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공포가 확산된 가운데,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에 예방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
우한 폐렴 공포가 확산된 가운데,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에 예방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일명 ‘우한 폐렴’의 공포가 국내에서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배달의민족과 대한항공 두 노조의 행보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반응 역시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 근거 없는 요구에 혐오까지 드러낸 배민 노조

배달앱 배달의민족 배달노동자로 구성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배민라이더스지회(이하 배민 노조)는 지난 28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측에 한 통의 공문을 보냈다.

‘우한 폐렴 관련 협조의 건’이란 제목의 이 공문에서 배민 노조는 “우한 폐렴이 확산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을 접촉할 수밖에 없는 배달노동자의 특성에 따라 불안감과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요청사항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국내에서도 우한 폐렴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이에 따른 공포 또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특정 다수를 접촉해야 하는 업무 특성을 고려한 배민 노조의 우려는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하지만 배민 노조는 이 같은 요구로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그 이유는 배민 노조의 구체적 요청 내용에 있다. 배민 노조는 2가지 요청사항으로 먼저 우한 폐렴 위험이 안정화될 때까지 안전마스크 지급을 요구했다. 문제가 된 것은 그 다음이다. 배민 노조는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 및 중국인 밀집지역(유명관광지, 거주지역, 방문지역 등)에 대해 배달금지 또는 위험수당 지급을 요구했다.

이를 두고 배민 노조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 차원의 조치도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합리적 근거가 없이 막연한 공포에 기댄 요구라는 지적이었다. 특히 중국인 밀집지역을 콕 집어 언급한 것을 두고 중국인 혐오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실제 감염병 유행으로 특정 지역에 대해 음식배달을 중단한 사례는 지금껏 없으며, 어떠한 법적 근거나 국제기구 및 정부 차원의 지침도 없다. 확진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중국에서도 사태가 촉발되고 가장 심각한 우한만 봉쇄됐을 뿐 다른 지역은 이동 등이 자유롭다. WHO(국제보건기구)가 ‘국제 공중보건 위기상황’을 선언하더라도 확진자가 아닌 사람 간의 이동을 원천 금지하지는 못한다. 우한 폐렴 사태는 아직 ‘국제 공중보건 위기상황’이 선포되지 않았으며, 국내에서는 지역 내 2차 감염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다.

배민 노조의 이러한 요구에 우아한형제들 측은 배달노동자에 대한 손 소독제 및 마스크 지급, 예방수직 공지 및 문자발송,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수칙 배포 등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국인 밀집지역 등 특정지역에 대한 배달금지 및 위험수당 지급 요구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만약 정부 차원의 관련 지침이 나올 경우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회사 차원에서 특정지역에 대한 배달을 금지시킬 경우 계약위반, 지역차별 등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우아한형제들 측 입장이다.

논란이 커지자 배민 노조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성명서를 통해 공개 사과했다. 서비스연맹은 “공문 내용 중 매우 부적절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 있었으며 가맹조직의 혐오 표현에 대해 당 연맹은 중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상처 입은 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면서 “담당자에 대해 주의 조치하고 인권감수성 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 막연한 공포감이 우리 안의 연대를 해치는 혐오로 발전되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한 노동계 관계자는 “노조 역시 우리 사회에서 각종 혐오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신중하지 못한 요구를 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우한 전세기 투입 준비에 한창이다. /뉴시스
대한항공이 우한 전세기 투입 준비에 한창이다. /뉴시스

◇ 감염 위험 무릅쓴 대한항공 노조 간부들

비슷한 시기, 대한항공 노조의 행보는 배민노조가 일으킨 논란과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대한항공은 최근 정부의 전격적인 결정과 요청에 따라 우한 전세기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전세기는 오는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하루 2편씩 총 4편이 투입될 예정이며, 700여명의 교민을 한국으로 데려오게 된다.

전세기 탑승객들은 탑승 전 1차 검역을 거치게 되며 발열 등 의심증상이 발견된 이들은 탑승할 수 없다. 또한 잠복기 가능성을 고려해 기내 자리가 띄엄띄엄 배치되며, 기내에서 증상이 나타날 경우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 등으로 이동하게 된다. 국내에 들어온 뒤에는 별도의 시설에서 2주간 격리생활을 할 예정이다.

해외에서 발생한 감염병으로 인해 전세기를 투입해 우리 교민을 귀국시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현재 우한 지역에서는 확진자 및 사망자가 하루하루 급격히 늘고 있고, 귀국 인원 또한 대규모다.

그런 만큼 여러 우려도 제기됐다. 그 중 하나가 전세기에 투입될 기장 및 승무원의 감염 위험 문제였다. 유증상자는 탑승할 수 없지만 잠복기인 탑승객이 있을 수 있고, 밀폐된 공간에서 2시간 반 가량 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기장 및 승무원을 어떻게 선발해 투입할지가 문제로 대두됐다. 전세기 투입을 강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반발이 제기될 경우 논란이 일파만파 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한항공 노조는 이 같은 우려를 보기 좋게 깼다. 대한항공 노조는 지난 28일 노조 간부들이 우한 전세기 투입에 자원 탑승한다고 밝혔다. 노조 객실지부 간부인 객실지부장과 객실사무차장, 대의원들이 위험과 불편을 무릅쓰고 자원했다. 이들 역시 우한 전세기 비행 이후 일정 기간 격리 생황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베테랑 노조 간부들이 자원하면서 우한 전세기는 큰 고비를 넘어 투입만 앞두게 됐다. 경험이 풍부한 만큼, 기내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보다 안정적인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막연한 공포에 기반해 혐오를 드러낸 배민노조와 실제 위험에도 불구하고 희생정신을 앞세운 대한항공 노조의 모습은 우한 폐렴 사태 속에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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