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우리의 노력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사람들의 50여년간 끈질긴 노력 끝에 고래는 다시 바다로 돌아오고 있다./ 픽사베이
우리의 노력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사람들의 50여년간 끈질긴 노력 끝에 고래는 다시 바다로 돌아오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길을 지나다보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구해야합니다’와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캠페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를 목격한 우리는 잠시나마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망각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곰곰이 생각해보기엔 너무 바쁘고, ‘우리가 노력한다고 정말로 멸종위기 동물들을 구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에겐 멸종위기종들을 위기에서 구해낼 힘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여러 사람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바다의 주인 ‘고래’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 근대의 바다, 고래의 피와 인간의 탐욕으로 붉게 물들다

과거 인간에게 있어 바다의 주인이었던 고래들은 ‘정복’의 대상이었다. 고래들은 다른 가축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난 양의 고기와 기름을 제공했다. 말 그대로 바다의 ‘금광’같은 존재였다. 이 같은 자원들을 얻기 위해 인류는 16세기부터 상업적 포경을 시작했다. 

특히 19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기계용 윤활유와 연료유의 사용량이 급증하자 고래 기름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유럽 등 서양권에서는 포경산업 역시 급격한 성장을 이뤘고 고래를 잡는 선장과 선원들은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때문에 19세기의 바다 곳곳에서는 죽어가는 고래의 비명소리와 피로 붉게 물든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는 흰색 향유고래와의 사투를 그린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잘 묘사돼 있다. 선원들은 수십 개의 작살을 고래의 등에 찍은 뒤 배로 질질 끌고 다니며 지치게 만든 후 경동맥을 찔러 죽인다. 이때 붉은 피를 뒤집어 쓴 선원들은 기쁨과 탐욕으로 가득 찬 웃음을 짓는다.

19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기계용 윤활유와 연료유의 사용량이 급증하자 고래 기름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유럽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포경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했다./ wiki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기선과 폭약 작살의 등장하면서 향유고래, 흰수염 고래, 혹등고래 등 대형 고래들이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하기 시작했다. 석탄 등 화석연료로 운항할 수 있는 기선들은 기존의 범선(바람을 이용해 운항하는 배)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안정성과 기동성을 자랑했다. 또한 폭약 작살은 고래의 몸에 박힌 후 부착된 폭약을 몸속에서 폭발시켜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이 같은 ‘신식 무기’를 갖춘 인간은 매우 손쉽게 고래들을 사냥할 수 있게 됐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19세기 말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이루면서 서양 열강들과 함께 본격적인 포경을 시작했다. 이후 일본의 과도한 포경으로 인해 북태평양참고래가 지금까지 심각한 멸종위기종으로 몰린 상태다. 우리나라 동해바다에 서식하던 귀신고래의 씨도 말라버렸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달로 폭약작살, 기선 등이 발명되면서 포경산업이 급증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고래들이 사냥당했고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했다./ 뉴시스

◇ 돌아온 ‘혹등고래’… 포경규제의 노력이 결실을 맺다

이처럼 근대화된 장비들과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해 전 세계 바다에서 고래의 개체수가 급감하자 고래 사냥을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제적으로 포경을 규제하기 위한 움직임은 1931년 9월 24일 체결된 제네바 협약과 1937년 6월 8일 체결된 국제포경단속협정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1946년 12월 2일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포경규제협약(ICRW)가 체결되면서 구체화됐다. 

이후 국제포경위원회(IWC)는 1966년 혹등고래 등 일부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종에 대한 포획을 금지했으며 1982년 7월 23일 고래 개체수 보호를 위해 상업포경에 대해 전면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1972년 스톡홀름 유엔(UN) 인간환경회의가 고래 멸종위기 문제해결을 위해 ICW측에 포경 금지를 요청한 후 10년간의 논쟁 끝에 맺어진 결실이다. 다만 토착민의 생계유지, 과학 연구 목적 등의 포경은 부분적으로 허용됐다. 

사람들의 노력에 화답하듯 최근 고래의 개체수는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혹등고래 개체수 복원 사례다. 심각한 멸종위기 고래종 중 하나였던 혹등고래는 개체수가 과거 포경으로 위협받기 전 수준으로 회복한 상태다. 혹등고래는 포경이 어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19∼20세기에 가장 많이 포획된 고래 중 하나다.

혹등고래는 19~20세기에 걸쳐 무분별한 포경으로 인해 과거 1960년대 초반 개체수가 세계적으로 500마리까지 급감했다. 그러나 966년 IWC의 국제포경제한조약과 1986년 국제포경 전면금지 조약체결 등을 거치며 현재 약 2만5,000마리까지 개체수가 증가했다./ Minden Pictures

2015년 4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 혹등고래 14개 집단 중 10개 집단이 멸종위기 목록에서 제외됐다. 혹등고래는 무분별한 포경으로 인해 과거 1960년대 초반 개체수가 세계적으로 500마리까지 급감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혹등고래는 1966년 IWC의 국제포경제한조약과 1986년 국제포경 전면금지 조약체결 등을 거치며 세계적인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혹등고래를 주로 사냥하던 국가였던 미국도 1971년 상업적 포경을 금지했다. 

