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바다에 서식하는 수달의 일종인 ‘해달’은 사람을 만나면 가지고 있던 조개를 선물로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조개를 받고 자신들을 해치지 말라는 의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달의 조개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해달의 가장 큰 멸종위기 원인이다./ shutterstock
바다에 서식하는 수달의 일종인 ‘해달’은 사람을 만나면 가지고 있던 조개를 선물로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조개를 받고 자신들을 해치지 말라는 의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달의 조개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해달의 가장 큰 멸종위기 원인이다./ shutterstock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몇 년 전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바다에 서식하는 수달의 일종인 ‘해달’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해달이 사람을 만나면 가지고 있던 조개를 선물로 준다는 것이다. 한국수달보호협회에 문의한 결과, 해달 서식지역에 방문했을 당시 실제로 조개를 선물한 해달이 있었다고 하니 이 ‘사랑스러운’ 루머는 사실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해달이 사람들에게 조개 선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리꾼들 사이에선 ‘조개를 받고 자신들을 해치지 말라는 의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정확한 사실여부는 검증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해달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는지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다.

다만 해달의 ‘조개 선물’은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 듯하다. 조개선물을 받은 인간들은 오히려 과거에는 사냥으로, 현대에 들어서는 환경오염 등으로 해달을 멸종위기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해달은 어설프지만 영장류처럼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성게나 조개 등의 먹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돌멩이로 쳐서 껍데기를 깨뜨려 내용물을 꺼내먹는다./ 미국생태학회(ESA)

◇ 인간의 탐욕, 해달을 멸종위기로 몰아넣다

우리에게 ‘보노보노’ 캐릭터로도 익숙한 해달은 바다에 서식하는 족제비과 동물로 민물에 살고 있는 수달과는 친척관계다. 몸 길이 70~120cm, 무게는 약 16~30kg 정도로 현존하는 해양 포유류 중 가장 작다. 수달과는 달리 뒷발에 물갈퀴가 달려있고 거의 하루 종일 물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특징이다.

해달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성게나 조개 등의 먹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돌멩이로 쳐서 껍데기를 깨뜨려 내용물을 꺼내먹는다. 이 돌멩이는 해달 한 마리당 하나씩 가지고 다니며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잠을 잘 때는 해초를 이불처럼 몸에 둘둘 감고 잔다.

피하지방이 타 해양 포유류에 비해 적은 해달은 매우 촘촘히 자란 털을 보온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해달은 피부 표면 1cm²당 약 15만 가닥의 털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머리 전체에 자란 모발이 평균 10만 가닥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이 때문에 해달의 모피는 매우 부드럽고 윤기가 흐른다. 

1741년부터 1911년까지 이어진 해달 사냥은 북태평양 일대에 널리 분포하던 해달을 심각한 멸종위기상태로 몰아넣었다./ wiki

이처럼 해달의 아름다운 털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18세기 비투시 베링의 알래스카 탐험에 동행한 박물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스텔러는 유럽에 해달의 모피를 가져왔다. 해달의 아름다운 모피가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영국, 미국 등 수많은 국가에서 일확천금을 노린 해달 사냥꾼들이 마구잡이로 해달을 사냥했다. 1873년 이후 서양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해달 모피가 대유행하면서 아시아 지역에서도 해달 남획이 성행했다.

결국 1741년부터 1911년까지 이어진 해달 사냥은 일본 북부, 알래스카, 미국 캘리포니아 몬테레이만, 멕시코에 걸쳐 북태평양 일대에 널리 분포하던 해달을 심각한 멸종위기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는 개체수가 15~30만 마리에서 1,000~2,000여 마리까지 감소했다.

특히 18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캘리포니아 몬테레이만 일대에서는 해달이 거의 멸종되고 말았다.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왔다. 몬테레이만의 ‘켈프숲’들이 파괴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바다의 열대우림’이라 불리는 켈프숲은 다시마과에 속하는 대형 해조류들이 모여 만들어진 바닷속의 숲으로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천적인 해달이 사라지면서 켈프숲 내 조개와 성게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식하기 시작했다. 과잉번식이 일어난 조개와 성게는 엄청난 양의 해조류를 먹어치웠고 켈프숲 전체가 초토화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켈프숲이 황폐화되면서 성어들은 산란장소가 사라졌고, 갓 부화한 치어들은 자신의 몸을 숨길 보금자리가 사라졌다. 또한 육지의 숲과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온 켈프숲이 사라지면서 캘리포니아 몬테레이만은 ‘바다의 사막’이 되고 말았다.

