득층을 위해 내년도 14조원 가량의 예산안을 마련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전체적인 복지 수준 향상과 제도 폐기에 따른 비용 확대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지적한다. 최소한 현 예상안보다 7조원 이상의 금액이 증액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장애인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를 위해선 최소한 6조원가량의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이번에 완전한 제도 폐지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박 대표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의 시작인 2020년 정부의 예산안은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국가의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구호품 수준의 예산안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의 재정과 내년도 전체 예산안을 보면,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며 “예산배정의 우선순위에서 약자들이 밀려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심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박 대표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의 동의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기획재정부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모든 것으로 경제와 재정논리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며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인간답게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무부양자 기준과 장애인등급제 폐기를 결정했으면 그에 맞는 정책과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