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기술력과 수법 vs 솜방망이 처벌과 뒷북조치
정부, 몰카 범죄 대응책 마련 분주하지만 더딘 속도에 우려 ↑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자신도 모르게 촬영되는 '몰카'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된다. 정부에서는 몰카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매년 5,000여건의 몰카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스마트폰 카메라 화질의 급격한 발전과 더불어 날이 갈수록 상대방을 몰래 촬영하는 ‘몰카’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카메라 무음 설정앱(App)과 빠른 유통이 가능한 초고속 이동통신들의 등장은 여기에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인터넷 특성 상 한 번 퍼진 불법촬영물을 모두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확산 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 토렌트, 웹하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서의 불법촬영물 유통 역시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검색 한 번이면 누구나 쉽게 불법촬영물에 접근할 수 있다. 이처럼 몰카 범죄의 피해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근절 대책은 부족한 실정이다. 

◇ 단속 비웃듯 기승 부리는 몰카… 가해자에 ‘경찰’도 포함

지난달 21일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문의가 간호사 탈의실에 몰카를 설치했다가 적발됐다. 부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피의자는 간호사들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불법 촬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19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유명 인터넷 BJ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구속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BJ는 지난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약 2년간 공중화장실 등에서 여러 여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8월 서울 강남구의 여자 공중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촬영하다 한 여성에게 발각됐다.

심지어 몰카를 단속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경찰도 몰카 범죄 가해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북지방경찰청은 지난달 18일 동료와의 성관계를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A순경을 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현역 경찰들뿐만 아니라 실습생, 경찰대생 등도 몰카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 9월 서울의 한 경찰서에 실습생으로 배치 받은 A씨는 여자친구와 성관계하는 모습을 몰래 촬영한 뒤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13차례에 걸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불법 촬영한 경찰대 학생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 공중화장실 몰카 단속 건수 ‘0건’이 던지는 메시지 

이 같은 몰카 범죄를 근절시키기 위한 대응책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행 중인 대응책 중 하나인 ‘몰카 단속’의 경우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예방을 위해 ‘여성 안심 보안관’을 발족하고 공중화장실 3만5,000개 중 시의 특별관리대상 화장실 1,000개, 소유주 점검 요청 민간건물 등을 대상으로 단속을 실시했다. 그러나 1년간 16만 건을 단속한 결과 적발 실적은 0건이었다. 

전국 단위의 단속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년간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에서 전국 공중화장실 28만8,000여곳의 불법촬영 실태를 점검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곳에서도 몰카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 촬영 범죄는 지난 2014년 6,623건, 2015년 7,623건, 2016년 5,185건, 2017년 6,465건 2018년 5,925건이 발생했다. 매년 몰카 범죄는 5,000건 이상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단위의 몰카 설치 단속에서는 성과를 전혀 거두지 못한 것이다.

지난 1년간 전국 공중 화장실 28만8,000여곳의 불법촬영 실태를 점검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곳에서도 몰카가 발견되지 않아 대책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뉴시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진행 중인 몰카 단속 방식이 범죄 수법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여성 안심 보안관과 몰카 단속 인력들은 인력부족으로 인해 실시간 몰카 범죄자 단속 대신 ‘고정식 몰래 카메라’ 단속에만 매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발생하는 몰카 범죄 방식의 대부분이 스마트폰과 ‘이동식 카메라’를 이용해 범죄자가 직접 촬영하는 수법”이라며 “화장실 앞 cctv 설치 등이 몰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 구속은 고작 2.6%

솜방망이 처벌도 몰카에 의한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시키지 못하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몰카 피해자가 받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이 받는 처벌은 미미한 수준이다. 

실제로 몰카 범죄자의 대부분이 불구속에 그치고 있다. 지난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 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받은 ‘불법촬영 범죄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2∼2018년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 2만6,955건 중의 97.4%인 2만6,252건이 불구속이었고 구속은 2.6%로 703건에 그쳤다. 

