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넷마블이 '구로의 등대'로 불리울만큼 개발자들이 장시간 야근을 하는 '크런치모드'가 일상이었다. 본격적인 적용을 앞두고 게임사들은 '생산성'을 이유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의 예외 적용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뉴시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넷마블이 '구로의 등대'로 불리울만큼 개발자들이 장시간 야근을 하는 '크런치모드'가 일상이었다. 본격적인 적용을 앞두고 게임사들은 '생산성'을 이유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의 예외 적용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송가영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게임업계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종 특성상 주 52시간 근무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도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기 시작할 때 게임사들은 여러 자리를 통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유연‧탄력근무제 도입, 포괄임금제 폐지 등으로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올해 현장 국정감사를 위해 판교를 찾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한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 대표는 “중국 업체는 반년마다 새로운 게임 개발에 나서는데 한국 업체는 최근 1년 동안 새로운 게임 프로젝트가 하나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생산성이 떨어졌다”며 “정부 시책을 따라야 하지만 국내 게임업계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발언은 게임사들의 신작 출시가 늦어지고 업계의 전반적인 어려움이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되면서 관심을 집중시켰다.

◇ 출시 게임수 1년만에 감소… 생산성 감소는 ‘글쎄’

김 대표의 발언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던 지난해와 지난 2017년만 비교했을 때, 출시된 게임의 개수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한국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등급분류를 받아 유통된 게임물은 총 45만 9,76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6% 감소했다. 이 중 모바일 오픈 마켓 사업자의 자체등급분류 게임물은 45만 8,078건이었다. 

지난 2017년에는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한 57만 9,113건이었고 이 중 모바일 오픈 마켓 사업자의 자체등급분류 게임물은 57만 7,431건이었다.

개발에 오랜 기간이 걸리는 PC‧콘솔 게임과 달리, 국내 게임사들이 매출 견인을 위해 쏟아낸 모바일 게임 신작 개수가 줄어든 것은 주 52시간 근무제 영향이 적지 않아 보인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기 전후로 게임위와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를 통해 등급이 분류된 게임물의 개수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지난 2017년 7월 1일부터 지난해 6월 30일까지 등급분류가 결정된 게임 1,957건 중 등급거부 확정 게임 158건, 등급취소 게임 67건을 제외하면 총 1,756건의 게임등급이 분류됐다.

52시간 근무제 적용 이후인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등급분류가 결정된 게임 1,782건 중 등급거부 예정 및 확정 게임 123건, 등급취소 게임 97건을 제외하면 총 1,562건의 게임등급이 분류됐다. 정책 시행 전후 1년간의 기록만 보더라도 194건이 감소했다.

다만 이는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김 대표 주장의 근거로 보기 힘들다.

‘생산성’은 생산의 효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투입된 자원에 비해 산출된 생산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대변하는 척도다. 노동생산성·자본생산성·원재료생산성·부가가치생산성 등 다양한 지표들이 존재한다. 통상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투입하는 자원(input)에 비해 결과물(output)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부족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앞선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처럼 ‘출시된 게임물 개수가 줄어든 점’은 노동생산성이 떨어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생산성 평가에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에 근로시간 뿐만 아니라, 낮은 기술 숙련도, 부족한 투자, 오래된 인프라, 각종 규제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게임산업은 순수 창작물에 따른 결과물인만큼, 업종의 특성상 개발을 대체할 인력을 빠르게 수급할 수 없고, 투입인력이나 개발기간 및 결과물을 명확히 정량화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어떤 단위기간에 있어서 그 생산물 총량을 직접 투입된 노동력의 양으로 나누기 어렵다. 완성을 앞두고 프로젝트가 무산되거나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도 허다하다.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만큼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성지표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제조업에서는 투입량과 산출량의 비율을 계량화 할 수 있는 ‘생산성지표’ 분석를 통해 생산성 분석이 가능한 데 반해, 게임 관련 생산성지표를 찾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근로시간 단축, 게임 출시에 일부만 영향”

업계 관계자들 역시 주 52시간 영향 탓으로 신작 개발 일정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출시가 지연되는 것은 맞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신작 출시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한 종사자는 “국내 게임시장에서는 더 이상 비슷한 그래픽, 콘텐츠, 지식재산권(IP)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게임사들은 개발 일정을 늘려서라도 게임 퀄리티를 높이는데 더욱 집중하고 있다”며 “지난 20년간 한국의 게임산업 성장을 지켜본 이용자들이 지금도 게임사들이 출시한 게임을 하고 있고 이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도 “근무 환경의 변화로 스피드있게 게임사업을 진행할 순 없지만 궁극적으로 웰메이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회사 실적에 긍정적”이라며 양보다 질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외에도 모바일이라는 한정된 디바이스를 넘어 PC, 콘솔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려는 시도들이 보이는 등 게임시장 변화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주 52시간 근무제가 게임 개발 및 출시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는 것보다 여러 영향들 중 하나로 보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을 받은 게임사들의 올해 성적표는 어땠을까.

엔씨는 지난달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리니지M’을 출시한지 2년여 만에 모바일 신작 ‘리니지2M’을 출시했다. 현재 양대 마켓에서 리니지M와 함께 매출 1‧2위를 기록하며 선두를 지키고 있다. 

올해 상반기 출시한 신작들이 모두 부진했던 넥슨은 하반기에 출시한 모바일 MMORPG ‘V4’로 매출 5위권 안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올해 6월 출시를 약속한 신작 라인업이 무색할 만큼 넥슨이 하반기 선보인 신작은 V4 한 개 뿐이다. 

라인게임즈는 프로젝트를 공개한 지 1년여 만에 모바일 역할수행게임(RPG) ‘엑소스 히어로즈’를 출시했다. 대작들과 중국 게임들에 밀려 순위권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매출 10~20위권 사이를 오가며 준수한 성적을 유지중이다. 

이들의 상위권 성적에 대해 여러 의견이 많지만 콘텐츠와 그래픽 등에서 오랜 기간 공을 들여왔고 이용자들과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빠른 피드백 반영, 경쟁사와 차별화된 서비스 등 이전과 다른 게임 운영 방식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압도적으로 나온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주 52시간 근무제가 신작 개수 감소에 영향을 준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무궁무진한 변수가 존재하고, 또 생산성 향상 및 저하를 평가하는 기준도 다양한 만큼 김 대표의 발언(‘근로시간 단축이 게임 생산성을 떨어뜨렸다’)은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일반화의 오류이자, 공감하기 어려운 주장으로 판단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를 대표해 자리했던 만큼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반발성 발언이 아닌, 어려운 업계의 현실을 감안해 정책적 뒷받침을 거듭 당부하는 차원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