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늘 ‘에너지’의 발전과 함께했다. 142만년 전 시작된 불의 시대를 지나 화석연료의 시대에 들어선 인류는 산업혁명을 이룩했고 원자력이라는 고효율 에너지원를 통해 지금의 현대문명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에너지원은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는 기존 에너지원을 대체할 새로운 차세대 에너지원을 찾고 있다. 그 해답 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수소’다.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해 1월 수소사회로의 도약을 선포했다. 이후 많은 성과도 있었으나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점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에 <시사위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걸어온 수소경제의 길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수소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기존의 수소저장방식인 기체 형태의 저장 방식에서 저장공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액체수소’가 주목받고 있다./ shutterstock
수소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기존의 수소저장방식인 기체 형태의 저장 방식에서 저장공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액체수소’가 주목받고 있다./ shutterstock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수소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수소의 저장 방식도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보통 수소는 ‘기체’ 상태로 탱크에 저장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기체 형태의 저장 방식은 기체 특성 상 적은 양의 수소를 저장할 때도 큰 부피의 공간을 차지해야 한다. 때문에 기체 형태의 저장 방식은 대량의 연료를 필요로 하는 로켓, 비행기 등에 부적합하다. 이에 따라 기체 상태 저장 방식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액체수소’가 주목받고 있다. 

◇ 극저온이 필요한 수소의 액화, ‘줄-톰슨효과’ 이용해 제조

액체수소는 말 그대로 저온에서 수소 기체를 물처럼 ‘액화’ 시킨 것을 의미한다. 액화된 수소는 녹는점 -259.2℃, 끓는점 -252.7℃의 극저온 상태의 무색 액체다. 

수소의 액화는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다. 기체를 액체로 변환시키기 위해서는 ‘임계온도’ 이하의 온도에서 압력을 가해야 한다. 임계온도는 액체와 기체의 상평형이 정의될 수 있는 한계 온도를 말한다. 즉, 기체의 액화가 가능한 최고 온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임계온도 이상에서는 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기체는 액화되지 않는다.

문제는 수소의 임계온도는 -240℃에 달하는 극저온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극저온 상태인 절대온도가 -273.15℃임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냉각기술로는 도달하기 상당히 어려운 온도인 셈이다. 액화수소 기술자들은 이 같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줄-톰슨효과’를 이용했다. 줄-톰슨효과란 압축된 기체를 단열된 좁은 구멍을 통해 분출시키면 온도가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기체 분자 간 상호작용에 의한 것으로 기체를 액화시킬 때 주로 사용된다.

줄-톰슨효과를 이용해 액체수소의 제조를 처음 성공한 사람은 영국의 화학자 J.듀어다. 듀어는 25atm(압력의 단위 기압)으로 압축된 수소기체를 -190℃로 냉각한 뒤 줄-톰슨효과를 이용한 열교환기를 통해 액화시키는데 성공했다. 현재 국내외 액체수소 제조 업체에서 액체수소를 제조할 때도 듀어가 사용한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저장공간 확보와 고출력 에너지가 필요한 우주왕복선에는 액체 수소가 연료로 사용된다./ 픽사베이

◇ 로켓부터 항공택시까지... 무궁무진한 액체 수소 응용 분야

수소를 액체로 변환시키면 부피는 1/800수준으로 감소하게 된다. 같은 부피의 저장탱크에 기체 상태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어 에너지 효율이 크게 증가한다. 때문에 세계적으로 수소의 생산, 이송,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액체 수소의 이용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현재 액체수소는 여러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주로 쏘아 올리는 로켓에 사용되는 연료가 바로 액체수소다. 액체수소를 액체산소와 접촉시킨 후 불꽃을 가하면 격렬하게 연소한다. 이때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불꽃의 중심온도는 3,500℃다. 쇳물을 만들어내는 용광로의 온도가 약 1,500℃정도인 점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에너지인 셈이다. 이때 발생하는 대량의 에너지를 추진력으로 사용해 로켓이 발사된다.

