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아카데미 영화상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및 출연진 격려 오찬에 참석해 봉준호 감독의 발언을 들으며 웃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아카데미 영화상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및 출연진 격려 오찬에 참석해 봉준호 감독의 발언을 들으며 웃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영화산업의 융성을 위해서 확실히 지원하겠다. 그러나 간섭은 절대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영화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했다. 위 발언은 문 대통령이 밝힌 것으로, 봉준호 감독이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발언에 참석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 등 제작진·배우 20여명을 초청한 오찬 자리에서 “우리 영화 100년사에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는 것도 아주 자랑스럽고, 또 오스카도 새로운 역사를 쓰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주 자랑스럽다”면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아주 큰 자부심이 됐고, 많은 용기를 줘서 특별히 감사를 드린다”고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오스카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최고의 영화제이지만 우리 봉 감독이 핵심을 찔렀다시피 로컬 영화제라는 그런 비판이 있어왔다”면서 “영화가 워낙 빼어나고 우리 봉 감독의 역량이 워낙 탁월했기 때문에 비영어권 영화라는 장벽을 무너뜨리고 최고의 영화,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 아주 특별히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기생충’에서 드러난 빈부격차, 불평등 문제 등 사회의식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문 대통령은 “세계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불평등이 하도 견고해져서 마치 새로운 계급처럼 느껴질 정도”라며 “그런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을 최고의 국정목표로 삼고 있는데, 그게 반대도 많이 있고 속시원하게 금방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매우 애가 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또 문 대통령은 “아직까지 우리 문화예술 산업 분야가 저변이 아주 풍부하다거나 또는 두텁다거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문화예술계도 ‘기생충’ 영화가 보여준 것과 같은 어떤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고, 특히 영화 제작 현장에서나 또는 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 이런 유통구조에 있어서도 여전히 불평등한 요소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화 산업에 있어서도 똑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표준근로(계약) 시간제, 주 52시간 등이 지켜지도록 봉 감독과 제작사가 솔선수범해서 준수했는데 그 점에 경의를 표한다”며 “영화 제작 작업이 늘 단속적이기 때문에 일이 없는 기간 동안에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복지가 또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영화 유통구조에서도 스크린 독과점을 막을 스크린 상한제가 빨리 도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한마디로 영화 산업의 융성을 위해서 영화 아카데미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린다거나 하여튼 확실히 지원하겠다”며 간섭은 절대 없을 것이라 밝혀 참석자들의 웃음을 불러왔다. 전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에 오른 봉 감독이 참석자로 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아카데미 영화상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및 출연진 격려 오찬 사전 환담을 끝내고 오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아카데미 영화상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및 출연진 격려 오찬 사전 환담을 끝내고 오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이날 오찬에는 영화에서 등장해 화제를 모은 ‘짜파구리’가 올랐다. 짜파게티와 너구리 라면을 각각 하나씩 넣고 스프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매콤한 짜장라면인 짜파구리가 된다. 영화에서는 호화스러움의 끝을 보여주는 소고기 채끝살을 넣은 짜파구리가 등장한다. 

문 대통령은 “전문적인 분들이 준비한 메뉴 외에도 제 아내가 우리 봉 감독을 비롯해 여러분들에게 헌정하는 짜파구리가 맛보기로 포함돼 있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 다음에는 봉 감독이 모두발언을 이어갔다. 

봉 감독은 문 대통령이 7분간 인사말을 한 것에 대해 “일단 지금 바로 옆에서 대통령님 길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며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며 “저나 송강호씨나 최우식씨 모두 ‘한 스피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인데 작품 축하부터 한국 대중문화,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언급을 거쳐 짜파구리에 이르기까지 말씀하신 게 거의 시나리오 두 페이지 분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암기하신 것 같지는 않고 평소에 체화된 어떤 이슈에 대한 주제의식이 있어서 풀어내신 것 같은데, 대사를 많이 외우는 미국 배우들조차 프롬프터 보면서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신거냐”고 반문해 또 한 번 좌중의 웃음을 불러왔다.

배우 송강호씨도 “(제작진과 배우가) 모두 모인 게 오랜만이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대장정의 마무리를 짓는 게 특별하다”면서 “뜻깊은 자리가 된 것 같아 더 뭉클한 감동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송 배우는 문 대통령 내외에게 봉 감독의 기생충 각본집과 스토리보드 북을 선물했다. 송 배우와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8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기 전 송 배우와 환담을 나눴고, 그 이전인 2014년에도 영화 ‘변호인’ 상영회로 인해 만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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