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이기자의 줌인
[인터뷰] ‘야잘못’ 박은빈이 여성운영팀장 되기까지
2020. 02. 26 by 이민지 기자 sisaweek@daum.net
배우 박은빈이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이세영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인생 캐릭터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 나무엑터스 제공
배우 박은빈이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이세영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인생 캐릭터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 나무엑터스 제공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일은 그만큼 배우의 역량이 더 필요한 일이기에 까다롭고도 수고스러운 작업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열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배우의 자질을 다시금 인정받는 일이나 다름없다. ‘스토브리그’ 속 최연소 여성 운영팀장 이세영 역이 바로 그런 역할이 아닐까. 박은빈의 ‘인생 캐릭터’가 유독 값진 이유다.

지난 14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연출 정동윤, 극본 이신화)는 팬들의 눈물마저 마른 꼴찌팀에 새로 부임한 백승수(남궁민 분) 단장이 남다른 시즌을 준비하는 뜨거운 겨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프로야구 프런트 시선에서 쓰여진 ‘스토브리그’는 탄탄한 스토리와 박진감 넘치는 연출로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선사, 스포츠 드라마가 갖는 선입견을 깼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에 ‘스토브리그’는 시청률 5.5%(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 최종회 시청률 19.1%가 되기까지 끊임없는 성장세를 보이며 시청자들의 관심도와 화제성을 입증했다.

무엇보다도 ‘스토브리그’는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야구계에서 볼 수 없었던 최연소 여성 운영 팀장 이세영 캐릭터를 작품 중심에 배치, 박은빈은 선례 없는 캐릭터 이세영을 이질감 없이 표현하며 자신의 진가를 다시금 빛냈다.

캐릭터와 하나 된 연기력을 선보임에 따라 평소에도 ‘야잘알’(야구를 잘 아는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심심찮게 들려왔던 바다. 25일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박은빈은 예상외로 ‘야잘못’(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음을 고백, “프런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0부터 시작했다”고 말하며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스토브리그’가 끝난 지 열흘 정도 지났는데, 그동안 뭐하고 지냈나.
“‘스토브리그’에 집중하는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속도를 따라잡으면서 하고 있었다. 또 드라마 촬영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었는데, 떨어졌던 체력과 면역력을 보충하고자 열심히 살을 찌우고 있는 중이다.”

- 원래 야구를 좋아하는 편인가.
“사실 잘 몰랐다. 야구 규칙만 아는 정도였다. 큰 대회가 있을 때, 국민 모두가 야구를 볼 때 정도만 봤는데 이번에 야구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야구계에 입문한 느낌이랄까.

이 작품을 준비하기 전에 야구 직관을 했는데, 야구의 매력이 뭔지를 알겠더라. 방송으로 봤을 때랑 달리, 현장에서 팬들의 기운을 느끼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일상의 좋은 환기가 될 수 있는 이벤트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시즌에도 좀 더 세상이 안정화가 된다면 직관을 하러 갈 것 같다.(미소)”
 

최연소 여성운영팀장 이세영 역을 안정적으로 소화해낸 박은빈 / SBS '스토브리그' 방송화면
최연소 여성운영팀장 이세영 역을 안정적으로 소화해낸 박은빈 / SBS '스토브리그' 방송화면

- 야구계 여성운영팀장이 실존할 법하지만 없다. 캐릭터 준비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했나.
“야구를 몰랐던 만큼 야구 뒷세계는 더더욱 몰랐었다. 프런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0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다행히 SK 와이번스 프런트님들이 ‘우린 이런 일을 합니다’라고 도움을 많이 주셨다. 또 인터넷이 잘 발달돼 있지 않나. 세영 같은 경우는 경기기록원부터 시작해 프런트로 입사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야구협회 사이트에 게재된 경기기록원의 자질 같은 게시물을 보고 참조를 했었다. 여성운영팀장이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참조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은 고된 작업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던 부분에선 자유로웠던 것 같다.”

- 이번 작품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호평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소감이 어떤가.
“인생 캐릭터라고 (평가)해주시는 것 자체가 저에게 좋은 기회였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했다. 배우로서도 인생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게 뜻깊은 기회인 것 같아 좋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다음 행보로 어떤 캐릭터들을 맡아야될지 개인적으로 더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이 있다. 다른 면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 조금 더 고민해보도록 하겠다.”

- 이세영 캐릭터를 보고 일부 시청자들은 여성운영팀장에 도전하고 싶다는 반응도 보이더라. 이런 반응을 봤나.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는 분들의 메시지를 보고 정말 기뻤다. 매체가 줄 수 있는 영향력이 좋은 방향으로 향하면 좋은 일이지 않나. 제가 이 캐릭터를 쓴 건 아니지만, 작가님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 이상으로 담아내려고 고민했던 부분들이 그분들에게 닿았는지 ‘이세영 팀장의 열정을 보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이야기해주시는 걸 들으면서 제가 이세영으로 살아온 6개월이 누군가의 진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보람찬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제가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세영 운영팀장 같은 사람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보다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0부터 시작해 여성운영팀장 캐릭터를 만들어낸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0부터 시작해 여성운영팀장 캐릭터를 만들어낸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 이세영 캐릭터 설정을 본인이 생각해 덧입혔거나, 본인의 애드리브로 만들어낸 장면이 있나.
“이 캐릭터가 순수한 열정을 지녔기 때문에 강인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봤다. 다른 캐릭터처럼 속내를 숨기는 것도 없고 감정의 역동을 다 드러낼 수 있는 용감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설정들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각도에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일단 남자들이 많은 세계에서 운영팀장이 되기까지 많은 역경을 거쳐왔을 것 같아, 입이 거칠지만 무례하지는 않게 보이기 위해 스스로 적정선을 지키려 노력한 부분이 있었다. 운영팀장으로서의 자아가 많이 보여지긴 했지만, 미숙 엄마(윤복인 분)와 있을 땐 딸로 보일 수 있게 노력을 많이 했다. 또 세영이 다른 인물들과 접촉이 제일 많은 캐릭터였다. (캐릭터들과의) 관계성에서 상호작용이 잘 이뤄지면 캐릭터나 드라마의 호감도와 친밀도가 높아질 것 같아 (인물들과의 만남마다) 어떤 모습을 보여드리고 태도를 달리할지 설정을 정했었다.“
 