액체수소는 드론 등 비행체의 연료로도 각광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액체수소를 이용한 비행기 개발을 위한 다기관 합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치타(Center for Cryogenic High-Efficiency Electrical Technologies for Aircraft)’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리노이 대학, MIT, 보잉, 제네럴 일렉트릭, 미 공군 연구소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는 치타 프로젝트를 위해 600만달러의 초기자금을 지원했다.

치타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액체수소를 이용해 에너지 저장밀도를 늘리고 이를 토대로 수소 연료전지의 효율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게 되면 친환경 항공의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액체수소 전문 기업으로 하이리움이 주목받고 있다. 하이리움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극저온 액체수소 제조 기술을 개발한 업체다. 하이리움이 개발한 저장탱크는 탱크 100kg당 12~18kg의 액체 수소를 저장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항공 모빌리티 회사 알라카이 테크놀러지스의 액체 연료를 이용한 항공 택시 ‘스카이(Skai)’에 액체 수소탱크 기술을 공급한다. 하이리움의 액체 수소탱크 기술이 접목된 스카이는 1회 10분 이내 충전으로 4시간 이상의 비행이 가능하다. 

국내 액체수소 기업 하이리움의 액체 수소탱크가 적용된 알라카이 테크놀러지스의 항공택시  ‘스카이(Skai)’./ 뉴시스 

◇ ‘불모지’에 가까운 국내 액체수소 분야… 지자체 및 연구진 기술 확보 매진

세계적으로 수소에너지의 이용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액체수소 제조 및 저장기술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해외의 경우 일찌감치 액체수소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상태다.

액체수소를 대량으로 생산·소비하는 미국은 1960년대부터 액체수소 생산 플랜트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대형 액체수소 생산 플랜트를 지속해서 늘리며 우주항공 분야, 반도체, 국방, 운송 등 다양한 분야에 액체 수소를 이용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액체수소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액체수소 기반 인프라  구축 및 대형 액체수소 생산 플랜트, 액체 수소 충전소 등을 설치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세계 최초의 액체수소 운반선 ‘수소프론티어’를 진수했다. 이 운반선을 통해 일본은 호주산 액체수소를 일본 고베시에 위치한 액체수소 수입기지로 운반하게 된다. 

아울러 독일의 린데, 프랑스의 에어리퀴드 등 세계적인 수소 생산·저장 업체들 역시 최고 수준의 액체수소의 저장과 생산 기술을 갖추고 있다. 독일의 린데는 자동차 회사 BMW와 함께 고성능 압축 액체수소 저장 및 디스펜서 시스템을 개발했다. 

세계 최초의 액체 수소 운반선 ‘수소프론티어’./ 유튜브 캡처

우리나라 역시 수소경제의 출발점을 막 지난 시점에서 앞으로 수소의 수요가 증가할 때를 대비해 액체수소기술 확보가 중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해외 기술에 비해 우리나라의 액체수소 분야 기술 확보는 상당히 뒤쳐진 상태다. 액체수소의 저장 기술은 앞서 소개한 하이리움 등 전문업체를 제외하면 사실상 불모지에 가깝다. 특히 액체수소 제조기술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수소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액체수소 기술은 상당히 뒤쳐져 있고 아직까지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상태”라며 “앞으로 세계의 수소산업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액체수소 기술의 확보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액체수소 기술 부족 상황을 타개를 위해 지자체 및 국내 연구진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강원도는 지난해 5월 액체수소 어선, 액체수소 플랜트 구축 등을 토대로 하는 ‘액체수소 중심 수소사회 실현’ 비전을 선포했다. 또한 삼척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하이리움과 ‘액체수소 플랜트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액체수소 플랜트 구축 사업계획 수립 및 인허가 등을 행정 지원한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액체수소 생산기술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상용급 액체 수소 플랜트 연구단’을 출범한 한국기계연구원은 오는 2023년까지 수소 상용화에 대비한 액체수소 생산 관련 기술을 개발한다. 이번 연구에 국토교통부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은 총 연구비 381억원을 투입했다. 

최병일 연구단장은 “수소에너지 시장은 앞으로 고압 기체수소 중심에서 안전성과 경제성이 우수한 액체수소 중심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액체수소 기반 인프라를 조기에 구축해  미래 수소경제 사회 도래에 발맞춰 수소산업이 국가적인 신성장 동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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