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스페셜뉴스
[2020 시사위크 특별기획] Ⅰ. 어린이 교통안전
[어린이 행복권 톺아보기①] 우리가 떠나보낸 수많은 민식이
2020. 01. 17 by 권정두 기자 swgwon14@sisaweek.com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자,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린이가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린이 삶의 만족도가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어린이 행복권 신장은 우리 사회 화두에서 늘 벗어나 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나 인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는 깊은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시사위크>는 2020년을 맞아 우리 사회 곳곳에 놓여있는 어린이 문제들을 톺아보며 어린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김민식 군의 안타까운 사망에서 비롯된 ‘민식이법’은 지난해 여러 우여곡절과 많은 논란 속에 국회를 통과했다. /뉴시스
김민식 군의 안타까운 사망에서 비롯된 ‘민식이법’은 지난해 여러 우여곡절과 많은 논란 속에 국회를 통과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법안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의 이름을 붙인 ‘민식이법’이다. 초등학교 2학년, 9살이던 김민식 군은 지난해 9월 스쿨존에서 차에 치어 숨졌다. 당시 김민식 군은 동생과 함께 엄마가 일하던 가게에 가는 중이었다.

김민식 군의 안타까운 사연은 온라인과 방송 등을 통해 널리 퍼져나갔고, 스쿨존 안전규정 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져 이른바 ‘민식이법’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민식이법’은 정치권의 정쟁에 밀려 난항을 겪은 끝에야 가까스로 통과됐다. ‘민식이법’은 오는 3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하지만 법안 통과를 전후로 ‘민식이법’을 둘러싼 논란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민식이법’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민식이법’을 향한 반발 중엔 법안의 내용을 둘러싼 것은 물론, 특정한 한 사고로 인해 법을 대폭 강화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른바 ‘감성팔이’에 넘어간 ‘떼법’이란 것이었다. 해당 사고가 사회적 화두로 크게 부각되고, 해당 법안이 피해 어린이의 이름을 따 불리다보니 이러한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럴까. ‘민식이법’은 정말 안타까운 한 사고, 그리고 안타까운 한 사연에 의해 급히 만들어진 법일까.

‘민식이법’에 의해 강화되는 스쿨존, 즉 어린이 보호구역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5년이다. 스쿨존이 필요한 이유는 자명하다. 어린이들은 청소년이나 성인에 비해 주의력이 떨어지고, 돌발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발달 및 성장 정도에 비춰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게다가 어린이는 운전자의 시야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사고 시 더 큰 충격을 받는다.

물론 어린이에 대한 교통안전 교육도 중요하지만 어린이 스스로에게 안전을 맡기는 것은 지나치다. 유엔 아동권리선언은 “아동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하므로 출생 이전부터 아동기를 마칠 때까지 적절한 법적보호를 비롯해 특별한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주목해야할 점은 스쿨존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는 것이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스쿨존 내 교통사고로 사망한 13세 미만 어린이는 19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스쿨존 내 교통사고로 다친 어린이 또한 1,470명이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으로 기간을 넓혀보면, 스쿨존 교통사고 어린이 사망자는 무려 69명이나 발생했다. 한 해 평균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 건수도 541건에 이른다.

즉, 우리 사회엔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김민식 군 이전에도 수많은 김민식 군이 있었다. 어린이 보호구역이란 말이 무색한 수치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로 숨진 어린이는 69명에 달한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로 숨진 어린이는 69명에 달한다.

어린이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스쿨존마저 이렇다보니 우리나라의 어린이 교통사고 관련 통계수치는 대부분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했고, 특히 보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어린이 비율은 가장 높은 수준에 달했다.

이 같은 스쿨존 사고의 원인은 단순히 어린이의 돌발행동과 운전자의 부주의에만 그치지 않는다. 스쿨존에 대한 낮은 인식과 각종 법규 위반, 부족한 인프라 등도 스쿨존 사고의 중요한 근본 원인 중 하나다. 실제 김민식 군 사고의 경우에도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이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한 것이 큰 이유였다.

이러한 실태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민식이법’의 국회 통과를 전후로 한 지난해 12월 경찰청은 전국 스쿨존에서 대대적인 단속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20일 동안 적발된 스쿨존 내 어린이 안전 위협행위는 무려 7만8,382건에 달했다. 이 중 규정속도 위반이 6만8,503건을 차지한다. 각 지자체 별로 실시한 스쿨존 주정차 위반 단속 역시 심각한 실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스쿨존 내 단속카메라 설치율 역시 저조한 수준이다.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안전표지판·신호등·횡단보도·과속방지턱 등 각종 안전 인프라 역시 부족한 곳이 상당하다.

법규 강화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과거 발자취가 증명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교통안전 실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심각했다. 해마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1만 명을 넘길 정도였다. 그랬던 것이 지난해에는 3,781명으로 감소했다. 여기엔 각종 법규 강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는 안전띠를 매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결코 잊지 말아야할 것은 ‘민식이법’이 그저 김민식 군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김민식 군을 안타깝게 떠나보냈고, 또 다른 김민식 군이 발생할 위험도 여전히 높다. 이는 비단 김민식 군과 그 가족, 그리고 또 다른 피해 어린이와 가족만의 비극이 아니다. 어린이가 안전하지 않은 어린이 보호구역은 이제 끝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