캘리포니아 몬테레이만의 해달이 멸종당하자 ‘바다의 열대우림’이라 불리는 켈프숲에는 조개와 성게가 과잉번식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몬테레이만 일대의 켈프숲은 황폐화됐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사라졌다./ National geographic

◇ 세계적인 남획 금지… 조금씩 회복하는 해달의 개체수

이처럼 심각한 상황이 닥치자 해달을 보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11년 ‘해달 및 물개류 보호 국제조약’을 시작으로 해달은 세계적인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이 조약을 통해 미국, 러시아, 일본, 캐나다 4개국은 해달 및 물개 남획을 금지했다. 

해당 조약은 15년의 시한 조약으로 1925년 소멸됐으나 이는 전 세계 국가의 ‘해달보호활동( sea otter conservation)의 시발점이 됐다. 1960년대부터 세계의 환경단체, 학계를 중심으로 해달보호활동이 이뤄졌다. 가장 해달의 멸종위기가 심각했던 캘리포니아에서는 1977년 멸종위기종 보호법에 따라 해달을 멸종위기종에 등록됐다.

현재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에 등재돼 해달 모피에 대한 국제거래가 제한된 상태다. 원주민들의 제한적 수렵 행위를 제외하면 모든 해달 사냥이 불법인 셈이다.

1911년 ‘해달 및 물개류 보호 국제조약’을 시작으로 해달은 세계적인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1960~1980년대까지 전 세계적인 노력으로 해달의 개체수는 조금씩 회복했다. 특히 거의 멸종됐었던 캘리포니아 몬테레이만의 해달 역시 돌아왔다./ Seaotter.com

아울러 해달 개체수를 다시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됐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북태평양 인근 해달의 개체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해달 89마리가 알래스카에서 캐나다 밴쿠버 섬 서안으로 이송됐다. 이후 지속적인 보호를 통해 이 89마리의 해달들은 2004년까지 약 3,000마리까지 늘어나게 됐다. 서식지도 밴쿠버 섬 서안에서 스콧 곶, 버클리 해협까지 확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은 베링 해에 위치한 암치트카 섬에서 워싱턴주로 이송된 59마리의 해달도 무사히 자리를 잡아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다. 워싱턴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부(WDFW)의 조사에 따르면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워싱턴주 근처 해안의 해달 개체수는 연평균 8.2%비율로 증가해 504~743마리로 추정된다. 서식지도 올림픽 반도에서 디스트럭션 섬과 필라포인트까지 넓어졌다.

이 같은 해달보호활동으로 세계 해달 숫자는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미국 지질 조사국(USGS)에서 생물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글렌 R. 밴블라리콤 박사의 저서 ‘해달(Sea Otter)’에 따르면 2003년 기준 러시아 동안, 알래스카, 워싱턴주, 캘리포니아,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등지에서는 해달 개체수가 안정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과 멕시코에도 해달이 재정착하는 근황도 포착됐다고 한다. 

글렌 R. 밴블라리콤 박사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추산한 결과 세계적으로 약 10만7,000여마리까지 해달 개체수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달의 개체수가 멸종위기 전의 2/3까지 복원된 셈이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해달보호활동이 혹등고래 보호활동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해양생물 복원사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해달의 개체수가 조금씩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국제 자연 보전 연맹(IUCN)은 여전히 해달을 심각한 멸종위기종 등급인 'EN'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

◇ 여전히 해달을 위협하는 ‘환경오염’

해달의 개체수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국제 자연 보전 연맹(IUCN)은 여전히 해달에게 ‘EN(Endangered)’ 등급을 부여한 상태다. EN등급은 ‘절멸 위기’를 뜻하며 야생에서 가까운 미래에 멸종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종에게 부여되는 등급이다. 우리에게 심각한 멸종위기종으로 잘 알려진 북극곰이 받은 ‘VU(ulnerable)’ 등급보다도 심각한 상태인 셈이다.

IUCN은 해달의 멸종위기등급을 여전히 EN등급으로 지정한 이유를 남획 이외에 해달을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들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바로 △지구온난화 △플라스틱 등으로 인한 해양 오염 △인간의 어업활동 △선박의 기름유출 등 △기후변화로 인한 천적 생물의 급증 등이다.