구속되는 가해자들에게 내려지는 처벌도 수위가 낮은 편이다. 지난 9월 24일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20대 여성은 전남 순천의 한 종합병원 탈의실 불법촬영 사건의 피해자였다. 그는 내년 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부였기에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러나 탈의실 불법촬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고작 징역 10개월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3년간’ 아동·청소년,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의 처벌을 받게 됐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 2만6,955건 중 97.4%인 2만6,252건이 불구속이었다. 구속은 2.6%로 703건에 그쳤다./ 뉴시스

불법촬영물을 유통한 범죄자들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이보다도 적은 상황이다. 토렌트를 통해 몰카 공유 파일을 유포할 경우 성폭력방지특별법 위반 혐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 지난 5월 부산지법 형사3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4월부터 2018년 9월까지 토렌트에서 몰카 불법 촬영물 41건과 음란물 5만3,000여건을 유포한 혐의를 받은 가해자가 몰카 유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징역 1년2개월의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성폭력방지특별법 상 몰카는 정보통신망법과 달리 촬영물 자체를 유포했을 경우만 처벌 대상”이라며 “몰카 토렌트 파일을 게시해 간접적으로 촬영물을 유포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공유 파일 제공만으로 촬영물을 유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이 범죄 억제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몰카 범죄에 대한 처벌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클레어 맥글린 영국 더럼대 법과대학 교수는 지난달 15일 개최된 ‘2019 디지털 성범죄 대응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해 “양형 조건을 높이는 것은 디지털 성범죄의 억제효과와 범죄에 대한 교육적‧예방적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민 청년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몰카범이 2009년에 비해 작년 8배 가량 증가한 반면 몰카범에 대한 기소율은 69.7%에서 34.4%로 줄어들었다”며 “몰카 범죄에 대한 보다 강력한 대응 프로세스와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전 예방을 위해 여자화장실 등 몰카 취약지대의 정기적, 지속적 점검과 더불어 ‘몰카’ 범죄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사회적 교육 및 캠페인 등도 확대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몰카가 ‘중범죄’라는 인식

정부는 현재 비판을 받고 있는 몰카 범죄 대응책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몰카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추진 중이다. 앞서 양형위원회는 지난 6월 제95회 전체회의를 통해 ‘카메라 등 이용 찰영죄’, ‘통신매체 이용음란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설정하기로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양형위는 오는 2020년 4월 26일까지 디지털 성범죄 기준을 새로 설정할 예정이다.

이어 지난 12월 개최된 양형위 제98회 전체회의에서는 기존의 ‘디지털 성범죄’라는 용어를 ‘카메라·통신매체 등 이용 성범죄’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용어는 설정 대상의 범죄 범위, 디지털 성범죄 개념 정립에 혼동을 줄 우려 등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해 ‘카메라·통신매체 등 이용 성범죄’로 바꾸자는 의견이다.

아울러 서울시는 효과가 미비하다는 비판이 많은 여성 안심보안관 몰카 단속도 강화할 예정이다. 먼저 구 직원과 숙련된 여성 안심 보안관이 함께 현장으로 나가 점검기기로 불법촬영 카메라를 찾아낼 예정이다. 또한 사용자가 직접 자율적으로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알아보고 찾아낼 수 있도록 점검기기를 대여와 더불어 사용법도 알려준다. 

아울러 자율점검을 하는 다중이용시설에서 스마트폰 등 이동형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촬영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현장에서 바로 신고하고 경찰이 즉각 출동해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불법촬영 예방교육을 실시한다.

업주나 시민을 ‘명예안심보안관’으로 위촉해 업소, 마을까지 촘촘한 자율점검 시스템을 구축한다. 불법촬영 예방교육을 이수하고 불법촬영 탐지기 습득방법 등 교육받은 후 업소나 마을 내 정기 점검을 통해 ‘안심마을(업소)’을 선도해 나간다. 우선 500명을 위촉하고 향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범죄 수법 업데이트를 통한 점검 방식을 재교육해 단속 능력을 강화할 방침”이라며 “인력 부족의 경우 가용 인력을 더 발굴해 대처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19일에는 몰카로 인한 불법촬영물 유통으로 피해를 최소화 하기위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하 방통위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기존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를 거쳐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해당 정보의 처리를 거부·정지 또는 제한하도록 명령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7일이다. 이 때문에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른 디지털 성범죄 정보의 특성 상 방심위가 심의를 하는 기간에도 피해 당사자에게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법안의 통과로 디지털 성범죄 정보 등에 대한 심의기간을 단축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 법안의 대표 발의자인 노웅래 의원은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은 한 번 퍼지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신속한 초기 조치 대응이 관건”이라며 “이번 개정안 통과로 디지털 성범죄정보 상시 심의체계가 구축돼 성범죄 피해 영상물 유통이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법과 단속을 통한 몰카 및 디지털 성범죄는 결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며 국민적으로 몰카 범죄가 피해자에게 큰 고통을 주는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범죄심리학 전문가는 “불법촬영물은 보는 것 자체가 범죄 행위이자 피해자를 유린하는 행위”라며 “상대방의 몸을 성적 대상화로 인식하는 행위인 몰카 및 촬영물 유포를 근절시키기 위해선 몰카는 호기심이 아닌 중범죄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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