이 같은 지속적인 보호는 혹등고래의 개체수를 정상궤도로 돌려놓는 결실을 맺었다. 혹등고래 개체수는 해마다 평균 10.9%씩 개체수를 회복하며 2005년에는 1만마리, 현재 약 2만5,000마리까지 증가했다. 이는 포경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하기 직전 개체수의 약 93%까지 회복된 수치다.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NOAA등의 연구진은 오는 2030년쯤에는 혹등고래의 수가 99%까지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크루스 캠퍼스의 고래전문가 댄 코스타 교수는 “기후변화, 멸종 등 끔찍한 소식만 들려오는 지금 시대에 혹등고래가 멸종위기 목록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상징적인 소식”이라고 평했다.

◇ 개체수 회복되자 상업포경 재개 움직임… 전문가들 “지속적 보호 필요한 시점”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모든 고래종들이 멸종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아직까지 향유고래, 흰수염고래 등이 멸종위기의 문턱 앞에 놓여있는 상태다. 국내에서도 웃는 고래로 불리는 ‘상괭이’ 등의 돌고래종이 여전히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무엇보다 고래들의 개체수가 어느 정도 안정단계에 이르자 다시 상업포경을 허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고래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 중 하나인 일본 측이 끊임없이 이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IWC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연구를 이유로 고래를 사냥해 왔다. IWC가 상업포경을 중지한 후 1987년부터 남극해의 고래 생태를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조사 포경’을 시작했다. 

일본 IWC가 상업포경을 중지한 후 1987년부터 남극해의 고래 생태를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조사 포경을’시작했다. 이후 지난 2018년 12월 IWC탈퇴를 결정한 후 상업포경을 재개할 것을 선언한 뒤 지난해 7월부터 다시 상업포경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일본 IWC가 상업포경을 중지한 후 1987년부터 남극해의 고래 생태를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조사 포경을’시작했다. 이후 지난 2018년 12월 IWC탈퇴를 결정한 후 상업포경을 재개할 것을 선언한 뒤 지난해 7월부터 다시 상업포경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실제로 지난 2018년 슬로베이나에서 개최된 IWC 과학위원회 회의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2017년 여름 남극해에서 ‘과학 프로그램’을 이유로 총 333마리의 밍크고래를 사냥했다. 이 중 122마리는 뱃속에 새끼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114마리는 아성체(새끼와 성체의 중간 정도) 상태였다. 포획된 고래는 연구활동 진행 후 식용으로 팔려졌다. 때문에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과 환경단체들로부터 과학 연구를 핑계로 금지된 상업포경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후 야마구치, 홋카이도 등의 일본 고래잡이 어부들이 상업포경 재개를 요구하자 일본 정부는 지난 2018년 12월 IWC탈퇴를 결정한 후 상업포경을 재개할 것을 선언했다. 지난해 7월부터 다시 상업포경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일본의 상업포경 대상종이 멸종 우려 대상이라는 것이다. 2018년 일본이 포경을 재개하면서 포획하고 있는 종은 밍크고래, 정어리고래 ,브라이드 고래 3종이다. 야생 동·식물 국제거래규제 조약인 ‘워싱턴 조약’에 따르면 이들 모두 멸종 우려대상에 포함돼 국제적인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이 같이 조약을 무시하는 일본의 상업포경 재개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호주정부는 일본이 IWC를 탈퇴하고 상업포경을 재개한다고 선언한 직후 비판성명을 냈다. 마리스 페인 호주 외교부 장관과 멜리사 프라이스 환경부 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일본의 상업포경 재개 결정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호주는 모든 종류의 상업포경을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해양수산부도 지난해 7월 비판 성명을 통해 “일본의 상업포경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우리 수역의 고래자원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는 특히 한국과 일본 양국 수역을 왕래하며 서식하는 밍크고래가 일본의 포경대상에 포함된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고래의 보존과 이용은 IWC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지난 2019년  IWC 본부가 위치한 영국의 런던에서 진행된 일본의 상업포경을 규탄하는 시위 모습./ alamy

세계 환경단체 및 동물단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Sea Shepherd)는 “일본의 상업포경 재개에 따른 고래 및 돌고래 살해에 대해 계속해서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IWC 본부가 위치한 영국의 런던에서는 동물보호단체과 환경단체들이 “포경을 멈추지 않으면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이라고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일본을 제외한 상업포경은 거의 종식된 상황이지만 버려진 플라스틱, 화학물질, 그물, 혼획(잡으려고 의도했던 물고기와 다른 종류의 물고기가 함께 잡히는 것) 등에 희생되는 고래의 수는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혹등고래와 같이 개체수를 회복하는 종도 있겠지만 여전히 멸종의 위기에 몰려있는 종도 있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린피스 관계자는 “지난 수백년 간 인간은 수많은 종의 고래의 씨를 말려왔다”며 “이제는 오랜 세월 지구의 바다를 지켜온 고래를 우리가 지켜야 할 때”라고 전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걱정하거나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풍차로 달려가는 ‘돈키호테’처럼 망상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고래들은 그 ‘망상가’들과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바다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 우리도 인간의 행동에 의해 벼랑 끝까지 몰린 생명들을 위해 꿈꿀 수 있는 돈키호테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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