- 러브라인이 없는 것에 아쉬움은 없었나.
“러브라인을 위해 가끔 필요없는 장면들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 않나. 우리 드라마는 그런 장면까지 넣기엔 너무 할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또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 캐릭터들을 조명하는데도 충분히 시간이 모자란다고 느꼈다. 그런 면에서 러브라인을 과감히 생략하고 가는 부분들은 ‘오피스 드라마’라는 작품 설정에 어울린 선택이었던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 선수들과 프런트들의 촬영 분위기가 달랐나.
“전지훈련 때 회식했던 장면과 마지막 락커룸에 있을 때 다 같이 모였는데, (분위기가) 달랐던 것 같다. 서로 함께 한 시간이 있지 않나. 프런트들은 회의실에서 전우애가 쌓인 게 있고, 선수들은 야구하는 장면들을 위해 실제 훈련하면서 쌓아온 경험들이 있어서 선수들은 왁자지껄하고 농담하고 즐거워보였다. 제가 프런트에 속해있어 선수들의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전지훈련 장면에서는 그 수많은 사람 속에 혼자 여자라 외로웠던 기억이 있다.”

- 배우 이제훈이 특별출연해 오랜만에 호흡을 다시 맞췄다. 소감이 어땠나.
“마지막에 이제훈 오빠가 특별출연해주셔서 되게 반가웠다. (이제훈은) 2014년도 SBS ‘비밀의 문’ 촬영할 때 제 남편 사도세자 역할로 등장했었다. 제훈 오빠가 ‘이번 드라마 굉장히 잘 보고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또 자기 인스타그램에도 올려주셔서 되게 감사했다. 스케줄이 바쁘실텐데도 본방사수 한다고 이야기해주셔서 작가님께 ‘이제훈 오빠도 재밌게 보고 있대요’라고 전달해 드렸던 기억이 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고 막중한 임무를 맡아서 부담감이 있었을텐데 너무 훌륭하게 IT 기업 PF 대표님으로 준비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날 특별출연임에도 하루종일 찍고 가셨다. 새벽에 촬영이 끝났던걸로 아는데 죄송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

아역부터 시작해 20년이 넘는 연기 내공을 지닌 배우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아역부터 시작해 20년이 넘는 연기 내공을 지닌 배우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 ‘스토브리그’는 본인에게 어떤 작품인가.
“‘스토브리그’는 2019년 겨울이 참 뜨거웠다고 생각되게 해주는 작품인 것 같다. 촬영을 하는 동안의 기후가 상당히 중요하다. 2018년 여름이 39.6도로 정말 더웠던 것을 기억하는 건 그때 작품 촬영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 스토브리그 작품 촬영을 하면서는 겨울이 춥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온도뿐 아니라 함께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던 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또 한 번의 동력을 얻게 만든 작품이다.”

- 작품에서 백승수(남궁민 분) 단장은 팀을 바른길로 안내한다. 본인의 연기 인생에도 백승수 같은 사람이 있나. 
“극 초반에 안 좋았던 첫 만남을 제외하고 백 단장님을 서로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존경까지 했지만... ‘이 분이 롤모델이다’ ‘우상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현실에선 찾진 못한 것 같다. 어찌보면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어른들과 마주하면서 ‘저런 모습은 좋은거구나’ ‘저런 건 배우지 말아야겠다’ 하는 데이터들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들의 총합이 백 단장처럼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 1998년 아역 배우로 데뷔해 20년이 넘는 시간을 연기자로 지냈다. ‘이 길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나.
“어렸을 때는 꼭 나의 꿈이 배우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너무 틀에 박힌 생각을 하지 않고 구태의연해지지 않기 위해서다. 미래를 열어두고 보며 컸는데, 정체성이 서서히 자리 잡게 되고 이 직업의 장점을 생각해보게 되더라. 꿈이 많았던 만큼 배우는 꿈을 다 실현해볼 수 있는 나에게 좋은 조건을 갖춘 직업이었다. 이젠 배우라는 직업의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에 조금 미래가 정돈된 것 같다. 주저하지 않고 꿈을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게 된 상태다.”

0부터 시작해 여성운영팀장 캐릭터를 만들어내기까지. 이세영을 만들기 위한 박은빈이 했을 많은 노력들은 1시간 동안 주저 없이 내뱉는 그의 답변을 통해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아역부터 쌓아온 탄탄한 연기 내공에 밝은 에너지까지 갖춘 배우 박은빈. 그의 내공이 빛날 수 있는 ‘제2의 이세영’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의 바람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