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국회에서 만난 이자스민 후보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계속 공론화가 되어야 하는데 스피커가 없어지다 보니 공론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31일 국회에서 만난 이자스민 후보는 이주민 정책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계속 공론화가 되어야 하는데 스피커가 없어지다 보니 공론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19대 총선 당시 ‘이주민 최초’라는 타이틀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수많은 논란과 비난의 대상이 된 이후 정계에서 모습을 감춘 듯 보였다. 그랬던 그가 다시 국회 입성을 노렸다. 빨간색이 아닌 노란색 점퍼를 입고 나선 모습에 사람들은 새로워했다. 그러나 그는 “옷을 잘 입었다”라고 말했다. 이자스민 후보 이야기다.

이 후보는 다시 정치권에 돌아온 이유를 ‘이주민 정책 후퇴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20대 국회에 들어 이주민‧다문화에 대한 언급이 3분의 1로 줄었다”라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계속 공론화가 되어야 하는데 스피커가 없어지다 보니 공론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시 정치에 발을 들인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자리다 보니 얼마나 어려운지 가족이 훨씬 더 잘 안다”며 “아들도 부정적이더라”고 회상했다.

이 후보는 지난 19대 미래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에 처음 입성했다. 그는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주변인들의 편견을 깨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동료 의원들이 농담삼아 ‘한국 사람들도 국회 알려면 1년은 있어야 하는데 이 의원은 2년은 해야겠네’라고 하더라”라며 “의원 동료들의 편견을 깨는 일과 이주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일도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에는 정의당의 옷을 입고 나섰다. 이 후보는 정의당 비례대표 9번을 받았다. 그는 “당을 옮긴 것뿐이지 이주민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은 마음은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정당의 경우는 이주민을 영입해도 결국 경선을 못 넘고 나 혼자 남았다”며 “정의당이라서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시사위크>는 31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이자스민 후보를 만났다. 이 후보는 이날도 국회에서 ‘재난지원 이주민 배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가 다시 정치권에 돌아온 이유, 정의당 후보로서의 각오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자스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사실은 다른 것보다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당을 옮긴 것뿐이지 아직까지 이주민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은 같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이자스민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사실은 다른 것보다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당을 옮긴 것뿐이지 아직까지 이주민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은 같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 오늘은 무슨 기자회견을 하고 온 건가.
“기본재난소득 정부안에서 이주민 대상 지원이 명확하게 나온 게 없어 그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왔다. 경기도는 지난주에 보도자료를 발표했는데 외국인을 대상에서 제외했다. 결국은 국적을 기준으로 지급한다는 데 아직까지 국적을 취득 못했으면 자동으로 제외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결혼 가정의 경우 여성이 이민자라면 애가 있어도 2인 가족이 된다. 일단 아직 정부 안에는 아무것도 디테일 한 게 없기 때문에 그것을 고려해 달라는 발표를 한 것이다. 코로나는 성별, 국적, 나이, 인종을 가리지 않지 않나.” 

- 코로나 사태가 이주민에게 더욱 힘들 것 같다.
“마스크 보급대상도 최소한 주민등록증, 의료보험 가입자여야 하는데 미등록자라면 받을 수 없다. 작년부터 국내에 6개월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은 의료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했지만, 유학생에 한해서 내년 2월까지 유예기간을 두었다. 이들이 아프게 되면 우리가 사회적 비용을 내야 한다. 어차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가 똑같이 영향을 받는다.”

