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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기생충’의 마침표, 끝 아닌 시작
2020. 02. 19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및 출연 배우, 제작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및 출연 배우, 제작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기생충’ 주역들은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만의 새로운 페이지를 연다. 이들의 마침표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영화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다.

한국영화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 한국영화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특정 장르의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허를 찌르는 상상력에서 나온 새로운 이야기로 국내 개봉 이후 16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고, 언론 및 평단은 물론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개봉 53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또 북미 개봉과 함께 연출‧각본‧연기‧미장센 등 영화 속 모든 요소들이 주목받으며 팬덤을 양산하는 등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8월부터 약 6개월간 이어진 아카데미 캠페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기생충’ 주역들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행사에는 봉준호 감독과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 배우 송강호‧이선균‧조여정‧박소담‧이정은‧장혜진‧박명훈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왼쪽부터) 송강호와 봉준호, 곽신애 대표. /뉴시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왼쪽부터) 송강호와 봉준호, 곽신애 대표. /뉴시스

-기념비적인 성과를 얻고 귀국했다. 소감이 어떤가.
봉준호 감독 “제작보고회를 한지 1년이 돼가고 있다.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갖고 세계 이곳저곳에 다니다가 마침내 이곳에 다시 오개 돼서 기분이 묘하다.”

송강호 “처음 겪어보는 과정이었다. 영광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기생충’을 통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에게 뛰어난 한국영화의 모습을 선보이고, 좋은 성과와 함께 이렇게 돌아와 인사드리게 돼서 너무 기쁘다.”

곽신애 대표 “성원해주고 축하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처음 (아카데미에) 가서 무려 작품상까지 받아오게 됐다. 작품상은 어떤 한 개인이 아니라 이 작품에 참여하고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모든 분들에게 영광과 기쁨이 되는 상이다. 그런 상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게 돼서 기쁘다.”

조여정 “작품이 인정을 받으면, 보통은 영화를 만든 우리끼리의 기쁨이나 만족에서 끝나는 것 같은데, 온 국민이 다 기뻐해주시고 축하해주시니까 굉장히 큰일을 해낸 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이하준 미술감독 “스태프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항상 영화 뒤편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함께 항상 고생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미술감독조합상(ADG)에서 미술상을 받았을 때 잘해서 주는 상이 아니라 더 잘할 수 있도록 주는 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오는 내내 나만의 숙제를 갖고 돌아온 것 같아 뿌듯했다.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감사하다.”

-트로피는 어떻게 배분할 계획인가.
곽신애 대표 “네 개를 수상했고, 두 명이 노미네이션 돼서 총 여섯 개의 트로피를 받았다. 트로피마다 영화제에서 정해놓은 수상자가 있고, 이름이 쓰여있다. 그래서 그 이름의 주인공이 트로피를 갖고 가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좋은 취지의 상황이나 기회가 있다면 전시하거나 보여드릴 수 있겠지만, 일단은 주인이 갖고 갔다. 수상한 네 개의 트로피는 한진원 작가에게 한 개가 있고, 국제장편영화상 트로피와 작품상 중에 내 이름이 앞에 있는 것까지 두 개가 사무실에 있고 나머지는 봉준호 감독님이 갖고 있다.”

-아카데미 무대에 오른 순간 기분이 어땠나.
이선균 “벅참을 느꼈다.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게 너무 좋았고 눈물이 났다. 우리가 도전을 했고, 선을 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네 개의 부문에서 상을 받고 보니 아카데미가 큰 선을 넘은 것 같더라. 편견 없이 ‘기생충‘을 응원해주고 좋아해 준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감사하다.”

송강호 “봉준호 감독 바로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계속 내 얼굴이 나왔다. 자세히 보면 굉장히 자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칸에서 내가 너무 과도하게 기뻐하는 바람에 봉준호 감독의 갈비뼈에 실금이 갔었다. 이번에는 얼굴 위주로 만졌다. 어떨 때는 뺨을 때리기도 하고 뒷목을 잡기도 하고 갈비뼈만 피해가자는 생각으로 자제했던 기억이 난다.”

‘기생충’의 이하준 미술감독(왼쪽)과 양진모 편집감독. /뉴시스
‘기생충’의 이하준 미술감독(왼쪽)과 양진모 편집감독. /뉴시스

-미술상과 편집상도 후보에 올랐는데, 수상소감을 준비했나. 이 자리에서라도 전한다면. 
이하준 미술감독 “준비했다. ADG에서 상을 받고 너무 떨어서 말을 다 못하고 왔다. 그래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수상소감을 빼곡히 적어놨었다. 내가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 언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더라. 그래서 가장 먼저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선배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배우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라고 서두에 써놨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에게 영광을 바치겠다고 준비했다.”

양진모 편집감독 “당시 이하준 미술감독에게 소감을 준비하면 부정 탈 것 같으니 준비하지 말자고 했었다. 그래서 저는 준비를 안했는데 결과적으로 받질 못하게 됐다.”

