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이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으로 2019년 열일 행보의 대미를 장식한다. /NEW
배우 박정민이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으로 2019년 열일 행보의 대미를 장식한다. /NEW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박정민이 달라졌다. ‘떴다고 변했다’는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매 작품 ‘베스트’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였던 그는 이제 조금은 내려놓는 방법을  알게 됐다. 매 작품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면서도, ‘폐 끼치지만 않길 바랄 뿐’이라던 그는 이제 스스로를 돌아볼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을 만나고부터다.

독립영화 ‘파수꾼’(2011)으로 데뷔한 박정민은 굵직한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며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동주’(2016) 독립운동가 송몽규, ‘그것만이 내 세상’(2018) 서번트증후군 동생 오진태, ‘사바하’(2019) 미스터리한 정비공 나한까지 장르와 캐릭터를 불문하고 연기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는 연기 외적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천재 피아니스트 역을 위해 피아노를 배우고, 무명의 래퍼를 연기하며 랩을 배우고 직접 가사도 썼다. ‘타짜’ 시리즈에 뛰어들어 카드 셔플과 체중 감량도 뚝딱 해냈다.

올해 박정민의 마지막 행보인 ‘시동’은 그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보기 드문 작품이다. 대신 배우이자 사람, 청춘 박정민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시동’은 정체불명 단발머리 주방장 거석이 형(마동석 분)을 만난 어설픈 반항아 택일(박정민 분)과 무작정 사회로 뛰어든 의욕충만 반항아 상필(정해인 분)이 진짜 세상을 맛보는 유쾌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조금산 작가의 동명의 웹툰을 영화화했다.

극 중 박정민은 10대 반항아를 택일을 연기했다. 거칠고 까칠하지만 순수하고 인간적인 매력의 택일을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특유의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연기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인 혹은 나 자신과 다르지 않은 얼굴로 친근한 매력을 발산한다. ‘케미 장인’ 면모도 빼놓을 수 없다.

충무로 대세 박정민. /NEW
충무로 대세 박정민. /NEW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박정민은 전작 때 보다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를 땐 “질문이 없는 거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터뷰 내내 분위기를 주도했다. 팬들을 향한 고마움을 이야기할 때는 따뜻한 진심이 느껴졌고, 배우로서의 고민과 철학을 얘기할 때는 여전히 겸손하고 진지했다. 박정민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기자의 말에 “‘시동’ 때문”이라며 웃었다.

-영화가 유쾌하고 밝아서 그런가, 박정민도 한결 편안해진 느낌이다. 
“나도 그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러지?’라고 생각을 해봤는데, 마동석 선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더라(마동석은 해외 스케줄로 ‘시동’ 홍보 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또 재밌고, 유쾌한 영화다 보니까 조금 실없는 얘기를 해도 영화와 어울리니까 용서가 되지 않을까라는 안도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편하진 않다. 모두가 다 (날) 쳐다보고 있는 건 불편한 일이다.”

-30대인 박정민이 10대 반항아 택일을 연기했다. 특별히 준비한 게 있다면.
“준비한 게 별로 없다. 오히려 준비하면 괜히 더 나이 들어 보일까 봐 10대처럼 보여야 한다는 걸 포기했다. 요즘 애들 쓰는 말도 써보고, 말투도 따라 해보고 했는데 더 아저씨 같은 느낌이더라. 택일이 갖고 있는 정서들이 중요한 거니까, 그 부분을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하겠다 싶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표현이 서툴고, 과격한 택일이 완성된 것 같다. 사실 제가 아직 철이 없다. 그래서 잘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웹툰이 원작이다 보니 자칫 선을 넘으면 너무 만화적일 수 있어서 톤 조절을 하는 것도 중요했을 것 같은데.
“맞다. 상황이나 설정, 캐릭터 등 그 모든 것들이 굉장히 만화적이다. 연기를 하다가도 실제라면 이거 조금 난감한데 싶을 정도의 설정들이 있었다. 최대한 덜어내고 영화적으로 갖고 오기 위해 감독과 상의를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전개를 위해서 만화적 설정을 뺄 수 없는 장면들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조금 과하더라도 관객들에게 이해를 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상의하면서 만들어 나갔다.”

-‘시동’에 가장 끌렸던 이유는. 
“마음을 울리는 장면들이 있었다. 나도 아는 감정이면, 많은 관객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다 느껴봤을 것 같았고, 잘만 하면 뭔가를 던져줄 수 있겠다 싶었다. 웃긴 것도 좋았지만, 그걸 제외한 나머지 정서적인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엄마와의 관계라든지 결핍이 있는 아이를 사랑과 관심으로 품어주는 모습들이 좋았다. 작은 응원이 느껴져서 좋았다.”

‘시동’에서 10대 반항아 택일을 연기한 박정민 스틸컷. /NEW
‘시동’에서 10대 반항아 택일을 연기한 박정민 스틸컷. /NEW

-드라마틱한 결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적으로 끝나서 의외였다.
“맞다. 만화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 어떤 분들은 약간 맥이 빠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뭔가 사건들을 겪어도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저희는 쿨하게 그 모습을 택한 거다. 너무 큰 성장을 한 것처럼 보여주면 오히려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과 거리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원작과 스토리 라인은 비슷한데, 코믹적인 느낌이 훨씬 더 강하더라.
“사실 나도 처음 이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원작과 비슷한 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큰 사건이 별로 없지 않나. 관객들에게 어필하려면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뭘까 고민을 하다가 (마)동석 선배의 단발머리를 본 거다. ‘이거다’ 싶었다. 관객들도 이 영화를 즐길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모두가 합의를 본 거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웹툰의 쓸쓸한 느낌 그대로 갔다면 상업영화로서의 매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니까, 무기를 갖고 있어야 했다.”