- 두 번째 비례대표 선거에 나선다. 당을 옮기고는 처음이라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사실은 다른 것보다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당을 옮긴 것뿐이지 아직까지 이주민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은 같다. 서른일곱 명 후보들 중에 유일한 이주민 출신이다. 다른 정당에서 이주민을 영입해서 반갑게 생각했는데 결국 경선을 못 버텨서 혼자 남았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더 혼자 고군분투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비례후보 경선을 통과시켜준 당원들의 기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에 처음 들어왔을 때 부정적으로 ‘되겠나’라는 생각이 많았다. 학연‧지연‧혈연에 정의당연까지 없었고, 수년간 진보정당 지켜온 사람들과 감히 경선을 붙을 수 있겠나 하는 고민이 많았다. 정의당 들어오면서 놀랐던 것이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정당이 이주민 조직이 하나도 없고, 이주민 관련 법을 하나도 못내 봤다는 점이다. 그에 대한 필요성을 당과 당원들이 많이 느끼고 있어서 이런 전문가는 필요하다고 인정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다른 당 이주민 후보들이 떨어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경선을 통과한 건) 정의당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당원들의 생각하고 가치관이 맞아 떨어졌다. 이주민 관련된 필요성을 많이 느꼈던 당이고 쇼를 하기 위해서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 경선을 통해 느꼈다. 다른 정당은 이미 의석수가 많은 정당인데도 작은 목소리를 특별하게 넣을 수 있는데 그걸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 다시 정치계에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들도 부정적이더라. 잘 해도 욕먹고 못 해도 욕먹는 세계에 다시 들어간다고 말이다. 시민 단체 활동을 계속해왔지만 언론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김종대 의원이 재작년에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다시 살리고 싶다고 이야기 하셨는데, 그 법안만큼은 공들였던 법안이고 우리 사회의 필요한 법안이라고 생각하기에 만나게 됐다. 이후 심 대표를 만나 제의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계속 연락이 왔다. 주변에 이주민 관련 종사자들에게 물어봤더니 ‘내가 없어지면서 스피커 없어지니 이주민 정책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고 하더라. 심 대표도 초선 의원 첫 해는 배우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일만하면 된다는 장점을 살릴 수 있다고 이야기 하더라.“

- 새누리당과 정의당이 서로 많이 다른가.
“심 대표도 늘 이야기 했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아갔다. 그리고 그 때는 정의당이 힘이 없어서 데려올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극과 극을 이동하는 거니 걱정했는데 심 대표 말씀 하시는 게 정의당원들은 만나보면 알겠지만 현명하고 깨어있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번 만나보면 많은 사람들이 환영할 거라고 말 했다. 들어오고 나서 옷을 잘 입었다는 느낌이다. 당이 작다보니까 집중적으로 수많은 일을 적은 숫자의 의원들이 해야 한다는 어려움은 있다. 거대정당의 경우 의원이 많다보니까 배분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 거대정당 경우는 대표 중심으로 움직이고 결정도 그렇게 되는데 여기는 대표가 제의를 하면 전국위원회에서 10시간이든 12시간이든 회의를 하더라. 그런 민주주의를 무조건 지키려는 자세를 봤다. 거대 정당보다 늦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정의당 이주민인권특위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위원회가 아직 없다. 위원장을 데려다 놓고 위원회를 만들라는 입장이다. 이주민 조직의 필요성은 경선에 들어오면서 투표결과를 통해 말을 한 것이기 때문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정의당은 노동, 여성, 성소수자 이런 건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이주민에 대해선 자리가 없다. 이주민에 대한 자리를 만들고, 정의당 창당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이주민 관련 공약을 발표했다. 또한 지역으로 당원 강의를 많이 가면서 이주민 감수성을 키우고 이주민 정책, 의제 가져오고 조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자스민 후보는 의정활동 당시 가장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모든 것을 배워야 하고, 사람들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뜨리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이자스민 후보는 의정활동 당시 가장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모든 것을 배워야 하고, 사람들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뜨리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진=김경희 기자

- 우리나라 다문화의 현 주소는 어디까지 왔다고 생각 하는가.
“내가 없어지고 나서 20대 국회에서 후퇴하고 있다. 스피커가 없어지다 보니까 정책도 그렇고 심지어 기사에서도 언급자체가 없다. 법안 시스템에는 이주민‧다문화 언급이 19대보다 3분의 1로 줄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계속 공론화 되고 의논되는 주제가 되어야만 우리가 정책을 앞으로 밀어 붙일 수 있다. 지금 워낙 세계적으로 시리아 난민부터 나라들마다 난민 때문에 버거운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도 이민 관련 정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이런 나라들도 후퇴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이 굳이 해야 할 이유가 뭐냐는 말도 많이 하더라. 옛날보다 후퇴를 하고 있는데 정책적으로 논의가 돼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제가 나온 이유이기도 하고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나오게 됐다.”

