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주주의에서 국민 여론을 가장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 중 한가지가 투표다.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바꿀 수 있고, 투표를 통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 수도 있다. 과거 우리나라의 암울한 정치사는 유권자인 국민들이 투표를 잘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왔다. 또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투표다. 젊고 유능한 인재를 선량으로 뽑아 경험을 쌓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투표는 지금의 대한민국 뿐 아니라 미래의 대한민국을 바꿀 힘이다. 그래서 투표는 중요하다. <편집자 주>

대전선관위 직원들과 우편집배원들이 지난 19일 대전우체국 앞에서 4·15총선 홍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뉴시스(대전선관위 제공)
대전선관위 직원들과 우편집배원들이 지난 19일 대전우체국 앞에서 4·15총선 홍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뉴시스(대전선관위 제공)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혼돈에 빠져 있는 가운데 21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4·15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역대 다른 총선들과 비교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정치적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해 12월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 국회 통과로 이번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으로 도입되고 선거연령도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다.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과 선거연령 하향 조정이 선거 결과에 미칠 영향을 지켜보는 것이 이번 선거 최대 재미로 꼽혔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총선이기 때문에 ‘탄핵 민심’이 이번 총선까지 이어져 의회 권력까지 바꿀 수 있을지, 아니면 문재인 정부 심판론이 더 먹힐 것인지도 최대 관전포인트였다.

◇ 21대 총선 투표율에 비상한 관심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총선 자체가 위협을 받으면서 총선 민심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유권자 상당수가 투표소 방문으로 코로나19 감염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투표를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선 투표율이 저조할 경우 민심 왜곡 현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총선 연기론까지 제기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19 사태 종결까지 총선을 연기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현재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세계 각국도 선거를 연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현재까지 총선 연기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예정된 일정대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총선 투표율에 비상이 걸리면서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최근 세 번의 총선 투표율은 20대 총선 58%, 19대 총선 54.2%, 18대 총선은 46.1%였다.

18대 총선은 궂은 날씨와 젊은 유권자층의 투표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역대 선거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당시 총선 결과를 놓고 민의의 대표성에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제기됐었다. 

이번 21대 총선이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역대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투표율 하락을 우려하며 대책 마련을 당부했다. 정 총리는 지난 18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선거지원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총선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실시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감염을 걱정하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 투표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며 “국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투표율이 높아질 수 있고, 이를 위해 국민들에게 관련 대책들을 적극 설명하고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2016년 4월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국회의원선거 개표소 앞에서 투표함 접수를 위해 투표관리관과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2016년 4월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국회의원선거 개표소 앞에서 투표함 접수를 위해 투표관리관과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다.

◇ 선관위의 ‘안전대책’, 투표율 하락 막을까

이에 따라 중앙선관리위원회도 지난 19일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투표율 하락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선관위는 이날 유권자가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투표소에 나오지 않는 일이 없도록, 안심하고 투표장에 나올 수 있는 안전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 확진자의 투표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안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선관위는 3,500여개 사전투표소와 14,300여개 선거일 투표소에 대해 투표 전날까지 방역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며 방역이 완료된 투표소는 투표 개시 전까지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킬 방침이다.

투표소에 오는 선거인은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고 투표소 입구에는 발열체크 전담인력을 배치해 비접촉식 체온계로 발열체크를 할 계획이다. 선거인은 비치된 소독제로 손 소독 후 위생장갑을 착용하고 투표소에 들어가 투표를 해야 한다.

선관위는 코로나19 확진자의 투표권 보장 방안도 내놨다. 선관위는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인 거소투표기간에 신고한 후 병원, 생활치료센터 또는 자택에서 거소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신고기간 후 확진 판정을 받고 생활치료센터에 있는 유권자의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내달 10일부터 11일까지인 사전투표 기간에 지정된 생활치료센터에 특별 사전투표소를 설치해 운영할 방침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재외선거 문제 해결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선관위는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지역 재외선거 사무를 중지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제218조의29 제1항의 ‘천재지변 또는 전쟁·폭동,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재외선거를 실시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때’에 해당한다고 보고 이 같이 결정했다. 이에 따라 우한 지역에서는 투표를 할 수 없게 됐다. 우한 이외 지역에 대해서도 이 같은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도 있다.

선관위는 국외부재자신고인명부 및 재외선거인명부에 올라있는 사람이 국외로 출국하지 않거나 내달 1일 재외투표기간 개시 전에 귀국할 경우 귀국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해 관할 구·시·군선관위에 신고하면 선거일에 투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됨에 따라 주재국 환경 등을 고려한 재외투표소 방역대책을 마련하고 항공노선 축소·중단에 따른 재외투표 회송방법과 노선을 변경·조정하는 등 외교부·재외공관·주재국 등과 긴밀히 협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정치권, ‘사전투표 기간 연장’ ‘전자거소투표 도입’ 등 제안

정치권에서는 투표율 상승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인천 권역 선대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지난 18일 사전투표 기간을 2일에서 5일로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송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이 어떤 미래로 갈 것인지 가르는 중요한 선거이기에, 더 많은 국민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며 “투표로 인해 행여 있을 코로나19 감염을 위한 방법도 반드시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의원은 “선거일 전 5일부터 2일 동안 진행되는 현재의 사전투표 기간을 선거일 전 8일부터 5일간으로 연장한다면, 투표소 내 인원 집결가능성을 낮춰 선거인의 감염 위험성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이승택·정은숙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후보자 2명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총선과 관련된 제안이 이어졌다.

미래통합당 간사인 이채익 의원은 자가격리자에게 거소투표·선상투표를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선관위의 온라인투표시스템인 ‘케이보팅’(K-voting)을 이용한 “전자거소투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20일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사전투표 기간을 늘리는 것은 선거법이 개정돼야 가능한 사안이다”며 “법이 개정이 되지 않는 이상 선관위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전자거소투표의 경우도 선거법 개정이 돼야 가능하다”며 “현행 거소투표는 우편투표 방법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이 지난 19일 오후 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제21대 총선 선거사무 추진상황 등을 점검하고 사전투표 모의시험을 하고 있다./뉴시스(행정안전부 제공)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이 지난 19일 오후 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제21대 총선 선거사무 추진상황 등을 점검하고 사전투표 모의시험을 하고 있다./뉴시스(행정안전부 제공)

◇ 전문가 그룹 “투표율 하락할 것, 야당에 불리”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이번 코로나19가 불러온 감염 불안증과 정치 무관심으로 총선 투표율이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투표율이 하락할 경우 미래통합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가 선거 분위기를 다운시키면서 투표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일 감염 우려로 불안해서 투표장에 가지 않는 유권자가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투표율이 낮으면 지지 기반이 탄탄한 쪽이 더 유리하다”며 “투표율이 낮으면 예전에는 보수가 유리했는데 촛불 혁명 이후 진보층 숫자가 더 많아지면서 이제는 반드시 보수가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전체적으로 코로나19 영향으로 투표율이 많이 떨어질 것이다. 특히 60대 이상이 투표장에 많이 안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로 정치 이슈가 뉴스에서 많이 나오지 않게 되면서 정치 무관심을 키워 투표율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투표율이 낮으면 대체적으로 야당, 특히 미래통합당이 불리할 것”이라며 “통합당이 쫓아가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권 심판론이라는 바람을 타야 하는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유권자들에게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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