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라이터·USB 형태 초소형카메라… 업주 “일반인은 촬영 여부 눈치 못 채”
‘변형 카메라법’ 표류… “디지털 성범죄에 악용될 소지 높아 대책 필요” 목소리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몰카 범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몰래카메라들은 ‘합법’으로 판매 중이며 이에 대한 규제는 없다./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은 2018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년 간 공중 화장실에 설치된 불법 촬영용 ‘몰래카메라(이하 몰카)’를 찾기 위한 대대적인 점검을 실시했다. 이어 9월에는 여성가족부와 관할 경찰서 등 관계부처가 합동 단속을 실시한 결과 해수욕장 12명, 서울시 지하철 5명 등 총 17명의 몰카 범죄자를 적발했다.

그러나 이런 단속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몰카 범죄는 최근에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12월 30일 향토사단 소속인 예비군 동대장 A씨는 전라도 광주의 한 행정복지센터 여자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목적으로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다 적발됐다. 아울러 전달인 11월에는 부산의 한 대학병원 전문의가 간호사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다 적발된 일도 있다.

이처럼 몰카 범죄가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발생되자 몰카로 악용될 소지가 높은 초소형 카메라에 대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초소형 카메라의 판매 및 구매가 너무 쉬운데다 이에 대한 별다른 규제 및 대응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 ‘몰카 팝니다’ 적힌 간판 즐비… 판매업자 “사용 목적은 나도 몰라”

지난 7일, 기자는 초소형 카메라를 얼마나 쉽게 구매할 수 있을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 서울의 전자상가 일대 카메라 매장들을 방문했다. 상가 일대에 들어서자 ‘몰래카메라 판매’ 문구가 적힌 간판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카메라 매장에 들어가 판매업자에게 ‘초소형 카메라 모델을 보고 싶다’고 요청하자 판매업자는 다양한 모델을 가져왔다. 업자가 소개한 초소형 카메라는 문구점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볼펜 모양의 카메라부터 자동차 키, 시계, USB, 라이터 등 다양한 모델이 존재했다. 

카메라 판매업자는 “저렴한 볼펜형, 라이터형, 지갑형 등 직접 들고 다니는 것부터 화재경보기형 등 설치형 카메라도 있다”며 “일반인들은 촬영 여부를 알아채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가격대는 천차만별이었다. 가장 저렴한 5만원대 모델부터 3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 모델까지 다양했다. 판매업자는 “고가 모델의 경우 화질이 굉장히 좋고 가벼워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아무래도 ‘안 걸리고’ 촬영하려면 고가 모델이 좋을 것”이라고 흥정하기도 했다.

구매과정도 매우 간단했다. 매장에 방문해 모델을 요청한 뒤 가격을 지불하면 됐다. 일반인들이 쉽게 초소형 카메라를 구매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고객이 초소형 카메라를 구매하는 목적은 알 수 없었다. 주로 어떤 목적으로 고객들이 구매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판매업자는 “알 수 없다”며 “초소형 카메라 자체는 전부 합법 제품만을 판매하고 있으며 사용 목적은 고객의 판단에 달렸다”라고 답했다. 초소형 카메라를 범죄에 사용할 목적으로 구매할 수도 있는 고객들에 대한 대응책은 허술한 것으로 보였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몰래카메라 구매'를 검색한 모습. 수많은 제품들이 판매 중이다./ 구글 캡쳐

인터넷에서 초소형 카메라를 구매하는 것은 더 쉽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몰래카메라 구매’라고 검색하자 수많은 판매 사이트가 나타난다. 원하는 초소형 카메라 모델을 판매하는 홈페이지를 방문한 뒤 일반 전자제품 구매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결제를 하면 구매자에게 택배로 카메라가 배송된다. 

또한 초소형 카메라는 국내 대표 이커머스 업체인 쿠팡, 인터파크, 지마켓 등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이들 이커머스 업체 역시 자동차 키, 라이터형 초소형 카메라와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설치형 카메라 등 전자상가 매장에서 판매 중인 제품들이 그대로 판매 중이다.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보다 저렴한 제품들도 판매 중이다.

◇ 초소형 카메라 규제 ‘전무’… 업계 “과잉규제는 안 돼”

이처럼 온‧오프라인 상에서 초소형 카메라가 쉽게 판매되며 몰카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높이지자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초소형 카메라는 몰카 뿐만 아니라 여러 범죄에서 악용될 가능성이 다분한데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며 “일반인들이 초소형 카메라 구매를 손쉽게 할 수 없도록 이에 대한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 판매 중인 초소형 카메라들은 판매업자들의 말처럼 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서 ‘적합등록’을 받은 제품들이다. 이 때문에 현행법 상 초소형 카메라의 판매를 규제할 방법은 없다. 

지난 2017년 국정감사에서 최명길 전 국회의원(당시 국민의당)이 국립전파연구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정시험기관 적합성평가를 거쳐 과기정통부에서 적합등록된 초소형 카메라는 117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2015년 개인 사생활 침해 및 디지털 성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카메라들을 규제하자는 취지로 장병완 무소속 의원(당시 대안신당 소속)이 ‘변형 카메라법’이 처음 발의했으나 당시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장 의원은 2017년 다시 한 번 ‘변형 카메라법’을 발의했다. 이어 2018년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사한 내용으로 변형 카메라법을 발의했다. 

정부는 2017년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변형 카메라 규제에 적극 나서기로 했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논의가 없는 상태다. 국회에서도 사실상 법안이 방치되며 변형 카메라법에 대한 별도의 공청회도 열리지 않은 상태다. 

도저히 카메라라고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일반 자동차키와 유사한 모습의 초소형 카메라 제품./ 판매 사이트 캡쳐

다만 초소형 카메라 업계 관계자들은 초소형 카메라의 판매 금지 등은 과잉규제가 될 수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초소형 카메라에 판매 자체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범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소형 카메라는 합법적으로 인증 받은 제품들이라 법적 문제는 전혀 없다”며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이유만으로 초소형 카메라 판매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식칼로 식재료를 써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그걸로 남을 위협하면 범죄도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밝혔다. 

사실 초소형 카메라는 의료용(수술), 산업용(미세 기계부품 점검), 방송용(다큐멘터리 촬영) 다양한 방면에서 매우 중요한 장비로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높은 성능을 자랑하는 초소형 카메라들을 악용하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기술 발달에 따라 초소형 카메라의 기능은 크게 향상되면서 이를 범죄에 이용할 시 적발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정책보다는 초소형 카메라의 유통을 통제하는 방향의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초소형 카메라의 사용 목적, 사용자 정보, 사용 장소 등의 확실한 기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변형 카메라 등록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정부는 불법촬영에 이용될 수 있는 변형 카메라의 무분별한 유통을 막기 위해 변형카메라 등록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초소형 카메라 등 변형 카메라의 제조 및 수입, 판매업자 등을 정부에 등록하는 것을 의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