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위기’다. 최근 부쩍 더 많이 들려오는 얘기다. 청년 인구의 수도권 이탈,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지방 소멸위기론’까지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노인만 남은 마을은 소멸 위기를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마을, 나아가 지역의 붕괴는 지방자치 안정성을 흔들고, 나라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엄중한 위기의식을 갖고 적합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시사위크>에선 이 같은 시각 아래 현 위기 상황을 진단해보고 과제를 발굴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학생수 감소로 전국 소규모 학교가 폐교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저출산 현상 심화로 국내 학령인구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인구 절벽에 시달리는 지방 소도시로 갈수록 그 현상은 더 심각해지는 추세다. 최근 10년간 수백 곳의 지방 학교가 폐교 운명을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 현재도 폐교 위기에 시달리는 학교가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생존 위기에서 힘을 합쳐 기적을 일구는 작은 학교의 사례도 있다.

◇ 10년새 학교 682개 문 닫았다… 학생수 감소 심각   

학령인구 감소 공포는 이미 학교를 덮친 지 오래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생수는 지난해 기준 545만2,805명으로 집계됐다. 2010년(723만6,248명)과 비교하면 전체 학생수는 24.6% 가량 감소한 수치다. 최근 10년간 학생수가 감소하는 사이, 문을 닫는 학교도 속출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신경민 의원이 지난해 전국 17개 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09~2019년) 폐교 된 학교는 682개에 달했다. 학교 폐교는 주로 지방에 집중됐다. 서울(폐교 1곳)과 경기도(27곳) 등을 제외한 지방 지역에서 최근 10년간 654개의 학교가 사라졌다. 지역별로 보면 경북이 142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남 138개 △경남 75개 △강원 59개 △대전 50개 △충북 40개 순으로 나타났다. 이외에 △광주(1곳) △인천(4개) △대구 10개 등은 비교적 폐교 건수가 적었다. 

이들 학교는 학생수 감소와 학교 통폐합 조치 등으로 문을 닫은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도 폐교 위기를 겪고 있는 학교는 상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경북교육청은 지난 1월말 2020학년도 유·초·중학교 학급 예비편성 결과 도내 신입생이 ‘0명’인 학교가 24곳(초등학교 23교, 중학교 1교)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로 면단위에 작은 학교들이 이 같은 극심한 신입생 유치난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폐교는 단순히 그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마을의 쇠락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충남 홍성군에서 살고 있는 청년 농부인 정영환 젊은협업농장 정영환 매니저는 지난해 12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마을의 본격적인 붕괴는 학교가 없어지는 것부터 시작된다”며 “이후 식당, 버스교통편 등이 없어서지면서 점점 폐허가 되가는 수순을 밟는다”고 말했다. 

보통 학교는 비단 ‘배움의 장’의 역할만을 하지 않는다. 지역민들의 ‘커뮤니티장’으로서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 마을의 역사와 함께 했을 뿐 아니라, 지역민의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그 마을 공동체의 붕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지역민의 이탈도 더욱 빠르게 할 수 있다. 

이에 소멸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 내에선 ‘학교 살리기’가 최대 과제다. 일부 자자체 교육청은 소규모 학교의 폐교 위기를 막기 위해 특성화 학교로 선정해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행복학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행복학교는 △건강힐링 △문화예술 △창의인성 △미래교육 △학생주도 등으로 나뉜다. 행복학교로 지정되면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육청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도 받을 수 있다. 1호 행복학교인 대구 서촌초등학교는 아토피 치유를 내건 ‘건강힐링 행복학교’로 특성화한 뒤 학생수가 늘어나 폐교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 학교 폐교, 마을공동체의 붕괴 가속화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 주도의 지원 정책과 학교 특성화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젊은 학부모 인구가 지방 소규모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선 다양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청년 인구가 농촌 마을에 정착을 꺼리는 데는 일자리와 문화시설, 주거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교육 프로그램이 아무리 좋아도 부모들의 그 마을에서 생활을 영위하기에 불편함이 있다면 학생 유입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경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위치한 서하초등학교/서하초등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경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위치한 서하초등학교/서하초등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이런 가운데 최근 경남 함양군의 서하초등학교의 ‘학교 살리기 합동 프로젝트’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하초등학교 학생은 지난해 말 기준 전교생이 14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다. 여기에 초등학교 6학년 학생 4명이 올해 졸업함으로써 전교생은 10명으로 줄어들 위기에 처해 있었다. 신입생은 수년째 한명도 들어오지 않아 분교로 전환될 상황이었다. 분교로 바뀌면 사실상 폐교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사정이 급박해지자 지역민이 ‘학생 유치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지역민인 장원 서하초학생모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서하초 교장에 학생 유치하기 위한 전국 설명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말 열린 설명회엔 전국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이 이어졌다. 학교 측은 신입생 유치를 위해 내건 ‘아이토피아’ 프로젝트에 이목이 집중됐다. 

