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로 돌아온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최민식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로 돌아온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나에게 연기란 죽어야만 끝나는 공부다.”

연기 경력 30년, 출연한 작품만 45편에 달한다. 그가 들어 올린 트로피만 30개가 넘고, 그의 대표작 영화 ‘명량’(1,761만5,657명)은 역대 한국영화 최다 관객수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름 석 자만으로도 관객들은 무한한 신뢰를 보내지만, 정작 본인은 여전히 연기가 어렵단다. 자신의 연륜과 명성에 기대 허투루 하지 않고, 매 작품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공부하는 것. ‘대배우’ 최민식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최민식은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뒤 1989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본격적으로 매체 활동을 시작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던 그는 1999년 영화 ‘쉬리’를 기점으로 주로 스크린에서 활약을 이어오고 있다.

최민식은 ‘해피 엔드’ ‘파이란’ ‘취화선’ ‘올드보이’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신세계’ ‘명량’ 등 수많은 대표작을 탄생시키며 한국영화와 함께 걸어왔다. 좌중을 압도하는 연기력은 물론,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보장하는 ‘믿고 보는 배우’로 꼽힌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장영실을 연기한 최민식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장영실을 연기한 최민식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침묵’(2017) 이후 2년만의 복귀작인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도 관객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최민식은 조선의 역사에서 사라진 천재 과학자 장영실로 분해 깊은 연기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울림을 선사할 예정이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 분)과 장영실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생사는 물론, 발명품 제작 자료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의문을 남기고 사라진 이유를 실제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팩션 사극’이다.

장영실은 조선 최고의 천재 과학자로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역사에 남을 수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세종 24년 ‘안여(安與)사건’(임금이 타는 가마 안여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한 순간에 역사에서 사라진 인물이다.

세종과 함께 조선만의 시간과 하늘이라는 같은 꿈을 꾸며 신분을 넘어선 관계를 맺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최민식이 본인만의 해석을 더해 입체적으로 완성, 호평을 받고 있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최민식은 “아직도 하고 싶은 장르가 많다”며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연기는 삶과 인간에 대해 계속 알아가는 과정”이라며 본인만의 철학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최민식이 한석규와 재회한 소감을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최민식이 한석규와 재회한 소감을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어떤 점이 가장 끌렸나.
“한석규와 함께 해서다. ‘천문’이 아니더라도 한석규와 함께였다면, 했을 거다. 허진호 감독과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어느 날 느닷없이 ‘천문’ 시나리오를 주더라. 그러면서 한석규와 함께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콜’이라고 했다. 게다가 허진호 감독이 한 디테일하지 않나. 괜찮겠다 싶더라. 시나리오를 보니 정치 드라마도 아니고 과학 드라마도 아니더라.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에 집중한 점이 좋았다. 그래서 나와 한석규에게 줬구나 싶더라.”

-한석규와의 작업은 어땠나.
“그동안 세종과 장영실이라는 역사적 배경이나 업적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나 방송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영화는 업적을 이루기까지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을 했고, 그래야 차별화된 작품이 나오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석규와 함께했기 때문에) 예열 과정이 필요 없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 장점이 있었다. 탁구를 치면 서브를 넣지 않나. 그걸 또 리시브해서 내 쪽으로 넘어온다. 어떨 때는 스핀으로, 어떨 때는 직구로 넘어온다. 한석규는 그런 랠리를 오랫동안 주고받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친구이자 파트너였다.”

-처음부터 장영실 역으로 제안받은 것은 아니라고. 
“허진호 감독이 누가 세종을 하고, 장영실을 할지 알아서 정하라고 하더라. 한석규에게 뭐하고 싶냐 물었더니 세종을 하겠다고 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했는데 또 세종 하겠냐고 했더니 다르게 표현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내 팔자는 노비에서 벗어나지 않는구나 싶더라. 하하. 장영실 역을 하는 게 좋았다. 문헌에 기록된 게 많이 없다. 그만큼 빈 공간이 많으니 재밌을 것 같았고, 내가 상상하는 걸 그려보자 싶었다. 왕이든 노비든 상관없다. 배우가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여백이 얼마나 있는지, 또 그것이 전체적인 작품과 어우러질 수 있는지 판단했다.”

