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원 기업은행장이 29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기업은행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이 노사 갈등을 풀고 공식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노조의 반대에 막혀 출근은 물론, 취임식조차 하지 못했던 윤 행장은 설 연휴 마지막 날 노조와 극적 합의에 성공했다. 임명 27일만에야 본점 문턱을 넘고 그는 기업은행장으로서 제대로 된 첫발을 떼게 됐다.  

◇ 출근저지 투쟁 종료… 임명 27일만에 취임식 

윤종원 행장은 29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윤 행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IBK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초일류 금융그룹으로 만들어 가겠다”며 “‘혁신금융’과 ‘바른 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 위한 혁신 기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윤 행장은 “우리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변혁을 겪고 있다”며 “저성장 저금리 등 세계 경제 지평이 달라지고 있고 산업 구조, 일자리 등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뱅킹은 필요하지만 뱅크는 필요없다’는 빌 게이츠의 말처럼 변화를 거부하는 은행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혁신을 강조했다. 

또 윤 행장은 “우리 스스로 혁신적으로 변화해서 중소기업의 다양한 금융수요에 부응해야 한다”며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에게 모험자본을 충분히 공급하고, 성장단계별로 맞춤형 지원체계를 갖추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하는 시스템 개편과 지식재산권 등 동산 담보와 일괄담보제도의 선도 작업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윤 행장은 ‘혁신금융’과 ‘바른경영’을 위한 조건으로 신뢰, 실력, 사람, 시스템 등 네 가지 요소를 강조했다. 그는 “먼저 고객중심의 업무방식과 조직문화로 신뢰받는 은행이 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실력의 원천이 사람인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와 직원들의 역량 강화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를 통해 의사 결정의 속도를 높이고 유연한 조직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조직과의 소통 의지도 분명히 했다. 윤 행장은 “최상의 팀워크를 발휘하려면, 저부터 몸을 낮추고 소통하고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임직원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고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하겠다. 노동조합과도 항상 대화하면서 성숙한 관계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부족한 것이 많지만 은행의 발전과 직원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윤 행장은 이번 취임식을 맞이하기까지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노조가 낙하산 논란을 제기하면서 그를 대상으로 출근 저지 투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윤 행장은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서기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등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현 정부에선 2018년 6월부터 1년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을 지낸 바 있다. 은행 현장에서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관료 출신이라는 이력이 노조의 반발을 불렸다. 기업은행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은 그가 임명된 후 20일 넘게 이어지면서 우려를 키웠다. 

◇ 내부 결속·경쟁력 제고·노사합의문 이행 숙제 부각 

설 연휴 기간 막바지쯤 대치 상황이 전환점을 맞았다. 윤 행장은 설 연휴 기간인 지난 27일 당정의 적극적인 중재로 기업은행 노조와 합의점을 도출했다. 

기업은행 노조가 공개한 노사공동 선언문에 따르면 노사는 △희망퇴직 문제 조기 해결 △정규직 전환 직원의 정원통합 △노조추천이사제 △임원 선임 절차의 공정성 개선 △노조 대화 없는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 금지 △인병 휴직(휴가) 확대 추진을 합의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행 노조가 28일자로 출근저지 투쟁을 종료했다. 노사 합의를 기점으로 윤 행장에 대한 노조의 태도는 전향적으로 돌아섰다.  

이날 취임식에선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 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윤 행장과 우리는 이제는 한 배를 타고 가는 동반자가 됐다”며 “혁신을 이끄는 행장을 되길 바란다”고 말햇다. 윤 행장의 혁신 경영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윤종원 행장은 29일 취임사를 통해 “IBK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초일류 금융그룹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윤 행장은 취임식이 끝나고 열린 기자단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취임 소감을 전했다. 윤 행장은 “은행 경영이 지연돼 마음이 무거웠다”면서 “비온 뒤 땅이 굳듯 처음의 어려움이 앞으로 더 잘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오늘부터 당장 본격적인 업무에 뛰어들었다. 노조와의 갈등으로 그간 공식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만큼, 기업은행 내에 각종 경영 의사 결정은 지연된 상황이다. 정기인사는 물론, 경영 목표 설정 등 각종 일정이 차질을 빚었다. 이에 흐트러진 조직을 서둘러 수습하고 미뤄뒀던 시급 현안을 처리하는 게 우선 과제가 될 전망이다. 

노사 합의서 내용을 어떻게 추진할지도 관건이다. ‘노조추천이사제’와 ’희망퇴직’ 추진 과정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이사회 사외이사로 참여시키는 것을 일컫는 제도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인 ‘노동이사제’와 비슷한 맥락의 제도로 평가된다. 

노조추천이사제는 금융권 노조가 꾸준히 추진을 해왔지만 좀처럼 결실을 보지 못했다. 노조의 과도한 경영 개입 우려 등의 이유로 번번이 좌초됐다. 지난해 초 기업은행 노조도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하려다 금융위의 반대에 부딪혀 불발된 바 있다. 국민은행과 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노조도 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희망퇴직 문제도 쉽게 결론을 내리긴 어려운 이슈다. 희망퇴직은 정부 및 유관기관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그간 국책은행들은 희망퇴직을 도입을 주장해왔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이에 윤 행장은 이 문제에 대해서 조심스런 입장을 전했다. 윤 행장은 이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요술 방망이를 들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이 부분에 대한 다른 관련 기관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 기관과 형평성 문제도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특수성이 경쟁하는 기관과 차이가 있으니 이 같은 부분에 대해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최대한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힘겹게 기업은행에 입성한 윤 행장이 은행의 혁신을 이끌 리더십이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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