'아이토피아'는 학교와 민‧관‧기업 등이 협력해 학부모에게는 주택제공과 일자리 알선을, 학생에게는 매년 해외어학연수와 장학금 수여 등의 혜택을 제공해 지역공동체를 건설하고 농촌을 살리는 사업을 일컫는다. 학교는 주택 제공 및 일자리 외에도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아토피, 자연치유 등 농산촌유학 힐링 프로그램 운영 △자자체와 연계한 생활문화시설 구축사업 등의 비전 등이 제시됐다.  

이 프로젝트는 서하초, 학생모심 위원회, 마을 공동체, 경남도, 함양군, LH공사, 지역 기업들이 뭉치면서 실행됐다. 서하초와 학생모심위원회가 제안을 하고 지자체와 공공기관, 민간단체들이 지역 활성화를 위해 동참을 하면서 시행됐다. 경남도와 함양군은 ‘농촌유토피아’ 사업으로 확장해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일 경상남도, 함양군,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서하초등학교학생모심위원회가 ‘농촌 유토피아 선도적 실행을 위한 기본협약식’을 열기도 했다.  

◇ 서하초 폐교 위기 극복기 주목… 학부모에 주택ㆍ일자리 등 파격 제안 

 경상남도, 함양군,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농천경제연구원, 서하초등학교학생모심위원회는 7일 함양군청 대회의실에서 ‘농촌 유토피아 선도적 실행을 위한 기본협약식’을 열었다. /경남도

‘농촌 유토피아’ 사업은 3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첫 단계로 올해부터 2023년까지 LH는 ‘매입임대주택 및 마을정비형 공공주택’을 공급해 서하초등학교로 전학해오는 학생의 가족에게 120호의 보금자리를 제공키로 했다. 다음단계에서는 ‘일, 삶, 놀이’ 등 다양한 기능이 결합된 완성형 농촌개발 모델 실현을 위해 ‘생활SOC사업과 지역단위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완성단계에서는 청년 창업인 등을 위한 저렴한 주택공급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일자리 지원주택 및 6차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 ‘교육, 주거, 문화‧돌봄, 일자리’ 등을 패키지화해 농촌 활력증진체계를 확립할 계획이다.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를 출발점으로 ‘지역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함양군청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각계 각층에서 이번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다”며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단계별로 사업이 잘 진행 될 수 있도록 군 차원에서 적극적인 행정 지원 노력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여러 과제는 농촌경제연구원을 통해 발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프로젝트는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12월 학교모심 전국 설명회 결과, 75가구 140여명이 입학의사를 밝혔다. 학교는 선정 기준을 거쳐 실제로 일부 학부모에게 일자리와 주택을 알선해줬다. 학부모 중 2명은 인근 전기자동차 제조 회사인 에디슨모터스에 취업이 예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에디슨모터스는 지역 학교 살리기를 위해 일자리를 제공키로 한 민간기업 중 하나다. 아울러 학교 측은 우선 주택이 필요한 학부모에게 빈집을 제공했다. 향후 LH가 공공임대 주택을 건설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 주택을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장원 서하초 학생모심위원장은 이번 학교 프로젝트의 주요 성공 요인 중 하나로 △민간 주도의 거버넌스체계 구축을 꼽았다.

서하초는 이같은 노력으로 15명의 학생이 새롭게 들어와 폐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장원 서하초 학생모심위원장은 이번 학교 프로젝트의 주요 성공 요인 중 하나로 △민간 주도의 거버넌스체계 구축을 꼽았다.

◇ 지역 공동체 주도 학교·민·관·기업 거버넌스 체제 구축 

장원 위원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학교와 민·관·기업이 함께하는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해 학교와 지역의 소멸 위기 극복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며 “기존 학교 살리기 사업은 지자체 주도로 이뤄졌다. 그러다보니 지원 대상이 되기까지 시간도 걸리고 선정되기도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역민의 제안에서 출발한 만큼 민간 주도로 추진됐다고 볼 수 있다. 그 지역에 대해선 잘 아는 주민들이 아이디어가 더해진 만큼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프로젝트가 다른 지역의 학교 및 지역 살리기에도 성공적인 모델이 되길 기대했다. 다만 차별성 없는 모방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장 위원장은 “한때 아토피특성화 학교가 인기를 끌면서 작은 학교들이 줄줄이 따라하고 나섰다“며 ”그랬더니 차별성이 없어져 인기가 감소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장 위원장은 ”전국에 작은 학교가 수천개가 된다“며 ”지역에 특성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과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에 한 학교를 살리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 혼자만의 노력으론 생존 위기 극복이 불가능하다. 마을 공동체, 지자체, 지역 내 기업 등 다양한 단체들에서 협동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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