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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의 ‘알레오 K리그’
‘감독’ 박진섭의 주목되는 2020년
2019. 12. 20 by 이수민 기자 sooomiiin@hanmail.net
광주FC를 K리그2 우승 및 승격으로 이끈 박진섭 감독이 다음 시즌 K리그1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다. /뉴시스·프로축구연맹
광주FC를 K리그2 우승 및 승격으로 이끈 박진섭 감독이 다음 시즌 K리그1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다. /뉴시스·프로축구연맹

시사위크=이수민 기자  박진섭. 그는 우리나라 축구계에서 ‘천재’라는 별명의 계보를 이어간 인물 중 하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청소년대표로 활약했고, 탁월한 기술과 축구지능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의 선수 인생은 ‘기대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촉망받던 대학 시절 유럽 진출을 도모했으나 당시로선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한국 축구사에 있어 최고의 순간이었던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물론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일 뿐, 그의 선수 인생은 성공적이었다. 박진섭은 병역을 해결한 뒤 2002년 프로무대에 발을 들였다. 울산 현대는 그에게 당시 신인선수 최고한도액이었던 계약금 3억원을 안겼다. 박진섭은 이러한 대우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고, 입단 첫해와 이듬해 팀의 2년 연속 준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박진섭은 2005년 성남 일화로 이적했고, 성남의 ‘호시절’을 함께했다. K리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컵을 차지한 것도 이때(2006년)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그의 다음 행선지는 부산 아이파크였다. 2008년 성적 부진에 빠진 성남이 대대적인 변화에 나선 가운데, 그는 부산 유니폼을 입었다. 당돌한 천재 축구소년에서 베테랑이 된 그는 자신의 프로리그 마지막 시즌이 된 2010년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박진섭은 이후에도 선수생활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연봉 등에 있어 구단과의 시각차가 컸고, 결국 부산은 그와의 재계약 방침을 철회했다.

그러나 그의 선수인생은 거기서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2011년 여름, 실업축구 내셔널리그 울산 현대미포조선 유니폼을 입고 축구화 끈을 다시 동여맨 것이다. 그의 이 같은 선택은 대학시절 은사와의 ‘의리’ 때문이었고, 그는 2011년 팀을 우승으로 이끈 뒤 마침내 선수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지도자로 축구인생 2막을 연 박진섭은 2017년 12월 광주FC 감독으로 선임되며 처음으로 프로팀 감독을 맡게 됐다. 초보감독에게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당시 광주는 3년의 1부리그 생활을 마치고 2부리그로 강등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 박진섭은 이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감독 첫해 다소 어수선할 수 있는 팀을 추슬러 리그 5위의 준수한 성적을 남기더니, 올 시즌엔 압도적인 행보로 팀을 K리그2 우승에 올려놓았다.

박진섭 감독은 다양하고 과감한 전술변화를 앞세운 지략가로서의 면모는 물론 한여름 ‘겨울양복’ 투혼으로 선수들을 독려하는 리더로서의 면모를 모두 보여줬다. 팀의 우승 및 1부리그 승격 직행에 가장 큰 공신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런 그가 이제 다시 K리그1 무대를 노크한다. 선수 시절 주름잡았던 바로 그 무대다. 광주FC는 팀을 우승과 1부리그 승격으로 이끈 박진섭 감독과 최근 재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은 2년이다.

K리그2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이제 박진섭 감독과 광주는 다시 ‘도전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 특히 승격 첫해인 다음 시즌은 박진섭 감독과 광주 모두에게 무척 중요한 시기다. 1부리그에 연착륙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팀이 될지, 강등위기에 직면하는 팀이 될지 중대 기로이기 때문이다.

‘감독’ 박진섭, 그는 자신에게 붙었던 ‘천재’라는 수식어를 지도자로서도 입증할 수 있을까. 그의 행보를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