우리가 잠을 잘때 이불을 덮는 것처럼 해달은 해초를 덮고 잔다. 이는 물에 떠내려감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인간이 버린 비닐 쓰레기를 해초 대신 껴앉고 있는 해달이 스토리 트렌드’는 사진작가 더글라스 크로프트에 의해 포착됐다./ 스토리트렌드

실제로 1980년대 해달보호활동으로 약 5만5,000여마리의 해달이 서식하고 있던 북태평양 알류샨 열도에서는 2000년에 들어 6,000여 마리로 개체수가 급감했다. 이 현상에 대한 원인은 불분명하다. 다만 학계에서는 천적인 범고래가 기후변화로 인해 알류샨 열도 근처에 몰려든 것이 주요원인일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또다른 해달보호활동의 주요 지역인 캘리포니아에서는 1990년대 이후 해달 복원 정도가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성체나 성장기가 끝난 개체의 사망률이 높게 나타났는데 ‘톡소플라즈마 기생충’과 구두충 기생이 주요 해달의 폐사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해달에게 치명적인 톡소플라즈마 기생충이 들어있는 집고양이 배설물이 하수도를 통해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달을 감염시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해달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선박의 ‘기름 유출’이다. 모피를 통해 체온을 유지하는 해달에게 기름 유출은 매우 치명적이다. 해달의 털에 기름이 묻게되면 그 안에 공기를 채울 수 없게 돼 체온 손실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털에 기름이 묻은 해달은 차가운 바다에서 저체온증으로 죽고만다. 또한 털 손질을 하면서 해달이 기름을 먹게되면 간과 신장, 폐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

1989년 3월 24일 미국 알래스카 만의 남쪽 프린스윌리엄 해협에서 발생한 엑슨 발데즈 원유 유출 사고로 인해 2,800~5,000 마리의 해달이 목숨을 잃었다./ AP

1989년 3월 24일 미국 알래스카 만의 남쪽 프린스윌리엄 해협에서 발생한 엑슨 발데즈 원유 유출 사고로 인해 2,800~5,000 마리의 해달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장난기 많고 귀여운 죄 없는 구경꾼이던 해달은 완벽한 피해자가 됐다”며 “즐겁게 뛰어놀던 귀여운 해달들은 갑작스럽게도 기름 범벅이 되어 고통 속에서 겁에 질려 죽어가고 있다”고 당시 참담한 상황을 묘사했다.

문제는 원유 유출사고는 그 후유증이 수십년간 지속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원유의 타르 성분이 모래 안에 더 오래 남아있을 수 있어 해양 생태계에 매우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2001년 알래스카 수산과학연구센터가 프린스윌리엄 해협 근처의 모래들을 조사해본 결과 여전히 원유의 독성물질이 남아있었다. 프린스윌리엄 해협 근처에 서식하는 해달들이 조개를 찾아 바다 밑바닥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독성에 노출된다. 또한 독성에 노출된 조개들을 섭취한 해달들은 내장에 손상을 일으켜 수명이 줄어들게 된다.

엑슨 발데즈 원유 유출사고 당시 기름에 뒤덮혀 목숨을 잃은 해달./ Seaotter.com

이처럼 원유 유출사고는 해달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그런데 현재 해달의 서식지는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워싱턴, 브리티시 콜롬비아 등 지리상으로 밀접해 있다. 이는 엑슨 발데즈 사고처럼 대형 원유 유출사고가 또다시 발생할 경우 해달 전체의 생존에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시민환경연구소 김은희 박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미국, 유럽 등에서 나온 연구결과를 통해서도 원유 유출사고가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위험한 것을 알 수 있다”며 “바닷속의 모래 등 퇴적층에 남아있는 원유의 독성물질은 시간이 오래 지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해달뿐만 아니라 수많은 해양 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원유유출 사고에 경각심을 갖고 대비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모피를 탐하던 인간의 욕심 때문에 한때 절멸 직전까지 내몰렸던 해달. 그런 해달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반성과 노력을 통해 우리 곁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해달이 환경오염이라는 치명적인 위험 속에 여전히 노출돼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언젠가 해달은 자신을 해치지 말아달라는 의미가 아닌 ‘고마움’의 의미로 우리에게 조개 선물을 줄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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