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신희영 경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공익이사 파견'과 '서라벌대학 종합감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미정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정부가 ‘사학혁신’에 시동을 걸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18일 ‘교육 신뢰 회복을 위한 사학혁신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사학 법인의 공공성과 책무성, 회계 투명성을 끌어올려 사학 비리를 막겠다는 취지 아래, 제도 개선책이 발표됐다. 추진안엔 사학의 ‘가족 경영’에 대한 규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이 주로 담겼다. △설립자나 친족의 개방이사 선임 제한 △법인 임원 간 친족관계 여부 공개 △업무추진비 공개 범위 확장 △비리 임원의 결격사유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사학 비리는 우리 교육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돼 왔다. 설립자 일가가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하며 각종 전횡을 일삼는 사례들이 쉼없이 적발돼 왔다. 정부는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이번 정책을 추진키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학비리척결 운동을 해온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사학 비리 엄단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이 마련되고 있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라고 평가했다. 

◇ 경주대·서라벌대 정상화 난항… “임시이사 파견·특별감사 필요”

하지만 동시에 깊은 아쉬움도 표했다. 안진걸 소장은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사학 비리 사태로 고통 받고 있는 대학들을 하루 빨리 정상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사학 비리가 밝혀지고도 정상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석학원 산하 대학인 경주대학교와 서라벌대학교를 대표적 사례로 지목했다. 

두 대학 교직원들은 학교 설립자 일가와 재단에 맞서 10년 넘게 ‘학교 정상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3일 안진걸 소장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나선 경주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날 오후 1시, 신희영 경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대학원장 겸임)는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결원 임시이사 파견’과 ‘서라벌대학 종합감사’를 외치는 구호 팻말이 붙어 있었다. 신 교수 옆에선 김성민 디자인애니메이션학부 교수(입학처장 겸임)가 시위 준비를 돕고 있었다. 

신희영 교수는 “옛 재단 측 이사들이 물러나고, 교육부에서 파견한 임시 이사가 선임되면서 학교 정상화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파견 이사들이 그만두면서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됐다”며 “그런데 교육부는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이렇게 시위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 모두 오랜 기간 ‘학교 정상화’ 투쟁을 해온 인사다. 경주대와 서라벌대는 김일윤 설립자 일가가 학교법인 원석학원을 통해 사실상 소유해온 곳으로, 설립자 일가 전횡 논란과 사학 비리 사태로 10년 넘게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설립자의 부인과 아들이 2009년부터 두 대학의 총장을 맡으면서 갈등이 고조된 바 있다.  

신희영 교수는 이 과정에서 부당하게 해임돼 무려 7년간 학교에 복직을 하지 못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신 교수를 포함한 일부 교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설립자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왔다. 결국 이들의 끈질긴 요청 끝에, 2017년 원석학원과 경주대에 대한 교육부의 감사가 이뤄졌다.  

경주대학교가 이사회 구성에 어려움을 겪으며 학교 정상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 /뉴시스

교육부는 2017년 종합감사를 통해 총 50건의 비리와 지적 사항을 발견했다. △이사회 부당 운영 △회위록 허위 작성 △부당한 토지매매 △회계 부적정 △교원 임용 부적정 등 여러 부정행위가 드러났다. 개인이 부담해야 할 KTX 비용을 업무추진비로 부당하게 집행하다 적발된 금액만 2,560만원에 달했다.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교육부는 올해 2월 학교법인 원석학원 8명의 이사 중 개방이사 1인을 제외한 7명의 임원승인을 취소하고 임시이사 7명을 파견했다. 하지만 학교 법인 측은 교육부를 상대로 임원승인취소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교육부는 해당 소송과 관련해 1심에서 패소했다. 다만 임시이사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법인 측의 가처분 신청은 기각된 상태다. 교육부가 임시 이사를 파견한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온 셈이다. 

◇ “교육부 태도 미온적,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문제는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 이사 7명 중 4명이 올해 7월 그만뒀다는 점이다. 이사회 의결은 이사정수의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 남아있는 4명으로는 의결정족수가 되지 않아 이사회 의결을 추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사회 기능은 마비됐고, 학교 정상화 작업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신 교수는 “이사회가 돌아가야 학교 정상화를 위한 규정 변경과 예산 편성, 조직 개혁, 유휴 재산 처리 등을 진행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이사회 구성을 할 수 없으니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신 교수는 “교육부에 이사 파견을 다시 요청했지만 당국은 뒷짐을 지고 있다”며 “교육부는 임원승인취소처분 관련 소송 결과가 나와야 이사를 파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앞서 임시이사 파견 자체는 정당하다는 판결이 있었음에도 교육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임원승인 취소처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서라벌 대학에 대한 종합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교육부는 원석학원과 경주대학교에 대해서만 감사를 진행했다”며 “사실 각종 비리 의혹의 몸통은 ‘서라벌대학’이다. 두 학교 간에 석연치 않는 각종 거래 의혹이 존재하는 만큼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정부의 사학 비리 근절 의지가 진정성을 갖기 위해선 지금 당장 고통을 받는 대학들의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경주대 교수들은 학교 정상화가 시급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신 교수는 “경주대와 서라벌대는 비리 사태로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되는 패널티까지 받았다”며 “이 때문에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학생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는 입학생 유치가 어려워 존립이 위태로운 상태”라고 호소했다. 

그는 학교만 제대로 정상화된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신 교수는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이기에 교육과 관련한 하부 구조를 잘 갖추고 있다”며 “재단 측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는 토지 자산을 매각하면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이사회가 정상화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도 교육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안 소장은 “학교 구성원들은 피가 마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교직원과 학생들의 절박함에 비하면 교육부의 대응은 너무 미온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사학 비리 근절 의지가 진정성을 갖기 위해선 지금 당장 고통을 받는 대학들의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 개별 대학의 정상화 문제에 보다 시급한 문제 의식을 갖고 대응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주 지역 내에서도 경주대·서라벌대 정상화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다. 지난 10월엔 학교 관계자는 물론, 지역 시민과 시민단체까지 참여한 '사학건전성 강화와 경주대·서라벌대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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