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시사위크 특별기획] Ⅰ.어린이 교통안전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자,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린이가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린이 삶의 만족도가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어린이 행복권 신장은 우리 사회 화두에서 늘 벗어나 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나 인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는 깊은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시사위크>는 2020년을 맞아 우리 사회 곳곳에 놓여있는 어린이 문제들을 톺아보며 어린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강력한 어린이 교통안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강력한 어린이 교통안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앞서 살펴봤듯,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민식이법’은 여러 논란으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하지만 해외 사례들을 보면, ‘민식이법’ 이후에도 우리의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미국이다. 미국에서 노란색 스쿨버스가 멈추고, 승하차를 의미하는 ‘STOP’ 표지판이 펼쳐지면 그 일대의 차량들은 모두 일제히 멈춰야 한다. 진행방향이 같은 도로의 차량은 차선과 무관하게 정지해야 하고, 반대편 도로 역시 분리대 있는 경우 정도만 제외하고 멈춰야 한다. 승하차가 모두 끝나고 ‘STOP’ 표지판이 접혀진 뒤 스쿨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다른 차량들도 다시 운행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수십만원대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스쿨버스에 단속카메라가 달려 있어 단속을 피할 여지도 없다. 스쿨존 속도규정을 어겨도 벌금이 기본 수십만원대다. 때문에 미국 운전자들에게 스쿨존과 스쿨버스는 가장 유의해야할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법규와 처벌규정 모두 우리나라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 역시 스쿨존 내 법규위반 시 강력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스쿨존 내 속도위반이나 불법주정차 등에 대한 처벌규정이 일반도로와 비교해 ‘강력하다’고 보긴 어렵다.

주요 선진국들이 구축해놓은 교통안전 인프라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대표적인 것이 네덜란드의 ‘본엘프’다.

‘본엘프’의 탄생은 우리의 ‘민식이법’과 닮아있다. 급속한 산업화로 차량 통행이 늘고, 어린이 교통사고 또한 증가하자 1972년 피해 어린이 부모들은 ‘Stop de Kindermoord(아동 살해를 중단하라)’라는 재단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들의 강력한 요구로 1976년 ‘본엘프’ 법안이 도입됐다.

‘본엘프’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보행자들은 단순히 보행 뿐 아니라 모든 행위를 위해 도로의 가장자리는 물론 전체를 사용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도로의 주인은 보행자인 셈이다. 이곳을 지나는 차량들의 속도는 시속 15km로 제한된다. 이마저도 처음엔 ‘도보수준’으로만 제시됐던 수치가 2013년 네덜란드 대법원 판단에 의해 명시화됐다. 마지막으로 주차는 정해진 곳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애초에 차량에게 주어진 도로의 폭이 넓지 않아 불법주차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단순히 어린이 뿐 아니라 보행자 모두를 보호하는 것으로, 뛰어난 효과를 나타냈다. 이에 유럽 내 다른 국가들도 ‘본엘프’를 벤치마킹해 보행친화적 도로를 구축했다. 실제 보행친화적 도로를 구현하고 있는 국가들은 보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어린이 비율이 극히 낮다. 네덜란드의 경우 늘 상위 1~2위를 다툰다. 스쿨존 문제 뿐 아니라 보행자 교통사고가 주요 당면과제인 우리에게도 ‘본엘프’가 훌륭한 벤치마킹 사례로 떠오르는 이유다.

이들 국가들이 ‘민식이법’은 명함도 내밀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법규와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던 근간은 다른 무엇보다 어린이 안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은 데 있다. 어린이가 단 한명이라도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크고 작은 불편함은 물론 강력한 처벌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주목해야할 것은 이들 국가들이 어린이 삶 만족도에 있어서도 높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 삶 만족도가 OECD 최하위 수준인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어린이 행복권을 신장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어린이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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