-장영실을 어떤 인물로 해석했나. 
“예전에 TV에서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강연하는 모습을 봤다. 로봇에 푹 빠져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정말 아이 같더라. 장영실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굉장히 순수하고 아이 같은. 천한 계급의 사람이었는데, 세종은 그걸 무시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의기투합을 했다. 장영실은 자신을 인정해준 세종 앞에서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고, 세종을 향한 무한한 존경과 애정이 있었을 거다. 흔히 역사극에서 보지 않았던 모습들이 ‘천문’에서 많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역사 왜곡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조금은 열어놓고 봤으면 좋겠다. 역사적 팩트, 예를 들어 명나라에 대한 것과 사대주의에 빠진 대신들과의 대립은 사실이다. 그런 것들은 왜곡할 수 없다. 우리는 세종과 장영실이 어떻게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비어 있는 공간에 대해 상상해본 거다. 기록에 있는 것을 그대로 묘사하는 건 기본이 돼야 하고, 비어있는 공간들은 우리가 만드는 거다. 우리는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 정도의 창작은 대중들이 열린 마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허진호 감독과 첫 작업이었는데, 어땠나. 
“천상 한량이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글 꽤나 읽으면서 주막집 다니면서 느긋하게 살았을 것 같다. 참 좋다.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전작들을 보면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섬세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시선으로 사극에서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잘 담아낸 것 같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가 브로맨스를 넘어 로맨스로 느껴진다는 평도 있는데.
“아마 좋을 때가 많이 묘사돼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 거다. 아주 오래된 친구들의 다툼 같은 것이 조금 더 많이 보였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로맨스로) 본 것도 자유다. 장영실 입장에서는 노비 신분을 면천시켜 주고, 벼슬까지 주면서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거다. 때로는 도를 넘을 수도 있었겠지. 잠시 왕인 걸 까먹고 편히 대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무도 없었을 때 두 사람의 모습이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에 더 담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대배우 최민식. /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대배우 최민식. /롯데엔터테인먼트

-장영실과 세종은 서로에게 서로를 알아주는 벗이었다. 본인에게도 그런 벗이 있나. 
“학교 은사님이 생각난다. 올해 돌아가셨는데, 석규와 함께 그분 밑에서 배웠다. 고(故) 안민수 선생님이다. 그분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고, 대학 4년 내내 그분의 사랑을 이슬 받아먹듯이 먹으면서 살았다. 그분의 가르침이 하나의 밑천이 돼서 한눈 안 팔고 나름대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많은 것을 받았다. 돌아가신 날까지도 제자들한테 많은 사랑을 부시고 품을 열어주셨다. 이제 그런 품이 없어지니까 허망하기도 하다. 바람 부는 벌판에 내팽겨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많이 생각난다.”

-한 눈 팔지 않고 배우로 살아오고 있다. 최민식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 
“나에겐 공부다. 연극 3대 요소 중 하나가 관객인데, 대중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냥 나 스스로의 공부, 내가 이 일에 미쳐서 하는 건데, 그 행위를 관객들이 봐주고 함께 소통한다는 생각이다. 나는 화자다. ‘천문’이라는 영화를 만들어서 이렇게 표현해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던져주는 거다. 가공의 작품을 하고 그 속에 살아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스스로 매번 배운다. 죽어야 끝나는 공부지만, 몰랐던 걸 자꾸 알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거다. 재미없었을 때도 많고, 힘들 때도 많다. 신구 선생님도 죽어야 끝나는 작업이라고 하시더라. 삶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계속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공부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고 나면 관객의 반응이나 기록 등 어떤 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끼나.
“시사회 때나 일반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 뒤에 들어가서 서서 본 적이 있다. 그 공기가 있다. 관객들의 호흡이나 느낌.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이 사람들이 과연 이야기에 같이 공감하면서 가고 있는지 본다. 가고 있을 때 보람을 확 느낀다. 흥행돼서 안 좋을 사람이 어디 있나. 당연히 내가 출연한 작품에 관객들이 많이 와서 보고 그럼 여러 사람이 행복해진다. 말아먹으면 술자리에서 서로 말도 없다. 2차도 안 가고. 하하.”

-영화 ‘명량’이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또 이루고 싶은 목표나 바람이 있나. 
“관객수는 포기한지 오래다. 다양한 작품,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관객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다양하게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멜로도 좋고, 코미디도 그렇고. 멜로를 진하게 안 해 본 것 같다. 이를테면, 같은 장르라도 더 여문 작품을 해보고 싶다. 더 잘 익은 숙성된 이야기. 사실 사랑 얘기든 뭐든 소재는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그걸 어떤 시각으로 잘 여물게, 속까지 익게 표현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런 작품들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허진호 감독과 한석규, 최민식이 들려주는 옛날 얘기라는 느낌으로 부담 없이 왔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제목도 ‘천문: 하늘에 묻는다’다. 젊은 친구들이 봤을 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 않나. 중국영화 제목 같기도 하고, 역사 시간에 다 배운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과 배우들이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해봤으니, 옛날 얘기 들으러 한번 가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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