- 의정활동 당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모든 것을 배워야 하고, 사람들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뜨리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농담삼아 ‘한국 사람들도 국회 알려면 1년 정도 있어야 하는데 이 의원은 2년은 해야 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하는 말 다 알아듣고 있냐’고 되묻는 일도 있었다. 현직 의원들은 동료인데 그들의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 어려웠다. 또한 국회의원 됐을 때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이민정책 전문가를 만났는데 현 주소에 대한 정확히 해답을 갖는 사람이 없더라. 특히 이주민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해서 이주민 생활을 했다고 하던데  한국만의 고유문화에 이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미국‧유럽 이주민이 된 한국인과 굉장히 다르다.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지 않는 한 한국 문제점 잘 파악 못한다. 또한 전문가들이 이론적으로 이야기하다 보니까 막상 당사자들에게 피부가 와 닿는 정책이 만들어지지 않더라.”

- 비례 순번 9번을 받게 됐다. 당선 가능성은 얼마 정도로 보는가.
“사실상 많이 힘들어 보인다. 지난주 정의당 지지율이 3%대더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심 대표가 힘들게 싸워서 만들어 놨는데 위성정당으로 그 의미가 묵살당했다. 제가 대표를 하고 있는 이주민 목소리가 21대 국회에서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당선 됐으면 좋겠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원칙을 지키는 당을 얼마나 필요한지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남은 선거 기간 동안 계획이 있는가.
“당에서 유세를 계획 중이다. 지난 선거와 달리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깜깜이 선거라고 이야기하더라. 대부분은 방송이나 SNS를 통해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빈도수를 높일 계획이다. 거기에 지역구 후보들을 위해 이주민 특별위원장 이름으로 지역 이주민들을 투표소로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중요한 건 다른 정당 이주민 대표가 다 떨어져서 이주민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은 정의당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자스민 후보는 국회 입성 후 계획에 대해 “‘이민’에 대한 정의가 없고 ‘이민자’ 정의가 없더라. 이주민이 250만 명 넘었는데 이제는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진=김경희 기자
이자스민 후보는 국회 입성 후 계획에 대해 “‘이민’에 대한 정의가 없고 ‘이민자’ 정의가 없더라. 이주민이 250만 명 넘었는데 이제는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진=김경희 기자

- 총선 결과를 떠나서 이후의 정치활동 등을 계획하고 있나.
“정의당 들어오면서 환영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새누리당 시절에는 워낙 부정적 사람들 많아서 SNS 활동을 안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SNS 활동하면서 정말 환영받는 느낌을 받았다. 정의당에서 이주민 인권 기본 베이스를 다져서 이주민이 모일 수 있고 목소리를 정확하게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워낙 이주민 조직들은 흩어져서 한 목소리를 내지 않아 많은 힘을 얻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런 일도 하고 싶다. 당선이 되면 정책 일을 하겠지만 당선이 안 되더라도 시민단체 활동을 계속 할 것이다. 시민단체 활동은 정책은 만들 수 없지만 오히려 정치권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 한다.”

- 국회 입성을 하게 된다면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일은.
“지난번은 공부를 하는 시간이었지만 이번에는 정리를 할 부분이 필요한 것 같다. 이주민 정책이라고 하면 다문화 가정에만 제한하고 있다. ‘이민’에 대한 정의가 없고 ‘이민자’ 정의가 없더라. 이주민이 250만 명 넘었는데 이제는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민자가 누구인지를 기본으로 하고 그에 맞춰 필요한 부분을 꾸려 나가야 한다고 생각이다. 필요한 정책들 만들고 우리가 4년 지났지만 후퇴하는 정책을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아울러 이민법, 이민청이나 이민관련 정부 컨트롤 타워가 될 수 있는 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싶다. 또한 이주아동권리보장 기본법을 한 번 더 할 계획이다. 이 법안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볼 수 있는 지표인 것 같다. 18대 국회에서 내놨을 때는 아무 이야기 없었고, 19대에선 내가 발의하고 난리가 났었다. 21대에 내놓으면 그 반응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다문화 이해도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느낄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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