-그동안 피아노, 랩 등 연기 외적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이번 작품은 달랐다. 또 다른 의미에서 도전이었을 것 같다. 불안함은 없었나. 
“맞다. 크게 배울 게 없었다. 오토바이도 탈 줄 알았고. 그래서 불안하기도 했다. 배울 게 있으면 의지가 된다.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대본 보다가 다음날 가서 재밌게 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가다 보니 불안한 것도 있었고, 일을 하고 온 것 같지 않은 느낌도 있었다. 안절부절 하게 되더라. 그런데 이렇게 영화를 찍는 것도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이런 작품이 더 많을 것 아닌가.”

-과한 액션이나 몸짓 등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리액션도 인상 깊었다.
“무서운 걸 봤을 때 쪼는 사람이 있고, 기본적으로 덤비는 사람이 있다. 미국에서 몰래카메라를 해도 쓰레기통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면 ‘악’ 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고, 바로 주먹을 날리는 사람이 있다. 택일은 싸움은 못해도 일단은 덤비는 애라고 생각해서 그런 몸짓들을 하게 됐다. (실제 본인은 도망파인가 주먹파인가) 나는 멀리 도망간다. 무서워서.”

-진로를 바꾸면서 부모님과 갈등을 겪은 걸로 알고 있다. 반항아 택일을 연기하면서 그때의 기억이 많이 떠올랐겠다. 
“맞다. 대부분 자녀들이 부모님과 싸우잖나. 나는 그 시작이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통보를 한순간이다. 그 이후로 말만 하면 싸우게 되고 사이가 안 좋았던 시기가 있었다. 엄마는 별생각 없었을 수 있지만 나는 말만 하면 짜증나고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그때는 ‘내가 하고 싶은데 왜 하지 말라고 하지’라는 반항심이 되게 심해서 못되게 굴었던 적도 있었다. 많이 미안한 마음이다. 나에 비하면 택일은 엄마를 엄청 무서워한다. 화를 내긴 하지만, 예쁘게 화를 내더라. 알고 보면 (택일은) 효자다. 하하. 택일을 연기하면서 엄마, 아빠와 있었던 갈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 연기할 때 감정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표현이 늘 서투니 싸우고 그랬던 것 같다”

팬들을 위해 사비로 팬미팅을 연 박정민. /NEW
팬들을 위해 사비로 팬미팅을 연 박정민. /NEW

-‘어울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어울리는 일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중 어떤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결국 내가 잘 하는 일이 아닌 것 같은 장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 항상 그 고민들을 하면서 살았다. 지금도 완전히 해소가 된 건 아니다. 극 중 윤경호(동화 역) 선배가 상필한테 ‘하다 보면 어울리는 일이 되는 거야’라는 말을 한다. 상필에게 좋은 대사는 아니었지만, 그 대사만 들었을 때는 응원이 되는 대사였다. ‘하다 보면 나한테도 이 일이 어울리는 일이 되겠지’라는 위로를 받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장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고 했는데, 그럴 땐 어떻게 극복하나.
“끝까지 고민한다. 최대한 우울해졌을 때까지 고민한 다음부턴 괜찮아진다. 그리고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잖나. 그 사람들이 채워준다. 나는 사실 나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않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가 치유가 된다. 그래서 현장에 나가는 게 재밌고, 현장에 있는 게 오히려 덜 지치는 것 같다.”

-팬들도 소중한 존재인 것 같다. 최근 팬미팅 비용을 사비로 다 부담을 했다고.
“어떻게 알았나. 비밀로 했는데. 팬미팅은 팬들을 만나는 자리다. 내가 거기에서 무언가 훌륭한 걸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는데, 그 와중에 (팬들에게) 돈까지 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맨날 선물 사오고, 무대 인사하면 표 끊느라 또 돈 쓰고, 현장에 커피차도 보내주고 계속 돈을 쓰는데, 팬미팅 한다고 얼마씩 받는 게… 내가 뭣도 아닌데 자꾸 돈을 쓰시니까, 언젠가 갚겠다고 말만 하고 있던 와중에 팬미팅을 한다고 하기에 대관은 내가 한다고 해서 한 거다. 별거 아니다. 재밌었다. 다들 좋아해 주셨다. 팬미팅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정신을 놔야 한다. 박지선 누나가 사회를 봐줘서 정말 원활하게 재밌게 팬들과 시간을 보냈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꼭 지키고자 하는 다짐이나 약속이 있다면.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하는 것.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더 낫기 위해서 사소한 것에서도 뭔가를 계속 배워나가야 한다. 많이 보고, 생각하고. 그래야 선배들처럼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잘하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내세울 게 별로 없다.”

-올해도 ‘열일’했다. 1년을 돌아보면 어떤가. 또 내년 계획은.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갔다. 참 열심히 많은 걸 했다. 그래서 이제는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이 시점에서 뭘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볼 타이밍인 것 같다. 2020년에는 그런 생각들을 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시동’ 예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비 관객 여러분~ (웃음). 저는 이 영화를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다. 웃긴 것도 좋고 다 좋은데, 제일 좋은 건 배우들이 별말 아닌 것처럼 하는 대사들을 곱씹어 보면 마음에 남는 것들이 있다는 거다. 가볍게 와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막 웃다가도,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