-‘기생충’을 통해 ‘아카데미 캠페인’ 과정이 국내에도 알려졌는데, 직접 경험한 소감은. 
봉준호 감독 “후보에 오른 모든 영화들이 캠페인을 열심히 한다. 우리는 거대 스튜디오나 회사들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예산이었다. 대신 열정으로 뛰었다. 나와 송강호 선배가 코피를 흘릴 일이 많았다는 거다. 열정으로 메꿨다. 정확하게 세워보진 않았지만, 인터뷰도 600개 이상했고, 관객과의 대화도 100회 이상했다. 다른 경쟁작은 거대 광고판을 통해 홍보도 하고 물량공세를 했다면 우리는 아이디어와 똘똘 뭉친 팀워크로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한때는 왜 이렇게까지 시간과 예산을 들여서 캠페인을 하는지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는데, 반대로 작품을 깊이 있게 밀도 있게 검증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더라. 오랜 전통을 가진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두고 ‘로컬(local)’이라고 표현한 것도 봉준호 감독의 계획이 아니었냐는 분석도 있는데.
봉준호 감독 “처음 캠페인 하는 와중에 무슨 도발씩이나 하겠나. 영화제 성격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베니스나 칸은 국제영화제 성격이고 오스카는 미국적이지 않냐’고 말했던 것이 트위터를 통해 퍼진 것 같다. 대화 중 자연스럽게 나온 것뿐,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하”

-‘괴물’ ‘옥자’ ‘설국열차’ 등 그동안 빈부격차를 다룬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였는데, ‘기생충’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끈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봉준호 감독 “‘괴물’은 괴물이 한강을 뛰어다녔고, ‘설국열차’는 미래의 기차가 나온다. SF적 요소를 갖고 있는데, ‘기생충’은 그런 게 없다. 동시대의 이야기이고 우리 이웃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다.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것이 폭발력을 갖게 된 이유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패러디될 정도로 수상소감도 화제였는데.
봉준호 감독 “(수상소감을 패러디한) 유세윤과 문세윤은 정말 천재적인 것 같다. 존경한다. 최고의 엔터테이너다. 오늘 아침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편지를 보냈다. 굉장히 영광이었다. 개인적으로 받은 편지이기 때문에 내용을 말하는 건 실례지만, 마지막 문장에 그동안 수고했고, 이제 좀 쉬라고 하더라. 대신 조금만 쉬라고 하더라. 본인도 그렇고 다들 차기작을 기다리니 조금만 쉬라고 편지를 보내주셨다. 되게 감사하고 기뻤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남긴 봉준호 감독. /뉴시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남긴 봉준호 감독. /뉴시스

-번아웃증후군이 올 것 같다. 어떻게 극복할 예정인가. 
봉준호 감독 “2017년 ‘옥자’ 끝났을 때 이미 번아웃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기생충’이 너무 찍고 싶어서 없는 기세를 영혼까지 긁어모아 작품을 만들었다. 촬영 기간보다 더 긴 캠페인을 소화했고,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마음도 편안해지면서 마침내 끝이 나는구나 싶은 마음이다. 곽신애 대표와 2015년 초부터 준비를 했다. 긴 세월인데 행복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 기쁘다. 나는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인 건 사실이다. 일을 많이 했다. 쉬어볼까 싶은 생각도 있는데, 스코세이지 감독님이 쉬지 말라고 해서.(웃음)”

-흑백판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 의도로 기획했나.
봉준호 감독 “‘마더’ 때도 흑백버전을 만들었다. 거창한 의도보다 고전영화나 클래식 영화들에 대한 동경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들이 흑백이던 시절도 있었지 않나. 내가 만약 1930년대에 살고 있고 그때 이 영화를 찍었다면 어떤 느낌일지 호기심이 있었다.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흑백버전을 상영했는데, 되게 묘하더라. 똑같은 영화인데 다른 느낌들이 있었다. 미리 선입견을 갖게 하고 싶지 않지만, 한 관객이 흑백으로 보니 화면에서 더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하더라. 또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이나 디테일한 뉘앙스들을 훨씬 더 느낄 수 있다. 그 외에도 다른 느낌들이 있지만, 내가 나열을 하는 것 보다 직접 보면서 느끼면 더 재밌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 방송국 HBO에서 드라마로도 재탄생되는데, 진행 상황은. 
봉준호 감독 “나는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감독은 차차 찾게 될 거다. 영화 ‘빅쇼트’ ‘바이스’ 아담 맥케이 감독이 작가 겸 감독으로 참여해서 몇 차례 만나 얘기를 나눴다. 애초에 갖고 있는 주제의식,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를 블랙코미디 또는 범죄드라마 형식으로 더 깊게 파고들어가게 될 것 같다. 시즌으로 길게 가는 것이 아니라 5~6부작의 완성도 높은 TV 시리즈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틸다 스윈튼과 마크 러팔로에 대한 언급이 기사로 나왔는데, 공식적인 사안은 전혀 아니다. 이야기의 방향과 구조를 논의하고 있는 시작 단계다. 올해 5월 ‘설국열차’도 미국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는데, 그것도 2014년부터 준비해서 5년이 흐른 후 방송되는 걸 보면 ‘기생충’도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준비를 잘 해야 한다. 순조롭게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 인사를 전하자면.
봉준호 감독 “영화사적 사건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지만,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멋지고 아름다운 한순간의 연기와 우리 스태프들이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낸 장면 하나하나, 그 장면에 들어가 있는 나의 고민들까지 영화 자체로 많은 분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송강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인용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 나는 배우이다 보니 가장 창의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정진하는 모습이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오늘이 마지막 자리라고 하는데, 지난해 제작보고회가 끝나고 칸에 가서 그런지 오늘도 칸에 가야 할 것 같다.(웃음)”

이선균 “멋지고 아름다운 패키지여행이 오늘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 지난해 한국영화 100주년이었는데 칸으로 마무리를 짓고, 올해 또 아카데미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 같다. 시의적절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함께해서 영광이었다. 이 결과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의 큰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